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6. 22:31

간만에 향수 이야기다. 일단 향수를 쓴다 라는 대원칙 외에 몇 가지 기본적인 방침은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쓴다, 두 개를 돌아가면서 쓴다, 50미리 오드뚜왈렛만 쓴다, 연속으로는 쓰지 않는다, 뭔지 모르는 걸 산다 등등이다. 

 

우선 향수를 매일 쓰는 건 사실 상당히 방탕한 요식 행위가 아닐까 매번 생각한다. 분명 지나치게 비싸고 너무나 덧없다. 나름 오랜 기간에 걸쳐 습관이 들어 버리는 바람에 안 뿌리면 뭔가 허전한 단계가 되어 버렸는데 좋은 향 나면 기운내서 일을 더 잘 하지 않을까 라는 식으로 위안을 하고 있다. 물론 사물이나 향기 같은 무의미한 토템에 의지하는 습관이 좋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알파고도 아닌데 혼자 의지가 뿜뿜이라면 그것도 나름 재미없지 않을까 싶다. 나라는 인간의 한계인 걸까.

 

그리고 두 개를 돌아가면서 쓴다. 예전에는 왠지 안정적인 3을 중시해 3개를 두고 2개는 메인, 1은 기분 내킬 때 이런 적도 있었는데 2로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많이 뿌리지 않기 때문에(기본적으로는 나한테만 향이 나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생각한다) 꽤 오래 쓰니까 3개를 돌리면 너무 오래 버틴다는 생각이 있었다. 50미리 오드뚜왈렛도 같은 이유가 걸쳐 있다. 이렇게 하면 하나가 대략 1년 조금 넘게 버티는 거 같다. 같은 양이고 매일 똑같이 쓰는 데 어떤 건 빨리 닳고 어떤 건 오래 가고 이런 게 있긴 한데 스프레이 분사량의 차이일 거다. 또한 2개를 써도 1개가 떨어져 가면 새로운 2체제를 구축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2+1이 된다.

 

연속으로 쓰지 않는 건 궁금한 게 많기 때문이다. 인생의 전기가 오기 전에는 바꾸지 않는다 같은 나름의 오소독스한 방식을 고수한 적도 있고, 그러다가 최장 4개 연속으로 사용한 향수도 있기는 한데 어느날 그런 건 관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싼 걸 살 수 있을 땐 비싼 걸 사고 싼 걸 사야만 할 때는 싼 걸 사면 된다. 다들 각자의 향기가 있다. 그러다 보니 뭔지 모르는 걸 산다도 함께 굳었다. 성분 리스트와 오피셜 홈페이지의 설명을 유심히 읽어보고 궁금한 걸 구입한다. 다들 말을 너무 잘해서 뭐든 궁금하긴 하다. 생긴 모습에 연연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병이 이건 꼴도 보기 싫고 눈에 띄는 데 있으면 약간 곤란하겠는데 싶은 것 정도는 제외한다. 

 

 

이런 식으로 향수 라이프가 굴러가고 있고 며칠 전 하나가 수명을 다 했다. 2017년 10월에 구입했었고 이미 새로운 2개 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몇 달 간은 +1의 자리에서 살고 있었다. 안이 잘 안보이는 병인데 후레시로 비춰봤더니 이젠 아무 것도 없는 게 분명하다. 같은 회사의 다른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걸 다시 만날 일이 있을 진 모르겠다. 또 언젠가 그래 저거였지 하면서 사볼 수도 있고 어쩌면 몇 병씩 연속으로 구입하는 인생의 향수가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때까지 단종되지 말고 잘 버티길 바란다. 요새는 사라지는 게 너무 많아서 그렇게 버티는 게 귀하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헤어진다. 안녕, 즐거웠단다.

 




Posted by macrostar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ohnny

    파르마의 최고 향수라고 생각합니다.. 질리지 않고 자주 손이 간달까요. No.5처럼 오래 생산되면 좋겠네요.

    2019.12.10 02:0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