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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이것은 카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by macrostar 201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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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의 내용에 대한 생각이 쓰다보니 좀 애매해졌는데(진행이 이상해지기도 했고), 혹시 의견도 받아 볼까 싶고 사실은 더 건드리는 게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공개로 돌려놓습니다.


디자인 카피 문제는 꽤 오래된 패션계의 이슈다. 카피가 맞나, 아닌가하는 애매한 것들은 치워 놓더라도, 에잇세컨즈나 이번 H.U.M(이건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도용의 문제에 더 가깝지만), 예전에 나열했던 몇몇 카피 사건 등 보다 명백한 것들은 사실 시스템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표절 참고 - http://fashionboop.com/353

일정에 밀리고 일은 계속 쌓이는 디자이너가 선택한 간편한 솔류션, 당장 일을 마쳐야 하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찾아낸 사진의 사용, 모기업과 OEM회사 사이에 벌어지는 문제 등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마 각 사건마다 각종 베이에이션이 있었고, 그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다. 그러므로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직원 디자이너가 미쳤군..." 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아마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 포스팅은 조금 다른 내용이다. 카피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는 애매하고, 여하튼 이 산업 전선 꼭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류 디자이너 하우스들의 트렌드 리더와 그 팔로워에 대한 이야기다. 톰 포드 이야기에서도 한 적이 있지만 일단 디자이너 하우스라는 이름을 달고 일년 두 시즌 패션쇼를 보여주며 세상이 패션을 선도한다고 한다면 그게 가능한 이유는, 각자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이 패션신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톰 포드 참고 -  http://fashionboopcom/2 

물론 위에서 말한 톰 포드 이후 중량급으로 움직여 할 회사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움직이고, 이런 게 이쪽 계열 회사들의 트렌드가 되었다. 이건 가끔 애써 손짓을 하지만 고여있는 물처럼 잔잔하던 예전의 고고하던 하우스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이 치열해졌고,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돈이 들고, 그러자니 더 많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득이 확실하지 못하면 나머지에서는 발을 뺄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치킨 게임, 혹은 담합 상태에서 배반자 게임과 유사하다. 어쨌든 악마같은 루틴 안으로 모두들 청운의 꿈을 안고 좋다고 들어섰고, 이제 누구하나 발을 빼지 못한다.

잡지에 보면 소비자/구매자들에게 트렌드세터가 되지 말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다. 교과서 적이지만 남들과 다른 삶에 대한 태도, 남들과 다른 개성 등등 주어진 준비물들을 가지고 자신이 직접 주조한 총체적인 방식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디자이너 하우스들도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있어야 한다.

샤넬의 스타일이 있고, 샤넬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테니 자기 자신에 맞게 변형시킨다. 이런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좀 더 편하게 시즌이 시작할 때 마다 랑방 매장에 나온 신제품을 다 쓸어 일단 보이는 이미지는 모두 랑방화 시켜버리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고, 저 반대편에는 아예 기존의 브랜드들을 다 거부하며 옷은 물론 액세서리, 집안의 장신구들까지 다 제 손으로 만드는 방식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몇 년 전 구두 일색이었던 하이 엔드 패션계에 프라다가 운동화를 잔뜩 매장에 들여놓은 적이 있다. 뒤꿈치에 빨간 줄이 살짝 들어간 그 운동화 말이다. 운동화를 들여놓았다는 건 시장에 대한 반응이다.

경직된 수트보다 좀 더 유연한 활동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는 걸 프라다는 알아챘고, 기존에 훨씬 저렴하게 인식되던 운동화를 하이 엔드 패션계 안에 집어넣기 위해 고심했고, 그러면서도 프라다라는 걸 알아차리게 하고 싶었다. 그 당시까지 보통 운동화에서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은 스우시나 삼선 같은 운동화 양편에 들어있던 마크들이다. 프라다는 이걸 피할 방법을 모색했을테고 그 결과로 뒤에 빨간 줄이 나왔다.

새로 운동화 시장이 만들어졌다. 물론 다른 하우스들도 늦게나마 알아차린 거라 아쉬울 테지만 운동화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니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장에 뛰어들었다. 컨버스를 응용한 곳도 있고, 조깅화나 테니스화를 응용한 곳도 있고, 기존 가죽 구두에 좀 더 편안한 방법들을 집어 넣어 중간 단계의 뭔가를 만든 곳도 있다. 운동화 시장에 후발 주자로 뛰어든 건 카피가 아니다. 어차피 자신의 아이덴티티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히트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은 회사들이 있다. 뒤에 빨간 줄이 확 튀고 좋아보이는데 라는 생각을 한 건지 당시 몇몇 '명품' 브랜드 등에서도 이런 빨간 줄 라인이 들어간 운동화를 선보였다. 지금 말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에 대한 이야기다.



