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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패션쇼 읽기

by macrostar 201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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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즌마다 이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 같다. 겸사겸사 생각이 다시 나기도 하고, 뭐 어딘가 조금씩 업데이트되거나 태도가 바뀌기도 하고. 패션쇼를 챙겨 보는 목적은 여러가지다. 누군가는 유행을 캐치해 자신의 일에 반영하기 위해서 보고, 누군가는 6개월 후 구매할 쇼핑 목록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보고, 누군가는 다음달 패션 위크 특집을 채워 넣을 기사를 쓰기 위해서 본다. 또 누군가는 그냥 심심해서 본다.

이 곳에서 이야기하는 패션위크는 대부분 가장 후자의 시점이다. 그렇다면 그 상태로 뭘 보냐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대체 옷을 살 것도 아니면 무엇을 보는 걸까. 이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임.



크리에이터의 작업을 볼 때면 언제나 생각하는 건 그가 왜 지금 저런 걸 하고 있는가다. 사실 꽤 구시대적인 접근 태도이기는 한데 그 인식이 일단은 떠나지 않는다. 저이는 대체 왜 수만마리 누에가 죽어라 만들어 낸 실크를 저런 곳에 낭비하는가, 저치는 왜 평생 무두질 한 장인이 수백번 망치질한 나파 가죽을 저런 곳에 낭비하는가.

'왜'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일단은 많은 부분을 알아챌 수 있게 된다. 납득이 가지 않으면 인터뷰나 리뷰를 찾아보고, 그런 것 마저 없다면 추측을 하게 된다. 불필요한 잉여의 산물 -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 을 목격하면 "이런, 저 인간 길을 잃었군"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는 디자이너의 타임라인이다. 이것은 많은 경우 '왜'를 설명하는 단초가 되어주기 때문에 첫번째 시각과 한 몸이다. 구매 리스트 목적의 패션쇼 구경이 아니라면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장난을 치고자 하는 건지, 진지한 건지 목적론적인 이해도 가능하다. 여하튼 패션쇼라는 건 가수들이 음반을 내듯, 감독이 영화를 내듯, 소설가가 책을 내듯 일년에 두 번 선보이는 결과물이다. 

예전에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가, 무엇을 잘하는가만 알면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 바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게 되었다. von이나 van 붙은 사람들이 시즌마다 찾아와 가족용, 행사용 옷들을 휘이 쓸어가면 레이블은 유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사가도 유지되지 못한다. 덩치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넋놓고 앉아 있다고 저번 시즌에 왔던 귀족 집안이 다시 찾아오지도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LVMH나 Aeffe같은 큰 회사를 뒤에 두고 있는 디자이너 하우스에서 그 집안 사람들을 포함한 초청 인사들을 데려다 어디선가 프라이빗 크루즈 패션쇼 같은 걸 열었다는 소식만 들을 뿐이다. 아시아, 중동에서 마구 팔리는 덕분에 점점 커지고 있는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10년 전만 해도 SS와 FW만 하면 됐는데 요즘은 Pre-Fall, 크루즈 컬렉션을 해야 하고, 카탈로그 룩북을 만들고, 각종 예술 사업에 스폰싱을 하고 유튜브에 단편 영화 까지 만들어 업로드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회사가 가질 법한 공고한 이미지는 점점 허들을 낮추게 되고, 방어할 레인지가 넓어질 수 밖에 없고, 그러므로 예전보다는 다양한 취향들을 포섭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톰 포드 이야기처럼 점점 다 똑같아 질 수 밖에 없다. 고상한 몇 명의 고객만 가지고는 몇 시즌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디자이너 하우스는 포지셔닝을 가져야 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지셔닝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현재의 트렌드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하거나 진취적으로 다른 걸 제안하는 - 물론 잘 -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자기 색을 점점 더 강화시켜 가는 - 물론 잘 - 하우스들도 마찬가지다.



뭐 요즘엔 이런 생각들을 주로 하며 패션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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