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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코스프레와 표준복장

by macrostar 201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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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흔히 말하는 '코스프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혹시 검색이나 제목으로 들어오신 분들은 낚였다고 화를 내시지 말고 닫기를 눌러주시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패션 블로그라는 카테고리를 붙여놓고 있는 이 블로그에서는 코디와 쇼핑 이야기는 거의 없고, 브랜드나 사람의 포지셔닝과 행보 그리고 발란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패션에 대한 환상이 없는 패션 블로그는 처음 봤다'라고 댓글에 남겨주셨지만, 다른 종류의 환상이 있는 거겠죠.

모든 건 장사다라고 말하면 꽤 간편해 집니다. 톰 포드가 자기가 하는 일이 예술이 아님을 자각하면서 블라블라 이런 이야기를 했다던데(톰 포드가 과연 자기가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는 한가 궁금하긴 합니다만) 모든 건 장사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철학자도 테뉴어를 따고, 책을 더 팔아 안정되고 높은 연봉과 부수입을 얻기 위해 철학을 하는 거겠죠. 또 모든 걸 섹스다라고 말해도 간단합니다.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을 더 섹시해 보이도록 하는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팔고, 공학자는 연구 결과로 우월한 지위를 얻고 그걸 활용해 더 나은 섹스 상대를 쟁취하고 가족을 꾸려 안정된 공급을 받기 위해 연구를 하는 거겠죠.

사실이 그런 걸 지도 모릅니다. 어느 정도는 맞아요.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은 그다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앞뒤가 맞기는 커녕 대개는 엉망진창이에요.

여하튼 여기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좀 시큰둥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세상 어느 구석에서 특이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 같이 구경 좀 합시다하는 기분으로 뒤적거리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모토일 뿐이고 위에서 말했듯 구석 구석까지 일관된 방향을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토는 앰비언스처럼 존재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철두철미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 그러면 지금보다 더 재미없어질테고 결국 아무도 이 곳에 오지 않겠죠.


'여튼 대충 꾸려갈 수 있던 삶'이 붕괴되어버린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자살한 맥퀸(01)과 복제된 질 샌더(02)는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90년대 어디 쯤에 속 편했던 세상이 아주 잠깐 존재한 듯 합니다. 예외가 어느 쪽이었는지는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대충 마무리하고 코스프레입니다.




Costume Play
 
옷이야 그냥 옷이지만 그걸 입는 방식은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가볍게 분리하자면 스타일, 그리고 코스프레(Cosplay)다. 미묘하게 다른 분류가 또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둘로만 나누고 나머지들은 어떻게든 모두 다 포섭해 집어 넣는다. 러프한 분류라 물론 여러가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타인에 의한 교복 / 죄수복 / 제복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건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므로 이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물론 군복을 가지고 남다른 다림질을 한다든가, 뭘 붙여 장식한다든가 하는 등의 개인적인 활동도 있지만 그것은 옷을 입는 방식이라기보다는 남아도는 시간의 활용 방안에 더 가깝다. 뭐 여하튼 이런 건 일단 상관없는 이야기다.



스타일은 최근 몇 년간 이곳 저곳에서 괜히 신격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아무튼 삶의 flux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옷과 삶이 제대로 싱크가 이루어진다면(그럴 수 있다면), 그리고 확실한 포지셔닝을 잡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스타일이라 말할 수 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지만 사실 옷 입는 방식에 한정시켜 말하기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단은 막연한 태도이고 지향점이다.

그리고 클래식 유행에 스타일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고, 표준 양식에서 조금 벗어나게 자기 개성을 불어 넣고 유지하는 데에 스타일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해석은 너무 소박하다. 지금 말하고 있는 분류와 완전히 다르게 트렌드 vs 스타일의 분류도 있다. 사실 이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례인데 이 분류는 실제 상황에서는 스타일이 트렌드의 포함되거나, 혹은 부분 집합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유행 중 하나로서 스타일이 구성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단 처음 말한 스타일 vs 코스프레의 길을 걸어가겠다.

