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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모호한 시대의 패션

by macrostar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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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혹은 세상의 흐름 자체가 길을 잃고 있을 때 패션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원래 하던 것들에 몰두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도발 같은 걸 하지만 이 도발은 그저 티셔츠 위에 '도발'이라고 써붙인 것과 비슷한 정도다. 테일러드, 쿠튀르, 만듦새, 완성도. 하지만 이런 구조적 우수함은 자기들끼리의 세계에서나 통용된다. 패션이 보다 계층에 기반하고 있을 때에는 부유층과 매거진이 함께 서로 찬사를 주고 받으며 탑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구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21세기에 그런 몰입으로 도주하는 건 문화와 맥락 기반으로 패션을 소모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일 뿐이다. 

 

뎀나의 새로운 구찌도 마찬가지 길에 나선 듯 하지만 적어도 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호하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다. 

 

 

다니엘 리의 새로운 버버리는 그조차 모호하다. 저 사람들은 누구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 때 저 옷을 입고 있는 걸까. 영국의 자랑이라 할 음악과 페스티벌이 패션과 결합되었고 캣워크 위에는 블랙 사바스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림이 옷 위로 프린트로 새겨지거나 조각이 캣워크 위에 오브제로 놓여져 있다고 해서 패션이 아트와 결합한 건 아니다. 티셔츠 위에 '혁신'이라 적어 놓은 혁신과 다를 게 뭐가 있나 싶다. 물론 이건 그들의 탓은 아니다. 누구나 모호한 시계 속에서 길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길을 만들 수 있는 척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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