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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바지 하나를 떠나 보내며 어딘가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일단 수선을 해본다. 그러고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는 말 그대로 전면적으로 붕괴가 시작된다. 어디 손을 쓸 새도 없이 여기저기에 문제들이 누적된다. 색이 빠지고 뭐 이런 것들은 아무 일도 아니다. 전체를 지탱해주던 실들이 낡아서 풀려나가고 얄쌍한 주머니 천은 이미 수명을 다해 아무 것도 집어 넣을 수 없다. 찬 바람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허벅지 맨살이 닿는다. 그래도 괜찮았던 시절 붕괴는 이렇게 전면적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는 만듦새의 차이, 제작된 소재의 차이 같은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거다. 물론 입고 다녀도 되겠지만 이 바지에게는 더 나은 세상이 있을 거라는 신뢰와 믿음 또한 중요하다. 이 바지를 입고 많은 시간을 .. 2020. 2. 8.
청바지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 간만에 청바지의 경년변화, 탈색에 대한 이야기.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얼마 전에 썼던 이것(링크)과도 연관이 있고 또한 굳이 청바지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컨대 더 나은 스탠스, 핏의 기준이 불필요하다는 건 새로운 출발점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게 더 어울리네, 저게 더 어울리네 같은 건 딱히 필요가 없다. 몸에만 얼추 맞고 낡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옷이라면(데님이라면 면 100%를 제외하기가 좀 어려운데 약간 망나니 같아서 생활 한복이 떠오르는 싸구려 풍 혼방 데님에 최근 좀 관심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걸 다 소진하는 게 먼저다)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고, 저건 저것대로 재미있다. 옷을 가지고 다리가 길어보이려 한다거나, 더 마르거나 살쪄 보인다거나, 단점이라 여겨지.. 2020. 2. 7.
등산복들, 그리고 어쩌다가 이렇게 등산복 계열은 확실히 컬러풀하다. 특히 겨울 옷은 더욱 그렇다.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예전 아크테릭스 영상을 보는 데 확실히 컬러풀하니까 화사하고 특히 눈 속에서는 잘 보이긴 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헬리콥터에 탄 사람도 이들을 찾을 수 있겠지. 파타고니아에서는 윈드브레이크라고 하는 거 같은데 살짝 두터운 나일론에 안감으로 플리스가 붙은 블루종 타입의 옷이 있다. 위 사진은 일본 중고샵 쉐어 유에스에이에서 팔았던 80~90년대 것들. 옆으로 넓고 총장은 짧은 옛날 미국옷 타입인데 그래도 파타고니아를 비롯한 아웃도어 계열은 모터사이클 - 가죽옷이나 데님 트러커 류처럼 그렇게까지 짧진 않다. 다만 노스페이스 예전 옷 중에 보면 이래가지고는 배꼽티냐 싶은 것들도 있긴 하다. 파타고니아 로.. 2020. 2. 7.
노스페이스의 엑셀로프트 라이너 이야기 칸이 좁아서 원하는 제목을 다 넣지 못했다. '좋아하는 옷 이야기, 노스페이스의 엑셀로프트 이너 라이너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래에 나오는 옷은 원래 트리클라이메이트(이너 분리형 자켓)의 이너 잠바다. 겉감과 어디에선가 헤어진 채 세상을 떠돌다가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노스페이스에서 이너로 쓰는 잠바는 상당히 다양한데 다운, 프리마로프트, 두꺼운 플리스, 얇은 플리스 등등이 있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이 옷을 본 후 이걸 구해야겠다 싶어서 상태가 좀 좋은 거를 한참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선호하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 딱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점은 발란스다. 팔 길이, 몸통 길이, 폭, 목 등등이 딱 좋다. 그리고 그냥 봐도 신경 쓸 부분이 하나도 없다. 별 다른 기.. 2020. 2. 5.