여튼 그렇기 때문에 옷에 대해 진정 아무 생각 없이 ‘뭔가 입어야 하는데 저것이 저기 있으므로 입겠다’라는 것도 삶의 방식이 옷의 선택과 연동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스타일의 일부라 하겠다. 오늘의 주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대충 지나가고.



또 하나가 코스프레다.

이것은 일종의 룰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트를 위해 잡지에 나온 예들을 보며 적절해 보이는 옷의 조합을 고른다든가, 데모를 하기 위해 평소에 입던 아르마니나 랑방의 옷(...)을 옷장에 곱게 접어 놓고 튼튼한 데님과 메시 카튼 티를 입는다든가 / 또는 아예 Commune de Paris같은 걸 입고(링크) 본격적으로 코스프레에 나서 보든가, 탐탁치 않은 마음으로 집안 행사 같은 곳에 입을 옷을 고른다든가, 비지니스상 커다란 딜을 앞두고 담판을 지으러 가기 전에 좀 더 강인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을 남길 옷을 고른다든가, 즐거운 마음으로 건담 등장 인물을 따라 입는다든가 할 때 입는 것은 말하자면 코스프레다.

잡지에는 상황에 따른 수많은 코스프레의 예들을 제시한다. 퍼머넌트 스타일같은 블로그나 남성 패션지의 스타일 제안들도 그것을 motivation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시나 제안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코스프레가 된다. 결국 현대 패션은 코스프레에 많은 것을 할당하고 있고 거의가 코스프레다.

이건 딱히 뭐가 더 좋다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인 그리고 촘촘한 망 안의 사회인으로 살아 가기 위해서 '적절한 복장'(Costume)과 그것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연기'(Play)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괜히 감색 양복은 신뢰감을 준다느니, 혹시 모를 일이니 속옷은 빅토리아의 시크릿이나 라 펄라로 하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저 따위로 입고 다니는 자가 날 넘보다니 내 인생도 끝장이군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널려있고, 저 따위로 입고 다니는 자가 이런 자리를 오려고 면접을 오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널려있다.

스타일과 코스프레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명확하게 구분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특정 문구가 적혀있는 티셔츠 같은 경우 그 사람을 모르면 맥락을 알 수 없다. 거기 뭐가 써있는 지도 모르는 경우엔 패션이다. 이렇게 살고 싶은데 하거나 / 이게 유행이니까라면 코스프레다.

힙스터가 종종 놀림을 당하는 것도 패션을 너무 코스프레 일변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명확하지는 않다. 어떤 찰라를 캐치해 나(를 비롯한 동종의 집단)만 알고 있는 코드를 보이고, 너는 이 코드를 알기는 하냐? 라는 힙스러운 행동 방식은 사실 스타일일 수도 있다. 삶과 후까시(좀 더 평화로운 말이 없을까...)가 어지간히 일체화 되어 있지 않으면 이런 거 잘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타일주의자들이라고 요즘 딱히 별 거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차피 서로 놀리고 헐뜯고 재미있어 하는 건 그냥 인간 문화의 일부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여기저기 알맞게 넘보며 알맞게 가슴팍과 쇼핑 욕구를 푹푹 찔러대는 의류 회사와 쇼핑 센터, 레스토랑과 잡지사 정도만 돈을 번다. 이런 건 우리가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치이자 선택된 길이다.

고도 산업화와 고도 사회화는 보통 고도 코스프레 사조와 동반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를 들어 소위 국민 백으로 스피디가 한참 잘 나가다가 최근 들어 2.55 같은 제품으로 살짝 바뀌었다. 남성 직장인들의 지갑이 어느 순간부터 명품 계열로 바뀐 것도 비슷한 현상인데 이런 집중 현상은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도 코스프레가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는 증거(선진국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친구가 샤넬이나 에르메스를 샀다하면 오오~ 하면서 구경도 하는 친목과 더불어 행해지는 진정성이 넘치는 일련의 절차는 여전히 꽤 즐겁다고 생각한다.



