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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옷장의 옷들과 더 친해지는 일

by macrostar 201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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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사실 뭔가 썼는데 -> 잘 안되서 -> 주제를 바꿨고 -> 그에 맞게 고치는 바람에 ->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베스포크니 메이드 투 메져니 하고 있지만 메인 스트림의 흐름은 오래도록 입는 옷이라는 걸 달갑지 않아하는 추세다. SPA와 패스트 패션의 시대 아닌가. 별로 공들여서 만들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문제도 있지만, 수선까지 해가며 좀 더 입고 싶어도 낡고 후줄근하고 찢어지고 구멍나고 등등 여러가지 일들이 생긴다.

면 제품의 경우 면 자체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일단 너무들 얇다. 매장에 지금 막 나와 걸려있는 것도 아직 생생한 컬러를 제외하면 이미 어딘가는 낡아보이는 것들이 다수다. 이 상태로 몇 년 더 지나면 그 후줄근함이 조금 남아 있던 애정마저 떨어지게 된다.

예전에 일본의 모 게시판에서 유니클로 새 것과 프라다 10년 된 중고 중 뭐가 더 나을까하는 토론을 읽은 적 있다. 이건 개별 옷마다 다르기 때문에 브랜드로 퉁쳐서 말할 건 아니다. 고쳐 입는다고 가정하고, 새 옷 특유의 폭신함과 반질거림을 너무나 좋아해 그걸 포기할 수 없는 경우만 아니면 후자 쪽이 조금 낫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우선 10년 된 좋은 옷을 구하기가 어렵고(10년이나 가지고 있었으면 계속 옷장 안에 그대로 있든지, 이미 고쳐서 입고 다니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빈티지 붙어있어도 유행을 많이 타지 않는 종류는 여전히 가격대가 좀 있고, 주변에 믿을 만한 빈티지 샵이 없으면 이베이 밖에 없는데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더구나 좋지 않은 소재는 곱지 않게 낡아간다. 세탁 몇 번에 길이가 짧아지고, 품이 작아지고, 여기저기 닳아서 구멍이 나고 여하튼 여러가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주며 마음 속 깊이 낙담하게 한다. 하긴 YSL 매장 직원마저 가방은 3년 지나면 더 쓰기 어려우니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인데 다른 것들은 오죽 하겠나.

하지만 따져보면 티셔츠 류를 제외하고(특히 유니클로 티셔츠의 경우 5년은 무리다) 나머지 것들은 조금만 관리해도 오랫동안 입을 수 있다. 좋은 옷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5년은 입어봐야 그 옷에 대해 뭔가 깨달음 같은 게 생기지 않나 혼자 생각하고 있다. 지나치게 덥고, 지나치게 추운 한국의 계절을 감안하면 5년이라고 해 봐야 합산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12월, 1월 쉬지 않고 코트 하나로 버텨도 5년 지나봐야 10개월이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살 때 미래를 좀 내다봐야 한다.



이런 건 10년을 정성스럽게 보관해도 밖에 입고 나가긴 어렵다.. 뭐 이 옷이 못 생겼다는 건 아니다. 빨강 스카프와 초록 리본의 오리라니 가지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나 역시 긴 세월 동안 사용한 제품들이 있다. 사실 대부분 지금 쯤이면 초등학생은 되었을 나이.. -_-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유니클로 프리미엄 코튼 티셔츠의 경우 점점 옷이 ‘짧아’졌다. 작아지는 게 아니다. 짧아지면서 옆으로는 넓어지는 매우 신기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랄프 로렌의 갈색 사파리 코트는 매우 불편했다. 기성품이 보통 가지는 문제이기도 한데 옷이 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옷이 몸에 쉐이프를 만드는 억지스러움이 있으니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아르마니 자켓은 속 주머니에 두툼한 지갑을 넣어도 겉으로 보면 티가 별로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렇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묵색 톤의 검정색이 무척 예쁜데 관리가 어렵다. 하지만 얇다. 흰색도 상당히 예쁜 톤이다. 하지만 얇다. 내 습관의 문제도 있는 거 같은데 셔츠들은 항상 소매가 먼저 닳아 뜯어진다. 아직 이 문제의 원인은 못 찾았다.

