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매장 유람 - 명동 8세컨즈

by macrostar 2012. 3. 19.
반응형
저번에 잠깐 예고했던(너무 야심차 보이네 -_-) 매장 구경기 제목을 뭐로 할까 하다가 잠정적으로 매장 유람으로 정했다. Shop Talk, Peeping Shop 이런 이름도 생각해봤는데 딱히 재미있는 게 생각나지도 않고, 구경기이러면 왠지 본격적으로 막 들춰보고 그러는 기분이 들어서 일단은 유람기. 다른 거 생각나면 그때가서 바꾸면 되는거고.

원래 계획은 소소한 동네 매장들 구경이었는데, 첫번째가 약간 엉뚱하게도 8세컨즈 명동점이다.

 
매장 전면. 창문에 비춰 보이는 건 명동 중앙 극장이다. 왼쪽에 커다란 TV가 있는데 NYLON TV인가가 나오고 있었다. 1층 여성, 2층 여성, 3층 남성의 요즘 전형적인 대형 패스트패션 매장 구성이다. 다만 지하에도 매장이 있어서 그래픽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저런 기획들이 들어가 있다. 

1+3층 매장이지만 생각보다 좁은 편이다. 거기에 동선 설계가 이상하다. 비좁음을 만끽할 수 있다고나 할까. 더구나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려는 의도인지 벽면을 거울로 해놓은 층도 있었는데 사람도 많고, 방향도 애매해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 정신이 없었다. 

옷들 이야기를 하자면, 원래 8세컨즈에서 내놓았던 포지셔닝이 유니클로보다 세련되고 다양하게, ZARA보다는 저렴하게 이런 식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타겟층 나이대가 (많이) 낮아 보인다. 매우 울긋불긋한데 세련되거나, 볼만하거나 한 건 아니고 한류 케이팝 아이돌 풍이라고 할까. 며칠 전에 Raf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과 콜래보레이션을 하던가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막상 자세히 보니 그건 전혀 안 되겠다 싶다. 가는 길이 너무 다르다. 만약 진심을 다해 임한다면 둘 중 하나는 정신이 이상해질 듯.

8세컨즈만 판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2층, 3층에는 다른 회사 제품도 가져다 놓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편집샵 개념인데 명동 점만 그런건지 가로수길 점도 그러는 지는 모르겠다.

생각나는 것만 말해보자면 사봉 드 마르세이유의 비누 제품들, Paperbacks의 바지, Herschel의 가방, Sandast의 가죽 가방, Christy's의 중절모, Cote & Ciel의 노트북 케이스 같은 것들이 있었다. Sandast같은 데는 핸드 메이드 가죽 제품 전문으로 꽤 비싼 데 좀 뜬금없었다. 확인해 본 백팩이 99만원이었음.

지하 그래픽 쪽에 '다섯살 연우의 꿈'이라고, 연우가 그린 그림을 프린팅한 티셔츠들을 판매하고 있다. 뭐 기획 의도야 좋은 뭔가가 있겠지만 그 뜬금 없음은 너무나 이상하다. 거기서 바로 한 층 올라가면 이번에는 새하얀 양털로 둘러진 양 모형에 파스텔톤 브래지어들을 몇 개씩 올려놓고 있다. 여튼 매우 버라이어티하다.

3층 남성복 매장 구석에는 그 나무로 된 선반들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영국 남성복 샵 분위기로 수트 관련 제품들을 몰아놨다. ZARA나 H&M에 구석에도 이런 게 있다. 여기는 정말 안타까운데(-_-) 옥스퍼드 셔츠도 한심하고(재질이 대체 뭐였는지 비닐같은 느낌), 바지도 한심하고, 수트는 그냥 백화점 5층 남성복 매장 마대에서 파는 감색과 회색의 그것 뿐이다. 그럴 거면 대체 왜 거기다 폼 잡아가며 몰아놨는지 모르겠다.

연우의 꿈이 마음에 가장 크게 걸리지만 그건 브랜드 컨셉의 측면이니 뭐 굳이 하겠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고, 그냥 테크니컬한 측면에서 다른 건 몰라도 동선 재단장(매장이 좁다면 어떻게든 다 구겨 넣는 거 보다, 명동 매장 컨셉에 맞춰 구색이 맞는 것들로 챙겨 넣는 게 낫지 않을까?)과 남성 신사복 부분은 어떻게 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사실 처음 들어갔을 때 북적거리는 와중에 사람에 많이 치이고 암만 봐도 뭔가 이상해 좀 암담했던 김에 그런 분노의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들어가서 돌아다니는데 어떤 커플의 "여기 정말 감각있지 않냐?"하는 흥겨운 대화와, 또 다른 커플의 "아, 너무 싸고 너무 좋은데"하는 즐거운 대화를 듣고 내가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건가, 세상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닌가 살짝 의심하고 있다.

솔직히 모기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왕 거대한 기업이 시작했으니 뭔가 좀 잘하고, 덕분에 종종 찾아가는 즐거움 같은 걸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자본도 많으니 과감한 콜래보레이션 같은 것들도 아마 할 수 있을 거다. 또 위 커플의 대화처럼 지금 상태를 명백히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글로벌 패스트패션을 하려고 한다면 이미지라도 정돈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로썬 아무리 기억을 반추해봐도 떠오르는 건 빨강/파랑/초록의 현란한 잔상들과 브래지어가 올려져 있던 양털 인형 밖에 없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