옷은 의식주 필수 생존 요소 중 하나다. 물론 옷 없이 사는 사람들도 분명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만 대부분의 인류는 옷을 입고 산다. 거기에 뭔가 더 꾸며보고 싶고 이왕이면 예쁘고 멋진 걸 좋아하는 본능,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자신의 애티튜드를 드러내거나 목적을 가지고 코스프레를 하는 좀 더 진화된 행동까지 겹쳐 패션이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신선 놀음이자 잉여 자본 소비 놀음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 접어들어들자 유니클로는 동네에 있는 조금 큰 옷 가게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회장은 일본 1위 갑부가 된다. 자라도 스페인이 불황에 접어들자 대번 회장이 스페인 1위 갑부가 되었다.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고착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게 될 것이고 빠른 적응만이 갈 길이다.   
 
패션은 더 이상 만인의 친구가 될 수 없을 지 모른다.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면 제국이나 거대 행성의 큰 파티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외계인들이 나오지만 등장하는 평범한 일반인들은 거의 모두 유니폼을 입는다. ‘기능적으로 완성된 옷’이란 실로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합의만 가능하다면 옷과 관련된 평범한 시민들의 일련의 고민들을 단숨에 소거시킬 수 있다.

'나는 옷이 너무 재미있어, 쇼핑이 너무 재미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많겠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계산해보고 뭔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취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길 권한다. 영화라도 꾸준히 보고, 아니면 네이버 뮤직 정기권이라도 끊어서 노래라도 들을라치면 약간이라도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패션을 포기하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이 심난하고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겠는 파국의 와중에 패션이 어쩌니, 뭐가 유행이니 따라가야지 하고 있는 건 너무나 팔자 좋은 소리일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랑방의 티셔츠 하나를 살 가격이면 도미노 2호를 백권 쯤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몇 가지 남아있는 사회적 의식들에도 참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쟤는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입고 여기에 나타나다니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진다. 랑방은 아닐지라도 다만 요식행위를 위해 뭔가가 필요한 거다. 이걸 타개해 보자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당장 유니클로가 미래형 신소재 표준 복장을 내 놓고 일부 유한 계급을 제외하고 그걸 유니폼으로 입는다면 옷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점들이 해결되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과학의 발전도 미진하고, 인간의 본능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므로 현재를 과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유니클로 시그널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길 제안한다.

즉 유니클로를 입고 있으면 아, 저는 옷을 입어야 한다니까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니클로를 입고 있으니 저 따위로 옷을 입고 있다니라는 생각은 말아주세요라는 시그널링을 보내는 거고 /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 쟤는 유니클로를 입고 있으니 코디나 옷 쇼핑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다른 문제에 천착하고 있나보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성립된다면 아무도 손해볼 것 없고 득만 있는 이상적인 균형 상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가 입고 있는 게 유니클로구나라는 걸 먼저 알아야하는데 그러자면 눈에 익어야 한다. 사실 유니클로는 워낙에 유니클로스럽게 생겼기 때문에 아무리 신제품이 나와도 약간만 눈썰미가 있으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마침 적절하게도 유니클로에서는 찌라시가 나온다.


일본에는 찌라시 홈페이지가 있지만(링크) 이외 나라들 홈페이지에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 점포별로 위와 거의 유사하게 생긴 전단지를 직접 발행하는 경우가 있다. 유니클로 한국 홈페이지에도 빨리 찌라시 페이지가 만들기를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왜 하필 일제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글로벌 규모의 일이 되야 하므로(비행기를 타고 어느나라에 떨어져도 아, 쟤는 유니클로를 입은 애구나하는 마찬가지 평을 들을 수 있다면 심지어 세계의 안정에도 작게나마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유니클로가 적절하다.

SPAO나 에잇세컨즈 등 국내 SPA 패션 기업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특히 에잇세컨즈에 대해 기대가 큰 데 패션의 대안으로서 SPA의 길을 가야할 브랜드가 트렌드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100이 저기에 있는데 10을 벌겠다고 나서서 1을 하고 있다. 아무리봐도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차후에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포스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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