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인가에서 럭셔리 굿즈(luxury goods)를 명품으로 번역한 게 최고의 마케팅 승리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봤다. 사실 사치품 뭐 이런 말이 럭셔리에 더 가까울텐데 국내 정서에서 최고의 사치품 XX 가방~ 이런 식으로 하는 광고가 좋은 이미지를 만들리가 없잖아. 궁금해져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뒤적거리며 신문에서 명품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썼을까 찾아봤다. 공신력 전혀 없이 슬슬 뒤적거린 거니 혹시 어디 다른데다 쓰지 마시라는 경고를 미리 해놓고.
명품이라는 말이 꽤 오래전 부터 나오긴 하는데 보통 예술품, 공예품 이런 데에 많이 붙는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오디오, 시계, 카메라 이런 데도 명품이라는 말을 붙이는 데 이쪽 역시 공예품에 가깝다. 옷 역시 장인이 만드는 게 고급 제품이었기 때문에 명품이라는 단어가 약간 곡해되어서 사용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경계를 나누기가 애매하긴 하다.
상품에 명품이라는 단어가 붙어 아마도 처음 나오는 건 매일경제에 연재되던 홍성유의 소설 새벽은 열리다의 1981년 7월 24일자. 홍성유는 장군의 아들 쓴 그 분이 맞다. 새벽은 열리다는 기업인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기업인들이라 고급 제품을 많이 쓸테니까 그런 종류가 좀 나오는 듯. 위 본문을 보면 듀퐁 라이터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듀퐁 라이터는 세계의 명품인데 카르티에나뷘치 보다는 덜 엘레강스하더라도 세공예술이 빚어 놓은..."이라는 구절에 나온다. 사실 이건 세공품에 명품이라는 말을 붙인 거라 럭셔리보다는 장인 정신 이쪽에 더 가까워서 명품이라는 단어가 본래 사용되는 용도이기는 하다. 그런데 뷘치가 뭔지 모르겠다.
추가 : VINCI라는 프랑스 라이터 브랜드가 있었다고 함. 듀퐁 비슷하게 번쩍거리고 무겁게 생겼다. 이거일 가능성이 높을 듯 하다.
그 다음은 1982년 2월 라도 시계 광고에 명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라는 카피가 나온다. 역시 잘 만든 공예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1983년 7월 4일 여성지 근황 기사에 보면 아래 두 번째 단락에 "광고의 한경향으로 자사 상품선전에 앞서 해당 상품의 세계적 명품, 유래나 사용법 등을 소개한 기사 형식의 광고..."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명품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명품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비슷한 거 같다. 이걸 보면 여성지, 패션지 쪽에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던 거 같다. 어쨌든 1980년대 초반 정도부터 럭셔리 굿즈는 명품이라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1983년 10월 15일 바바리 코트를 소개하는 기사가 있는데 여기에도 바바리를 "레인 코트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명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고 있다. 이 기사는 좀 재미있는데 양장이 들어왔을 때 바바리 코트도 함께 들어왔는데 레인 코트 용도가 아니라 간절기 울 코트 용도였고 스프링 코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 50대 이후 주부라면 스프링 코트라는 말이 더 익숙할 거라는 걸 봐서 50년대 즈음에 20대를 보낸 분들은 스프링 코트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나 보다. 오트 쿠튀르나 랄프 로렌 같은 브랜드는 바바리 코트를 외면한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군. 어쨌든 여기서 명품은 요새 쓰는 용례와 거의 같아 보인다.
그리고 1984년 3월 21일에는 향수에 대해 명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캡쳐를 잘못했는데 아래 부분에 에스티 라우더가 "사람들이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향수는 명품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게 나온다. NYT 매거진 기사네. 그래서 원문을 찾아봤는데 여기(링크). 그런데 위 신문 기사에는 "좋은 향수는 사람의 감정을 휘저어놓지 않아야 한다"고 나오는데 원문의 기사에는 "Successful fragrances must stir the emotions. If it's truly a great one, people either love it or hate it. Nothing in between!'"이라고 나온다. 반대잖아! 그냥 생각해 봐도 휘저어 놔야지! 어쨌든 여기서 great one을 명품으로 적었다.
그리고 1985년 4월 라코스떼 광고에 스포티 캐주얼의 세계적 명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유행의 물결을 초월, 품격있는 색상, 패션의 흐름을 외면하면서도 언제나 앞선 패션 감각, 유니크한 매력. 여전히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잔뜩 들어있다.
그리고 1985년 12월 28일 신세계에서 라이센스로 만드는 랑방, 이브생로랑 선물 세트에 대해 세모 선물의 명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모(歲暮)는 한 해가 끝날 무렵을 뜻하는 단어다. 요즘에는 세모라는 말 쓰는 건 거의 본 적이 없고 세밑이라는 단어 정도 가끔 보는 거 같다.
뭐 이 정도로... 결론은 1980년대 초반 즈음. 사용의 연원은 모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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