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패션 산업의 새로운 문법에 대하여

by macrostar 2012. 7. 26.
반응형
기존 패션 브랜드의 카테고리는 하이 엔드 - 프레스티지 - 내셔널 브랜드 - 보세 & 동남대문 식으로 분류가 되었다. 나라가 시스템화될 수록 제조업이 브랜드에 포섭되므로 선진국에선 보세의 비중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여하튼 대부분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엣시류의 핸드메이드는 몇 개의 카테고리에 걸쳐있는 예외적인 존재이긴 한데 대체적으로 내셔널 브랜드나 보세의 대체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SPA, 혹은 패스트패션이라는 게 나왔다. H&M도 그렇고 Zara도 그렇고 처음에는 물론 기존 질서 안에서 플레이를 하며 영역을 넓히고 경쟁자들을 무찌르는데 초점을 맞췄다. 약간 변화를 가지고 온 건 H&M의 변신과 GAP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좀 더 넓은 범위로 영역을 잡았고, 어설프게 비싼 거나 가랑이가 찢어지게 유행을 쫓는 대신에 우리 제품을 사고 남는 돈으로 재밌게 딴 거 하며 놀아라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유니클로가 나왔다.

아직은 산업 전체를 봤을 때 유니클로가 거대한 유럽 및 미국 시장에서 열세이고, 더구나 야심차게 중국에 진출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다지 성과가 좋지 않아 H&M, GAP, ZARA에 뒤이은 매출을 가지고 있다. 유니클로의 중국 진출, 그것도 대규모 매장 확대 플랜은 개인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에 경제 위기가 나기 전까지는 성과가 좋아질 리가 없다.

앞으로 아주 잘못된 판단만 없다면 유니클로가 H&M보다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는 점점 더 커질테고, 이에 발 맞춰 더 많은 사람들은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양극화라는 건 2-6-2 재편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H&M은 '트렌드'의 대안으로 포지셔닝했지만 유니클로는 '옷'의 대안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듯 많은 이들에게 패션은 끝났다. 아듀 에브리원, 혹시 운이 닿는 다면 다음 세상에서 만나요. 조금 다행인 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패션이 없는 삶은 가능하지만 옷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모든 '미래형' 테마가 그러했듯이 우리에게는 좀 더 빨리 닥칠 것이고, 또다시 타국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8세컨즈(이하 8)가 나왔다.

만약 작금의 세계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면 당연히 트렌드가 아니라 '옷'의 대안을 내놨어야한다. 더구나 그 회사의 모체는 우리의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가 아닌가. 장차 제X모직의 주인이 될 지도 모를 치트키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일종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면 이 기회를 통해 미래 한국인의 유니폼을 만들어보자라는 대인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나. 그리고 혹시나 일이 잘 풀리면 더 나아가 유니클로를 무찌르고 인류의 유니폼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되는거다.

하지만 8은 기존 문법, 그것도 SPA나 패스트패션이 아니라 시즌 대비 의상을 내놓다가 어쩌다 운이 맞으면 대성하고 몇 년 더 기업을 지속하는 패턴의 평범한 내셔널 브랜드 옷의 길을 가고 있다. 주문자 생산을 한다고 SPA가 아니고, 어설프게 만들어진 옷의 종류가 많다고 패스트패션이 아니다. 패스트패션은 패션의 보완이나 대체재가 아니라 아예 옷과 트렌드의 대안이어야 한다. 나는 그냥 이걸 입으며 살래라는 마음가짐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패션이 환상을 파는 사업이라면 SPA는 이런 미래적 마음가짐을 파는 사업이다.

그렇기에 출시 소식을 듣고 큰 기대를 가지고 매장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고 실로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아니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것인가. 많이 양보해 지금처럼 낼 거였으면 당연히 한국에는 매장 2개 정도만 내고 중국으로 달려갔어야 옳지 않나 생각된다.


이번 올림픽을 대비해 출시된 티셔츠들. 오늘 저녁(7월 26일)에 가로수길에서 응원전도 개최한다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저런 결과물들을 내 놓는 건 정말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더 빠르게 유행을 쫓아가는게 SPA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아무리 잘 되봐야 H&M의 아류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당연히 당시 놀고 있던 라프 시몬스나 지금 놀고 있는 스테파노 필라티 같은 디자이너라도 끌어들여 콜래보레이션이라도 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지금처럼 한류에 기댄 듯한 아이돌 풍 의상을 만들거였으면 당장 중국과 베트남, 대만에 진출하는게 맞다.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둘 다 약하다. 그들은 이치에 따라 옷의 대안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 충분히 하고도 남는 커팩서티를 가지고 있지 않나. 대인이 그리 작은 걸 붙잡고 일희일비하고 있어서야 어찌 체면이 서겠나.

#도미노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