2020의 남성 패션, 그외 여러가지 1. 간만에 일종의 근황 소식입니다. 예전에는 뭐뭐를 썼다 이런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요새는 그런 이야기를 통 안했죠. 그랬더니 뭐 하고 사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가끔 있고... 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건 아래에 간단히 쓰기로 하죠. 물론이지만 패션의 흐름을 열심히 바라보며 꾸준하게 뭔가를 쓰고 있습니다. 걱정마시고 일을 주세요! 원고 외에도 함께 뭐뭐를 해보자 이런 것도 환영입니다. 2. 최근 남성복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썼는데 아레나에는 2020 SS 베스트, 워스트 패션쇼 이야기를 했습니다. 베스트도 그렇지만 워스트를 뽑는 건 기획의 편리함은 있을 지 몰라도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은 주제죠. 하지만 누군가 워스트를 뽑는다는 건 대부분 기대치를가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지.. 2020. 2. 5.
노스페이스 데날리 1, 2, 레트로 등등 노스페이스 데날리(Denali)를 꽤 좋아하는데 왠지 보이기만 하면 하나 더 가지고 싶어하는 그런 옷이다. 그래서 예전에도 데날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링크) 마음에 드는 이유라면 그 무식함, 따뜻함, 배타성 등등이 있겠다. 뭐 이런 게 다 있냐 싶지만 또 이것만 가지고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파타고니아의 레트로 시리즈랑은 느낌이 좀 다르다. 하지만 따뜻함의 측면이라면 파타고니아의 R4나 레트로 쪽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있다. 데날리 1은 1988년에 처음 나왔다. 원래 내피로 나온 거라 눕시처럼 손목에 고정용 스냅 버튼이 있다. 겉에 입을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만든 거라 전체적으로 아우터는 아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꽤 딴딴하고 뻣뻣한 재질이고 겨드랑이에 지.. 2020. 1. 30.
똑같이 기워진 옷들 혼자 커스터마이즈를 한 게 아닌 한 데미즈드, 사시코 등등을 특징으로 잡은 옷들은 일단은 다 똑같이 기워진 모습을 하게 된다. 약간씩 다른 점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어딘지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사진에 봤던 바로 그것을 찾는 사람도 있을 거다. 블루 블루 재팬의 2020 SS 제품, 인디고 얀 다이드 사시코 블루 패치워크 커버올 재킷. 블루블루를 비롯해 카피탈, 비즈빔 그리고 폴로나 리바이스 등 수많은 곳에서 데미지드 옷이 나오고 그런 지도 한참 된 지금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걸 보는 마음은 여전히 꽤나 복잡하다. 사실 이건 약간의 혼동에서 발생하는데 옷에 패치워크로 바느질을 한 것을 기워낸 것으로 볼 것인가 혹은 디자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 2020. 1. 28.
어쩐지 아크테릭스 얼마 전에, 라고 해봤자 벌써 작년 12월 말의 일이지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크테릭스 파카가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사를 보면 '은밀한 사생활', '이재용 패딩', '완판 조짐' 등 꽤 자극적이다(링크). 어디서 샀을까(지인이 압구정 매장에서 구입해 선물로 준 걸로 추정, 바이럴인가, 이 정도면 바이럴 아닌가, 이재용을 동원해 바이럴을 하나), 그 전의 일정, 입고 어디 갔을까 등이 자세히 나온다. 아크테릭스의 파이어비 AR 파카인데 고어 써미엄 쉘에 850필 구스 다운 제품이다. 아크테릭스 제품 중 무게 대비 보온성이 가장 좋다고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가벼움에 중점을 두고 있는 옷이다. 며칠 후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이재용이 입었던 패딩 주세요 그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데(정말?) 잘 .. 2020. 1. 23.
마카오 신사도 루이 비통 가끔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는데 주말에 본 게 부산에서 625 전쟁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거기 마카오 신사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카오 신사는 여덟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하긴 타이타닉 때도 루이 비통이었으니 마카오 신사 때도 루이 비통이겠지. 궁금해져서 찾아봤더니 마카오 신사는 1950년대 홍콩 무역상들을 일컫는 말이다(링크). 홍콩 무역상인데 왜 마카오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아무튼 마카오 신사다. 여덟가지 조건이란 영국제 양복, 영국제 셔츠, 발리 구두, 롤렉스 시계, 이탈리아제 악어 가죽 벨트, 디올 혹은 루이 비통 손가방, 샘소나이트 트렁크, 필그램의 파나마 모자, 이렇게 8가지다. 옷은 영국이고 액세서리는 유럽 본토군. 위 기사를 보면 당시 활동하던 홍콩 무역상들이 30.. 2020.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