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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훌륭한 제품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는 방법

by macrostar 201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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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다 보내려고 쓴 건데 사정이 바뀌어서 가지고 있던 겁니다. 재활용해 봅니다. 사실 비슷한 내용의 포스팅이 몇 번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옷장의 옷들과 더 친해지는 일'(링크)이라는 제목입니다. 내용은 거의 같아요.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올리죠. ㅎㅎ 변명하자면 사실 이런 류는 언제나 대동소이합니다. 50년 전도 비슷했고, 50년 후도 비슷할 겁니다.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들은 '한때는 해링본 수트가 대를 물리는 옷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차이 정도입니다. 지금은 귀한 소재가 나중에 흔해질 수도 있고, 지금은 없는 소재가 등장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제 세대 안에 천지개벽하는 진화는 보통은 없겠죠.

뭐든 그렇지만 '어디까지' 손을 댈 것인가라는 균형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큰 관심도 재주도 없는데 마음에 드는 옷을 약간 더 오래 써보겠다고, 혹은 돈을 좀 아껴보겠다고 너무 시간을 들이면 금방 나가 떨어집니다. 수선이나 세탁이 직업이 아닌 이상 어디까지나 이런 일들은 보조입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 그걸 넘어가는 건 전문가에게 보내자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선이 어디 즈음인지는 일단은 해봐야 알겠죠.

'맞춤'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에 아래는 아무래도 톤이 좀 다르지만 유니클로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뭐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이윽고 당신은 구석구석 취향을 반영한 맞춤 신발이든, 정확히 사이즈를 측정해 완벽하게 몸에 핏 되는 셔츠든, 손으로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팔찌나 목걸이든 뭔가의 주인이 되었다. 이제 몇 년 간 이것들은 방 한 구석에서 쉬고 있다가 당신과 함께 기쁜 일도 겪고 슬픈 일도 겪으며 지내게 될 것이다. 기성 제품의 규격화 된 사이즈가 주는 불편함을 오래 함께 하며 어느덧 몸에 익숙해진 까닭에 처음에는 어딘가 어색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제대로 측정 되어 숙련된 장인이 만들어 낸 제품이라면 날이 갈수록 그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삶의 즐거움 하나가 더해진다.

맞춤이라는 건 사실 꽤 번거로운 일이다. 바쁘고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귀찮은 고민은 디자이너들이 하고 시즌에 맞춰 알아서 내주는 기성품을 구입하는 게 사이즈는 조금 안 맞을 지 몰라도, 취향과 약간은 다른 점이 있을 지 몰라도 적어도 훨씬 편하다. 커스텀 메이드는 이와는 다르게 단추 하나, 장식 하나까지 직접 선택이 가능하다. 이미 매장도 얼마 없으니 딱히 집 앞에 커스텀 메이드 샵이 있지 않은 한 먼 길을 나서는 것부터 능동적인 노력은 시작된다. 더구나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많은 이들이 명품, 핸드메이드, 커스텀 메이드 같은 특별한 이름이 붙은 제품들이 기존 제품들에 비해 ‘튼튼함’도 보장해 줄 것이라 믿는 착각을 한다. 물론 사실은 전혀 다르다. 저런 이름들이 붙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정말 구하기 어렵다는 부드러운 가죽, 세상에 따를 자가 없는 훌륭한 바느질, 40년 간 구두만 만들어오며 획득한 노하우를 지닌 장인, 유니크한 실력의 디자이너 등등 모두들 다른 이유로 특별한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들 보다 튼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 튼튼하다고 해서 원래 모습이 잘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여러가지 면에서 조금이라도 특별한 것들은 보다 더 관리가 필요하고 그러므로 사람을 더 귀찮게 한다. 이것은 애완견을 키우는 것과 같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매 끼니와 식수를 잊지 말고 챙겨주고, 목욕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고,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도 맞춰야 한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좋은 제품들도 그렇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듀퐁 라이터는 귀찮게 가스를 보충해줘도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고 몽블랑 만년필은 말할 것도 없다. 잉크를 채우고, 펜촉을 닦아주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수리점을 찾아가야 한다. 롤렉스 시계는 전자 시계보다 정확하지 않지만 5년 마다 한번 씩은 점검을 받고 오버홀 같은 거창한 행사도 치뤄야 한다.

이 잡지에 등장하는 장인들이 만든 구두와 액세서리, 옷들도 마찬가지다. 실크나 캐시미어, 양가죽 같은 비싼 소재들이나 잘 만들어진 훌륭한 원단들을 사용한 옷들은 신중한 세탁과 습도와 온도 관리 같은 대가를 요구한다. 사람을 귀찮게 하고, 그래서 꾸준히 관리하며 살다 보면 더 애정도 들게 되기 마련이다.

