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로리타 패션, 그 시작 즈음

by macrostar 2013. 4. 3.
반응형
앞편과 연결된다. http://fashionboop.com/693

1980년대에 로리타, 로리타 룩, 로리타 패션 등의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었지만 로리타 패션이라는 말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건 1990년대 들어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94년 여성 세븐 10월 26일호에서 '로리타 패션'이라는 말을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확실치는 않은게 그 전에도 로리타라는 말은 사용되고 있었다. 1987년 유행통신에 '로리타 패션 비판'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고, 역시 87년 말 광고회사 덴츠의 보고서에도 로리타 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특징을 미니 길이의 플레어 스커트, 흰 옷깃, 프릴과 리본등 디테일이라고 정의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70년대 브랜드 'MILK'가 시작되었을 때 부터 하라주쿠를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로리타 의상도락 1권(2005), 2권(2006)

뭐 여하튼 이런 이야기는 됐고 흔히 로리타 패션을 금욕적, 성적 이미지의 기피를 특징으로 든다. 즉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의 세계이며 자신을 '귀엽게', 혹은 '엘레강스'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성적인 면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다 섹시 어필하고 타인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페티시와 구별되는 소극적 특징으로 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거야 어디까지나 전반적인 애티튜드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이 씬 안의 사람들이 어떤 성 생활을 하고 있는 지야 알 길이 없다. 당연히 로리타 패션으로 투신하겠다는 결심이 고자나 무성애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적인 에로스 운운하며 직접적으로 밝히는 브랜드(예를 들어 Victorian Maiden)도 있다.

여하튼 예전에는 보다 적극적인 섹시 어필의 서양 아이들, 그리고 보다 소극적으로 큐트하게 보이는 동양 아이들 정도의 도식이 존재했었는데(로리타 패션 초반을 설명할 때 이런 투의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최근 들어 미국, 유럽 곳곳에서 은근히 로리타 패션을 취미로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로리타를 단지 옷 입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Rebellion이라고 밝히기도 한다(링크 - NYTimes). 딱히 뭔가 전복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홀든 콜필드처럼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을 수는 있겠다.

서브컬쳐로서 로리타 패션에서 로리타는 어디까지나 성인, 혹은 그 즈음을 의미하지 나보코프의 소설에 나오는 정말 어린 아이를 뜻하는 건 아니다. 요즘엔 이런 걸 살짝 구별해서 님프라는 용어가 자주 보이는데 민속의상같은 걸 입은 10대 초반 소녀 사진이 올라오는 어덜트 쪽에서는 이 말이 더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참고로 로리타 풍의 AV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메이드 카페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2004년 이후 즈음이라고 한다.

또 하나 정치적인 성향 이야기를 하자면 이 씬은 개인적인 호불호가 깊게 베어있다. 남들이 뭘 하든 별로 상관 안한다라는 테마를 어쨌든 붙잡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전 포스팅에서 말한 안온한 도피의 성향은 각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불량공주 모모코를 쓴 타케모노 노바라는 자신을 우파 성향이라고 밝히고 있고,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신문에 로리타 패션을 한 사회 운동가라는 기사가 실린 아마미야 카린 같은 사람도 있다. 각자 알아서 가는 거다.


아마마야 카린, 기사는 여기(링크)



자 그럼 이제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 이 씬이 구성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사실 동화적 상상에 기반하고 있고 그래서 시각적인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로리타 패션은 브랜드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양상이 크다. 각 브랜드들은 미묘하게 다른 테마들을 제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취향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완성시켜 간다. 사실 그래서 브랜드 'MILK'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이 글의 맨 마지막으로 미룬다.

아래는 로리타 패션에서 패션 부분과 더불어 로리타를 취하는 소녀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시크하고, 남 신경 안쓰고, 좋은 것만 좋아 하는 뭐 그런 태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광경이다. 이런 것들을 함께 경험하며 옷을 만드는 사람들과 옷을 입을 사람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1. 올리브 소녀

올리브는 1982년 창간된 패션 잡지다. '뽀빠이'의 자매지라고 할 수 있는데 "Magazine for Romantic Girls'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리세엔누(ycéenne 프랑스 : lycée 여학생) 등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했다. 나중에 가리(Girlish)라고 부르는 서브컬쳐 타입의 소녀 문화의 초창기 버전을 개척했다. 미션계 중고생, 귀국자녀 등을 주요 독자층으로 음악, 영화, 인테리어 등등 전방위적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했는데 소위 올리브 소녀라는 팬층을 양산했다.  


90년대 이후에는 보다 실용적인 느낌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슬로우 라이프 느낌으로 변신하면서 시대에 발을 잘 맞춰가고 있다.