여튼 생긴 건 부실해 보이는데 은근히 오래 가는 것도 있고, 튼튼해 보이지만 '고질적' 문제를 품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런 걸 구별하는 건 운과 경험 밖에 없는 것 같다. 경험이 운의 확률을 높이기는 하는데, 절대적인 건 아니다. 뒤통수는 어디서든 맞을 수 있고, 횡재 역시 어디서든 맞을 수 있는 게 사람 사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식으로 각자의 DB가 쌓인다. 이런 일종의 감식안들은 이것들은 편견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계기에 의해 깨지기도 하면서 조금이라도 오래 함께 지낼 수 있는 옷들이 생겨날 것이다. 여하튼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옷의 관리 같은 것도 있겠지만 사실 처음 구입할 때 제 사이즈를 구입할 것, 그리고 몸을 그대로 유지할 것 이 두가지인 듯 하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단추가 안 채워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다.

많은 이들이 명품, 핸드메이드, 커스텀 메이드 같은 특별한 이름이 붙은 제품들이 기존 제품들에 비해 ‘튼튼함’도 보장해 줄 것이라 믿는 착각을 한다. 물론 사실은 전혀 다르다. 저런 이름들이 붙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정말 구하기 어렵다는 부드러운 가죽, 세상에 따를 자가 없는 훌륭한 바느질, 40년 간 구두만 만들어오며 획득한 노하우를 지닌 장인, 유니크한 실력의 디자이너 등등 모두들 다른 이유로 특별한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들 보다 튼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 튼튼하다고 해서 원래 모습이 잘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여러가지 면에서 조금이라도 특별한 것들은 보다 더 관리가 필요하고 그러므로 사람을 더 귀찮게 한다. 이것은 애완견을 키우는 것과 같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매 끼니와 식수를 잊지 말고 챙겨주고, 목욕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고,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도 맞춰야 한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좋은 제품들도 그렇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듀퐁 라이터는 귀찮게 가스를 보충해줘도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고 몽블랑 만년필은 말할 것도 없다. 잉크를 채우고, 펜촉을 닦아주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수리점을 찾아가야 한다. 롤렉스 시계는 전자 시계보다 정확하지 않지만 5년 마다 한번씩은 점검을 받고 오버홀 같은 거창한 행사도 치뤄야 한다.

이왕 자신에 딱 맞는 제품을 들여왔다면 알맞은 수고를 더해가며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전문가도 아닌데 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매번 광택을 내기 위해 무슨 구두약을 구입하고, 시즌이 바뀔 때 마다 이걸 하고, 저걸 하고는 너무나 번거롭다. 연애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매번 전력 투구만 던져 대다가는 그만 지쳐 둘 다 나가 떨어진다.

뭐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런 데서 즐거움을 찾으면 또 어떠냐 해도 할 말은 없다. 나이키 에어 포스를 처음 신었을 때 그 푹신함과 편안함에 너무나 감동 받아서(그때까지 운동화는 아디다스라는 편견에 빠져있었다) 가끔 팡이 제로나 뿌려 주면서 하루도 안 빼고 계속 그것만 신은 적 있다. 1년 쯤 지나 만신창이가 된 운동화는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장렬히 전사했는데 그것도 뭐 지나가 버린 즐거운 에피소드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건 이 포스팅의 목적은 아니니까.

구두 같은 경우 몇 가지 정도 원칙만 지키면 된다. 매일 신지 않는다, 신고 나면 닦아준다. 매일 사용하지 않는 건 ‘의(衣)’에 속하는 거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룰이다. 두 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게 하나를 계속 사용하는 것보다 수명이 늘어난다. 사람이 그렇듯 물건도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아주 좋은 구두라면 슈트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냥 신문지라도 꽁꽁 뭉쳐서 넣어놔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다.