이왕 자신에 딱 맞는 제품을 들여왔다면 알맞은 수고를 더해가며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전문가도 아닌데 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광택을 내기 위해 무슨 구두약을 구입하고, 시즌이 바뀔 때 마다 이걸 하고, 저걸 하고는 너무나 번거롭다. 연애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매번 전력 투구만 던지다가는 그만 지쳐 둘 다 나가 떨어진다.



구두 같은 경우 몇 가지 정도 원칙만 지키면 된다. 매일 신지 않는다, 신고 나면 닦아준다. 매일 사용하지 않는 건 ‘의(衣)’에 속하는 거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룰이다. 두 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게 하나를 계속 사용하는 것보다 수명이 늘어난다. 사람이 그렇듯 물건도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구두를 닦는 건 군대 같은 곳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우선 마른 걸레 두 개와 솔, 구두약을 준비해 놓는다. 구두약이나 솔도 상표 별로 좋고 나쁨과 고유 특징들이 있는데 그런 건 나중에 좀 더 많은 지식과 관심이 쌓인 후에 알아봐도 늦지 않다. 우선은 그냥 마트만 가도 다 있는 걸 가져다 놓되 색상만 주의하면 된다.

우선 사용한 날 밤에 솔로 먼지를 털고, 마른 걸레로 한 번 닦아주고, 구두약을 바르고, 다른 마른 걸레로 문질러준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더구나 밤에 귀가해 혼자 현관 앞에 앉아 구두를 닦고 있다 보면, 인생이란 게 대체 뭔지 따위의 자괴감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죽이 좋은 품질일 수록 가능한 남에게 맞기지 않는 게 좋은 선택인 건 분명하다. 이것은 세수와 양치를 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주입 시키자.

에나멜 구두의 경우에는 집에 들어온 다음 마르고 고운 천으로 한번 씩 닦아주면 된다.

정장은 좀 더 간단하다. 매번 세탁이 필요한 옷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옷 솔로 먼지 정도라도 한 번 털어주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옷 솔을 하나 구입하는 걸 추천한다. 옷 솔은 돈모(돼지털)로 된 게 가장 좋은데 그렇게 비싸지 않다. 오픈 마켓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왕이면 튼튼하고 큰 것으로 하나 구입해 놓으면 아주 오래도록 쓸 수 있다. 코트 역시 마찬가지로 입고 들어와 솔질을 한 번 해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나은 상태로 유지된다. 이 둘은 사실 보관이 더 중요하다. 넉넉한 공간에 옷걸이에 제대로 맞춰 걸어 놓으면 된다.


가죽 제품의 옷은 보통 크림이나 왁스를 사용한다. 시간이 지나면 가죽이 품고 있던 습기가 빠지면서 뻣뻣해지고 갈라지기 때문이다. 왁스는 구두나 천연 가죽으로 된 운동화, 가방, 가죽 소파에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지고 있으면 쓸모가 많다.

셔츠의 경우에는 묵은 때 방지를 위한 락스 사용 방법이라든가, 다림질 요령 등 많은 가이드들을 방송이나 신문, 잡지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다 일일이 챙기며 살면 자질구레한 일감이 너무 많아진다. 차라리 주변 세탁소들의 리스트를 우선 작성한 다음 차례대로 맡겨 보면서 괜찮은 세탁소를 찾는 게 낫다.

서울에 크린웰이나 영남사같은 유명한 세탁소들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이런 곳들은 보통은 얼룩을 지운다든가 하는 큰 일처리로 유명하고 마침 동네에 있는 게 아니라면 셔츠 세탁이라든가 바지 세탁이라든가 하겠다고 일일이 찾아가기 어렵다. 실력이 좋고 친절한 세탁소를 알아 놓는 건 어디에 가면 좋은 옷을 팔고 있는가 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코트나 수트의 드라이크리닝도 필요하므로 셔츠 정도로 실력을 가늠해 보며 좋은 세탁소를 알아 두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그 제품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다. 지금 막 집에 들여온 물건이 어쩌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현재 추세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맞춤 가게들의 허들은 점점 높아질 것이고 애매한 곳들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반드시 커스텀 부츠나 Bespoke 수트를 구입하겠다 결심한다면 정기적으로 Measure 투어를 떠나는 이태리 수트 메이커를 기다려 큰 돈을 지불하거나, 아니면 밀라노나 런던 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시기와 질투, 아쉬운 회한 정도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손에 든 그것을 좀 더 아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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