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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좋은 옷 취향

by macrostar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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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옷"이라는 건 아무래도 패스트 패션이 아닌 옷을 말할 거다. 좋은 소재, 좋은 만듦새. 사실 좋은 옷은 정의가 명확하지가 않다. 에르메스는 아마 좋은 옷을 만들 거다. 노스페이스는 좋은 옷인가? 유니클로나 H&M은 나쁜 옷만 있을까? 좋은 취향이라고 하면 약간 더 와닿는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상황에서 아주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좋은 옷을 입어버릇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고 그래서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긴 할 거다. 패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산업이 번성하면 할 말이 많아지고 그러니 나쁠 건 없다. 

 

그렇지만 역시 딱히 좋은 옷 같은 거 몰라도 되지 않나 싶다. 좋은 옷에 관련된 경험을 쌓는 건 비용이 상당히 드는 일이기도 하고. 그럴 때 옷과 패션은 대충 때우며 다른 거 즐거워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소모할 수 있는 자금에는 한계가 있고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좋은 게 많이 있다. 그리고 패션은 흘러가는 거다. 죽기 전에 봐야 할 1000편의 영화나 들어야 할 1000곡의 음악 같은 건 있어도 죽기 전에 입어봐야 할 1000벌의 옷 같은 게 있을까 싶다. 패션은 그 때, 그 자리여야 의미가 선명하다.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통달하고 자신 만의 취향을 쌓는 르네상스 적인 인간에 대한 로망도 여전히 있지만, 각각의 분야에서 정보가 넘쳐 흐르는 이 시대에 딱히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런 건 알파고나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취향의 벽 같은 건 그냥 이러이러한 게 좋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커뮤니티 안에서나 통용된다. 실질적으로 각각의 분야 안에서 높게 평가되는 수준까지 나아가면 정보량의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적당한 선이 만들어지고 그걸 넘어가면 마니아 소리나 듣고 뭐 그런 식이 아닐까. 비슷한 사람이구나 하는 확인 정도로 의미가 있을 거다. 물론 그런 것도 사회 안에서는 꽤 의미가 있고 패션의 원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우에 맞는 옷이라는 것도 요즘 같은 시대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경우에 맞는 옷이란 대부분 기존의 패션 질서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고 그러므로 항상 의심해 봐야 하는 시대다. 감탄을 자아내는 정확한 옷 입기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은 데 따지고 보면 그걸 알아보는 자신에 대한 찬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델리킷한 취향의 선이란 관심과 학습보다 경험에 크게 좌우된다.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그런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경험치를 따라가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패션에 대해 떠드는 사람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칭송할 생각도 없다. 아 그렇구나. 행운이네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옷, 패션을 바라보는 방식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떠드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패션을 알아봅시다, 일단 돈을 들고 오세요, 그것도 잔뜩. 이런 식이면 즐거운 패션 세상 문제 접근에 별 의미가 없다. 

 

물론 패스트 패션, 패스트 패션 풍의 옷에 함몰되는 게 좋다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게 말하자면 부화뇌동 같은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유행의 쏠림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여기저기 둘러보면 이상하게도 타인 의존성이 높아지고 있는 거 같다. 물론 물어보는 사람들만 인터넷을 이용할테니 그런 게 비정상적으로 자주 보이게 되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거 어때요를 왜 타인에게 물어보는 지 잘 모르겠다. 자기 옷 어떨지 자기가 알지 누가 알겠어. 이걸 물어본다는 건 타인의 시선에 그만큼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등급 나누기 같은 건 점점 더 심해진다. 각각의 브랜드가 뭘 하고 그걸 얼마나 잘하는 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걸 자기가 어떻게 이용하는지의 문제고. 상상력이란 경험 안에서 만들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것저것 많이 들여다 보는 게 도움이 되긴 할 거다. 뭐가 있는 지를 알아야 뭐를 끄집어 내 올 지 알 수가 있지.

 

특히 옷이 환경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며 생명이 긴 옷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해진 지금 시점에서는 그런 면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이 긴 옷과 델리킷한 취향 사이에 딱히 큰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칼하트의 코듀라 워크 자켓은 아마 대부분의 인간보다 수명이 길 만큼 튼튼한 옷이다. 그렇지만 그 옷이 소위 좋은 취향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애초에 옷이 취향을 보여주는 게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타인이 어떤 이유로 그 옷을 입고 있는 지 알 길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하는 존중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이유 같은 건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 이 옷을 입으려 하는가를 잠깐이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는 버릇을 들이는 건 태도의 정립에도 괜찮은 방법이고 또한 다른 분야로 확장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멋지다 - 남들이 멋지다고 하니까, 이런 식은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을까. 물론 우르르 쏠림은 산업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긴 하고 납득은 되지만 그래도 쏠림은 쓸데없이 겹치는 물건을 세상에 너무 많게 만들고 그에 따라 다양성이 손상되는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파타고니아의 레트로 X가 인기지만 비싸니까 그 비슷한 뽀글이 플리스가 세상에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뭐 이런 이야기는 포괄적 태도에 대한 이야기고 경험과 직접 닿는 상황 속에서는 조금 더 섬세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생겨난다. 그런 건 그때가서 이야기를 해 보고. 사실 이 글도 생각날 때마다 들어와서 조금 더 명확할 수 있도록 고칠 거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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