구두를 닦는 건 군대 같은 곳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우선 마른 걸레 두 개와 솔, 구두약을 준비해 놓는다. 구두약이나 솔도 상표 별로 좋고 나쁨과 고유 특징들이 있는데 그런 건 나중에 좀 더 많은 지식과 관심이 쌓인 후에 알아봐도 늦지 않다. 우선은 그냥 마트만 가도 다 있는 걸 가져다 놓되 색상은 좀 주의하자. 

 
존롭의 슈즈 클리닝 세트. 이 정도 가지고 있으면 일류 구두방을 열어 새 존롭을 살 때까지 돈을 버는 게 낫다.

우선 사용한 날 밤에 솔로 먼지를 털고, 마른 걸레로 한 번 닦아주고, 구두약을 바르고, 다른 마른 걸레로 문질러준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더구나 밤에 귀가해 혼자 현관 앞에 앉아 구두를 닦고 있다 보면, 인생이란 게 대체 뭔지 따위의 자괴감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죽이 좋은 품질일 수록 가능한 남에게 맞기지 않는 게 좋은 선택인 건 분명하다. 이것은 세수와 양치를 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주입 시키자.

에나멜이나 송치, 세무 구두의 경우에는 집에 들어온 다음 마르고 고운 천으로 한번 씩 닦아주면서 먼지나 털어주면 된다.

정장은 좀 더 간단하다. 매번 세탁이 필요한 옷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옷 솔로 먼지 정도라도 한 번 털어주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옷 솔을 하나 구입하는 걸 추천한다. 옷 솔은 돈모(돼지털)로 된 게 가장 좋은데 그렇게 비싸지 않다. 오픈 마켓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왕이면 튼튼하고 큰 것으로 하나 구입해 놓으면 아주 오래도록 쓸 수 있다. 코트 역시 마찬가지로 입고 들어와 솔질을 한 번 해주는 것 만으로도 훨씬 나은 상태로 유지된다.

이 둘은 사실 보관이 더 중요하다. 넉넉한 공간에 옷걸이에 제대로 맞춰 걸어 놓아야 한다.

가죽 제품의 옷은 보통 크림이나 왁스를 사용한다. 시간이 지나면 가죽이 품고 있던 습기가 빠지면서 뻣뻣해지고 갈라지기 때문이다. 왁스는 구두나 천연 가죽으로 된 운동화, 가방, 가죽 소파에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지고 있으면 쓸모가 많다.
셔츠의 경우에는 묵은 때 방지를 위한 락스 사용 방법이라든가, 다림질 요령 등 많은 가이드들을 방송이나 신문, 잡지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다 일일이 챙기며 살면 자질구레한 일감이 너무 많아진다. 차라리 주변 세탁소들의 리스트를 우선 작성한 다음 차례대로 맡겨 보면서 괜찮은 세탁소를 찾는 게 낫다. 실력이 좋고 친절한 세탁소를 알아 놓는 건 어디에 가면 좋은 옷을 팔고 있는가 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코트나 수트의 드라이크리닝도 필요하므로 셔츠 정도로 실력을 가늠해 보며 좋은 세탁소를 알아 두자. 아주 아주 좋고 너무 마음에 드는 옷이라서 격하게 아낀다면 일류 호텔 세탁소에 맡기는 것도 괜찮다. 조선 호텔 세탁소에 가보면집에서 옷 가져와 맡기는 아주머니들이 꽤 계신다. 그리고 '그렇게 까지' 비싸진 않다. 그리고 적어도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 방식이 동네 세탁소에 비해서는 매뉴얼화 되어 있을 거다. 물론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치닫을 경우에는 법률 대응팀 같은 게 출동해 꼼짝 못하게 할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좋은 수선집을 알아 두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봉틀을 붙잡고 일류 수선사 레벨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지만(그게 너무 재미있고 재능도 있는 거 같다면 당연히 투신할 가치는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은 그냥 삶을 더 지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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