스트리트 웨어가 한창 인기를 끌었다는 건 말하자면 항상 수트와 고급 장신구를 사용해야 하는 귀족이나 고급 직업군이 아닌 곳에서도 좋은 옷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 다는 뜻이다. 지방시나 랑방은 이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기 시작했고 곧 가정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고 이쪽 방면 트렌드를 이끌 게 되었다.

차별화의 주안점으로 지방시는 선명한 프린트를 들고 나왔고, 랑방은 고급스러운 염색과 동시에 빈티지스러움을 섞었다. 이것들은 어딘가 어긋나 있는 듯한 이 양 브랜드가 원래 끌어가고 있던 이미지들과 합치하고, 그를 합쳐가며 더 나아가는 모습이다.

여튼 핵심은 좀 더 낮고, 좀 더 리버럴한 곳으로 비싼 옷들이 뻗기 시작했다는 거고 그때부터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 세계에 뛰어든다. 물론 아무리 돈이 벌린다고 해도 이쪽 방면으로는 전혀 관심없는 곳들도 있으니 그거야 각자 알아서들 사정이다. 문제는 프린트인데. 

지방시에 있어서 프린트는 방법론이자 아이덴티티 확보 방안이다. 더구나 개 그림, 새 그림 티셔츠는 세계적으로 크게 알려졌다. 이건 또 하나 트렌드와 겹치는데 마리 카트란주 등이 이끌고 있는 마치 그림에 벽화를 그리는 것 같은 방식이다. 얼마 전 소개했던 엘자 쉬아파렐리의 바닷가재 드레스처럼 이 역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패턴으로 둔화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이 두 가지는 분명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여튼 옷에 그림을 그린다라는 같은 방식으로 만났다.

앞의 프린트는 현재 시점에서 지방시의 필수 요소는 아니다. 프린트가 없는 옷들도 많이 있고, 어떤 특정 분위기의 옷들에 함께 들어간다. 뒤의 프린트는 일단 필수 요소다. 앞으로 변신이 있을테고 그 이후에 어떻게 변하게 될 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옷을 도화지처럼 활용하며 정교한 그림을 그려넣는 건 마리 카트란주의 전매 특허다(초기에 비하면 보다 패턴화되고 있다).

문제는 돌&가와 베르사체 같은 브랜드인데 이들이 그림 프린트를 집어넣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 것들이 히트를 치고 있어서라는 말은 좀 이상하다. D&G는 이 전에 그래피티 풍의 요란한 프린트를 무척 많이 선보였었다. 물론 그것들이 완결된 형태의 그림은 아니었다. 베르사체는 화려한 패턴의 세계다. 물론 그림을 그리고 있진 않았다.

그들이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린 옷들을 내놨냐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하지만 꼭 그림을 그려야 했냐라고 하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의문들이 생겨난다. 꼭 그려야 했을까. 자기 브랜드의 아이덴터티에 대해 그 정도로 엄밀하게 작업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닌가. 아니 남들이 하는 프린트인데 사실 하면 뭐 어떠냐. 하지만 그렇게 비싼 옷을 만들어 팔고 있다면 좀 더 엄밀하게 자기 노선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면 : 돌&가의 오랜 팬들이 지방시의 팬들이 프린트가 팡팡 박힌 옷을 부러워하고 있었고, 아 그래도 저건 살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돌&가가 내놨다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좀 간단하다. 사실 이럴 수도 있겠네 라는 생각이 들어 이 포스팅은 임시 저장 상태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이것은 마치 아스날 팬으로서 첼시의 에시앙이 만들어내는 탄탄한 미드필드가 부러웠는데 어느날 벵거가 에시앙을 사 왔다는 것과 비슷한 일 같다. (물론 현실은 에시앙이 마드리드로 가버렸지만... -_-)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너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 그냥 생각해봐도, 패션은 물론이고 음악이나 영화 다른 분야에서도 시대와 호흡하는 건 당연히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생태계 기둥의 맨 꼭대기에서 다른 이들을 리드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위대하신 크리에이티브 님께서 남의 작품을 보고 솔깃해서 나도 저런 거 해볼까 한다면 이미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볼 장 다 본 거 아닐까. 물론 쇼퍼의 입장에서는 몰라도(뭔가를 따라하면 후발주자는 베리에이션을 다양하게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진다).

그들의 비싼 옷은 광고비에 충당하라고 주는 것도 있겠지만(고급 이미지 확충 = 사적 모임에서 자신의 이미지 구축이라는 측면이 있으므로 광고비 충당은 당연히 전가된 비용이다) 기본적으로 자기들 스타일대로 더 재미있게 상상력을 펼쳐 보라고 책정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마도 전자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 하고 그게 약간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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