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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 I hate Perfume 향수

by macrostar 201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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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따지고 보면 옷이나 그릇도 마찬가지로 직접 마주 대하고 써 봐야 그것이 발하는 느낌을 그나마 명확하게 인지하겠지만, 맛이나 향 처럼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들은 뭐라고 떠들어봐야 모호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지금처럼 써보지도 못한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요령이라는 게 있어서 향수 노트에 대한 리뷰를 꾸준히 보고, 사용해 보고 하면 일말의 단초라도 잡히게 된다. 내가 요즘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향수인 CHANEL ALLURE HOMME의 경우 fragrantica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 4가지 메인 테마의 조합으로 green freshness, warm sharpness of pepper, strength and elegance of wood, and warm sensuality of labdanum, and tonka. 탑 노트는 진저, 라벤더, 만다린 오렌지, 피치, 베르가못, 레몬 / 베이스 노트는 샌달우드, 통카 콩, 코코넛, 벤조인(안식향), 오크에 붙어자라는 이끼, 바닐라, 앰버, 머스크.

개인적으로는 탑과 베이스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여러 향들이 섞이면 구분이 어려워지고 독특한 풍모가 생겨나므로 저 재료들만 가지고 어림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어차피 구별하라고 섞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향이 튀는 것들이 당연히 먼저 튀어나오고 진중한 것들은 서서히 유지된다. 위 재료들의 경우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건 베르가못, 만다린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저 노트들을 보며 대충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예상한 향을 나중에 직접 마주 대했을 때 어떤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 보는 작은 재미도 있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이 포스팅에서는 물론 '예상'에 대한 것만 다룬다. 알뤼르 옴므의 경우 라벤더와 베르가못이 처음에 빛나고 너무 무겁지 않지만 진중한 것들이 계속 이어진다. 머스크를 무겁게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기대보다는 가벼운 게 흠이라면 흠이다.

우리 나라의 향수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참 동안 파리나 이태리의 디자이너 하우스에서 나온 제품들이 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다가 향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분위기가 약간 바뀌었다. Clive Christian이나 4711, Frederic Malle, Byredo, Le Labo, Creed 등등의 좀 더 전문적인 향수 하우스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국내 시장에서 안경이 지나왔던 길과 비슷하다. 앞으로 나름 큰 향수 하우스들을 거쳐, 재미있고 개성있는 향수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들어오게 될 텐데 CB도 그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메인 하나와 서브 하나를 가지고 왔다갔다 하며 쓰는 패턴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는데 다음 번에는 추세와 호기심에 따라 말레에서 나온 여자 향수 같은 걸 써볼까 생각 중이다. 


이런 거.

이제 CB에 대한 이야기.



CB I hate Perfume이라는 이름은 역시 좀 웃긴다. CB는 이 회사를 만든 Christopher Brosius의 머리글자다. I hate Perfume은 그가 1992년에 썼다는 Manifesto다. 여기(링크)에서 전문을 볼 수 있다. (I hate Perfume의 이유가 적혀 있기는 하지만 일부러 가서 볼 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이 분은 뉴욕에서 택시 운전사도 하고, Parson에서 패션 공부도 잠깐 하고, 바니스에서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키엘의 Pharmacy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일하다가, 1992년에 크리스토퍼 게이블이라는 사람과 Demeter Fragrance라는 회사를 차리며 향수 산업에 본격 진출한다. Demeter에서는 Dirt, Snow, 진토닉 같은 이름이 붙은 싱글 노트, 즉 한가지 향으로 된 향수들을 내놓았는데 그게 꽤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동업을 정리하며 2004년에 힙스터들의 고향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에 다시 가게를 낸다. 그게 CB I hate Perfume이다. 


이렇게 생긴 곳이다.

CB 향수의 큰 특징은 오일 베이스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주로 알콜이 베이스인 다른 향수와 차이를 보인다. 그에 따르면 알콜은 Scent를 왜곡시키며, 너무 빨리 증발한다. 그렇다면 아로마 오일같은 느낌이 날 것 같다. 그는 커스텀 향수 주문도 받는데 3,000불 부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알콜이 들어간 향수를 더 선호한다. 덧없기 때문이다.

* 오일 향수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CB의 경우 잘 상한다는 제보가 있다.

이런 업을 유지하려면 웃기든지 발랄하든지, 아니면 아예 진중하든지 해야하는데 CB는 회사 이름부터 그렇지만 웃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 향수 이름도 At the Beach 1966, 2nd Cumming, Fire from Heaven, I am a Dandaleon, A Room with a View, In the Library 등등으로 꽤 재미있다. 각 향수 시리즈들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고 설명도 첨부되어 있다.

http://www.cbihateperfume.com/collections.html  

2nd Cumming의 경우 그 Cum이 아니라 영화 배우 Alan Cumming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Anti-Celebrity 프로젝트의 새로운 지평이라나 뭐라나 그렇단다.

노트가 단촐하니까 다 소개하면 탑 노트가 베르가못, 페퍼, 소나무, 위스키 / 미들 노트가 담배와 전나무 / 베이스 노트가 가죽과 흙이다. 짐작을 해 보시길. 전나무 아래에서 위스키 마신 카우보이가 담배를 피고 있는 냄새 쯤에 베르가못 향이 살짝 나는 정도일 거 같다.


이 향수는 Alan Cumming을 직접 데려다 광고도 찍었다. 이건 동영상 쪽이 더 웃긴다.




in the library같은 경우에는 더 심플해서 러시아&모로코 가죽 향과 나무 향, 낡은 옷에서 나는 향으로 조합했다. 그냥 오래된 책들이 놓인 도서관을 그대로 이미지화 했을 것 같다. 안에 있는 아가씨라는 느낌으로 샬랄라한 걸 하나만 넣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뭐 만들어진 건 만들어진 대로 가치가 있는 법.

회사 이름들도 그렇고, 제품들 이름도 그렇고, 광고도 그렇고 하나같이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이 직설적이다. 싱글 노트, 혹은 이런 단촐한 향들의 조합이라는 건 매우 스트레이트하기 때문에 몸에다 사용할 때 어떤 느낌이 날지 역시 궁금하다. 현재 스코어로는 CB는 포지셔닝을 매우 잘 잡았고, 행보도 탄력이 있는데다가, 스몰 스케일 안에서 사업 수완도 매우 뛰어나 보인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전략이 어떻든 그런 걸 다 떠나 결론적으로 Basenote나 Now smell This, Fragrantica 등등 포럼을 보면 향수에 대한 평이 꽤 좋다. 그가 자신있게 말한 바 예민한 코를 지니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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