2. 나고무갸루

1983년 일본 인디 음악 취급 레이블이다. 편안해지는 뭐 이런 뜻인데 다양하고 개성적인 뮤지션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라이브에 '기발한 패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그들을 '나고무갸루'라고 불렀다. 시노하라 토모에가 1990년대 후반 데뷔할 때 '헤이 세이의 나고무갸루'라는 별명이 붙었었는데 이 나고무갸루가 80년대 중반의 바로 저 나고무갸루다.


이런 언니들...



3.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80년대 말 패션쇼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87년까지 해왔던 펑크의 시대와 결별하고 좀 더 어퍼 클래스류의 새로운 패션 세계로 들어선다. 흔히 Pagan Years라고 부르는 88년부터 92년 정도까지다. 이 시기에 비비안은 영국 왕실의 영향을 받은 테일러드와 어린 아이룩 등을 선보이면서 극단적으로 가는 언더바스트의 테일러드 자켓, 코르셋, 종 모양 스커트 같은 것들을 발표하는데 이런 것들이 로리타 패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로리타 패션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영감을 줬다고는 할 수 있다.  


Pagan 시대


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 외의 이미지 레퍼런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 쪽에서 이상하게 인기가 많고 그래서 수집가도 많다. 딱히 앨리스 동화의 내용보다는 존 테니얼의 삽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빅토리아 풍의 옷을 입고 있는 그림들이라고는 해도 영감의 소재 정도인 듯 하다. 특히 세상과 디스커넥트하는 앨리스의 태도 같은 게 매우 로리타스러운데 첫머리에 나오는 "대체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이 다 무슨 소용이람?"이 대체적으로 로리타 패션의 마음을 대변해 주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에도 존 테니얼 삽화가 들어있는 앨리스 번역본은 여러가지가 나와있다. 사진은 올해 한유주 번역으로 새로 나온 허밍버드출판사 본(링크).

이 외에도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등의 동화들, 드라마 초원의 집이나 비밀의 화원 같은 것들도 열심히 보는 자료에 포함된다. 애초에 기반이 동화 나라이고, 그것으로 회기하되 나이가 만드는 지성과 자본 여력이 만드는 디테일이 씬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환상의 세계는 언제나 먼 발치에서라도 잡아놓고 있다.

 
1993년작 시크릿 가든의 오프닝 부분에 마리에게 옷을 입히는 장면이 길게 나오는 데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바닥에 그리 많다고...



5. MILK, 그리고 다른 브랜드들.

MILK(링크)는 1970년에 하라주쿠에서 런칭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곱게 자라는 딸에게 입혀줬던 동화 기반의 아동복을 성인용으로 발전시킨 게 아닌가 생각되는 밀크의 옷들은 초창기에는 워낙 비현실적인 모습이라 아이돌 무대 의상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걸 마음에 들어하고 입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맨 위에서 말한 로리타 패션 70년대 자생 발생설은 이에 기인한다.

여하튼 다카다 겐조, 코시노 준코와 함께 문화 복장 학원 동기인 카네코 이사오가 컨츄리 기반의 동화풍 옷으로 런칭한 PINK House, 그리고 밀크에서 나온 무라노 메구미가 시작한 Jane Marple, 역시 밀크에서 나온 야나가와 레이가 시작한 Emily Temple Cute같은 브랜드들이 초창기 로리타 패션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부터 원조 브랜드로 씬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80년대 말 들어 약간 유행을 하긴 했지만 밀크나 제인 마플을 흉내낸 어설픈 브랜드 들의 난립, 반 코스프레 타입의 정립되지 않은 개념 등으로 인해 1987년 '스트리트 모드북'에는 로리타 룩 인기라는 기사가 있기도 했지만 어떤 패션 잡지의 설문 조사에서는 동성으로부터도 이성으로부터도 미움받는 의상 1위로 로리타가 올라가기도 했다. 밀크나 Jane Marple같은 경우엔 90년대 말에 자신의 브랜드가 로리타 패션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것에 불만을 밝혔다.



이런 일들이 지나가며 드디어 94년 로리타 패션은 메인스트림 패션계에 안착을 한다. 초창기에는 영국 밴드 샴푸나 62년작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로리타의 영향으로 보다 원색 중심의 로리타 패션이 유행이었지만, 점차적으로 아마로리(Sweet Loli, 甘로리), 펑크로리, 구로로리(Gore)를 비롯해 전통의상 기반의 와로리(和-), Qi로리(중국 전통의상이다)등 수많은 서브 카테고리들을 만들어 내고 2004년의 대대적인 변화와 정착을 만들어낸 불량공주 모모코를 비롯해, Baby, The Stars Shine Bright나 Angelic Pretty, Metamorphose temps de fille같은 큰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세력을 넓히고 있다.


라사라에서 2004년에 이런 패턴집이 나온 적 있다. 일본책의 번역본이다.

여하튼 로리타 패션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혹시나 여건이 된다면 다음 기회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