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19. 12. 2. 12:21

오래돼 보이는 옷이 있다. 사실 1년 반 입었다고 한탄하는 분들께는 몰라도 10여년 내외니까 그렇게 까지 오래된 옷은 아니다. 게다가 외투다. 이 옷의 유래와 연혁이 좀 있는데 확실치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고 별로 유용하지도 않은데 긴 이야기라 생략한다. 하여간 마루젠 마루노우치 서점의 바로 그 마루젠에서 나온 옷이다. 이 회사는 사실 꽤 오랫동안 서양의 옷과 약간의 연관이 있는데 요새는 그만 둔 거 같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을 보면 주인공이 마루젠에서 사온 책을 문명의 상징처럼 여기는 뭐 그런 장면이 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유난히 오래된 분위기를 내는 몇 가지 설계를 가끔 곰곰이 들여다 본다.

 

 

이렇게 생겼다. 원래는 울 혹은 그 비슷한 거(개버딘?)로 나왔던 거라는 듯 한데 코팅된 폴리에스테르에 다운으로 '현대화'된 버전이다. 아래의 커다란 주머니는 상당히 넓어지는데 이런 걸 넣으라고 저렇게 만들어졌다. 약간 이상한 부분은 칼라와 모자가 만나는 부분이다. 양쪽이 다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고 있다. 모자를 사용하면 칼라가 이상해지고 칼라만 사용하면 모자가 이상해진다. 위치와 길이가 모두 좀 잘못되었고 그런 게 낡아 보이도록 만든다.

 

 

사실 마운틴 자켓 류의 흔한 설계다. 렌즈를 넣을 일은 없지만 장갑을 낀 손을 넣고 가위바위보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손이 매우 자유롭긴 하다. 양쪽 사이드에는 지퍼로 닫을 수 있는 주머니가 또 있다.

 

 

 

겨드랑이는 움직임 확보를 위해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팔 부분을 보면 조금 더 확인할 수 있다.

 

 

이 커다란 암홀은 벨크로는 커녕 따로 조이는 부분이 없다. 상당히 넓다. 이 부분과 겨드랑이를 보면 이 옷은 확실히 슈트 자켓 같은 걸 입고 그 위에 입으라고 나온 옷이다. 옷 위에 옷을 입었을 때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 없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그렇지만 자켓을 입지 않는다면 이 옷은 전체적인 발란스에서 앞뒤가 약간 맞지 않게 된다. 

 

 

어깨 앞뒤로 있는 덮개. 비를 조금이라도 더 막고 약간의 보온성을 더하기 위해 붙어 있는 부분이다. 단추는 열 수 있는데 어디다 쓸 데는 없다. 기능을 표방한 디자인을 하면서 이렇게 쓸모는 없고 자리를 채우기 위한 장식형 단추가 들어간 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문지르면 색이 약간 반짝거리는 데가 바뀌는 약간 벨벳 분위기랄까 그런 색감인데 요새는 이런 색 분위기의 옷을 보기가 어렵다. 빈티지 샵에서나 볼 수 있다. 

 

나름 따뜻한 옷이지만 기본적으로 통풍구가 많고 커서 자켓 같은 걸 입지 않고 사용하면 찬바람이 들어오는 데가 좀 많은 편이라 열손실이 많다. 이걸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안에 라이트 패딩(링크)을 입으면 어지간한 추위는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람이 소매를 타고 들어와 봤자 만나는 건 또 다른 다운 자켓이다. 이건 몰랐지... 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사실 저 라이트 패딩은 M65의 내피(링크)로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바쁘다. 몸의 레이어 중 어딘가에는 자리를 잡고 있는 거의 매일 입는 옷이 되어 가고 있다.

 

어쨌든 왜 이렇게 오래돼 보이는 걸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무엇보다 소재와 색깔, 넓은 팔통 그리고 어깨의 덮개 정도가 아닌가 싶다. 전부 다 잖아... 이런 옷을 종종 입고 있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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