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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패션쇼를 감상하는 한가지 방법

by macrostar 201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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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ace for H&M 이후에 별 다른 이슈도 보이질 않고, RSS에는 왠 나이키의 올드 스쿨풍 운동화들만 산더미처럼 보이고(혹시 다시 유행이 시작된 건가?) 해서 그다지 재미가 없는 판인데 심심한 김에 패션쇼에 대한 이야기나 해 본다.

아래 내용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람 방법이고,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먼저 말해둔다. 참고로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패션쇼 관람객은 도도한 패션쇼 갤러리들 사이에서 박스 골판지에다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메모를 해가며 등장하는 옷을 보던 50대 정도로 보인 잠바 입은 아저씨다. 아무래도 옷 만드는 공장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현역의 포스란 역쉬... 하는 생각이 들던 기억이 난다.

패션쇼라는 건 어쨋든 옷을 보여주겠다는 쇼다. 거기서 뭘 보든 그건 자유다. 옷을 볼 수도 있는 거고, 전반적인 이미지를 볼 수도 있는 거고, 문화 예술적인 해석을 하기 위해 애쓸 수도 있는 거고, 그날 저녁에 올려야 할 기사 거리를 발견해 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모델들을 볼 수도 있는 거다. 패션쇼를 보겠다고 앉아있는 갤러리들도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앉아있다.

한창 예쁘거나, 노출이 심하거나 한 옷을 입은 모델이 등장하면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고 있던 프레스 진에서 우~ 아니면 와~, 심하면 휘리릭~하는 함성이 흘러나오는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엔 무엇을 보고 있는 지가 아주 명확해서 이해가 쉽다. 예전에 무슨 잡지에서 미국에서 영화 시사회를 하는데 할 베리가 벗는 장면이 나오니까 다들 환호하더라고 하던데 이쪽 동네는 이런 감정 표현이 확실해서 편하다. 어차피 의식주 3종 세트 중 하나인 옷이라는 것도 원초적인 테마다.

중요한 건 이건 마네킹들이 옷을 주르륵 입고 있는 걸 보거나, 매장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보거나, 아니면 사이즈가 맞나 안맞나 입어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다. 또 패션쇼에 나오는 옷들이 모두 팔리는 옷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나중에 패턴 디자이너들이 손을 보고 양산형 체제로 바뀌어야 매장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저걸 어떻게 입냐... 라는 건 일단은 이치에 맞지 않는 비판이다.

요즘은 그런 경향이 낮아지긴 했지만 패션쇼에 등장하는 옷은 어디까지나 한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대충 이런 모습들이 나올거다라는 컨셉을 제시하는 쇼다. 그리고 이것은 음악과 옷, 모델들의 (약간의) 연기도 함께하는 퍼포먼스다. 이런 공감각적 쇼를 그냥 옷을 보이는 데만 써버리기엔 아깝다는 걸 디자이너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들이 나온다.



2009년 SS MMM.옷이 물론 주인공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논리적인 분석도 중요하겠지만 일단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 아, 뭔가 지나간다하는 느낌으로 색-이미지-소리-움직임 같은 걸 한 번에 느끼면서 종합적인 인상을 만들면서 디자이너를 이미지화 하는 작업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거의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그리고 아낌없이 투자하며 화려함의 극치를 달려버리는 오드 꾸뛰르보다, 좀 더 소소하게 리버럴하고 재미난 볼 거리가 많아서 프레타 포르테 구경을 아주 약간 더 선호한다.





2005 SS McQueen.기묘한 이미지 전달은 MMM(마르지엘라)가 참 능하고, 스탠스와 실루엣을 전달하는 건 고르티에가 참 잘한다. 후세인 살라얀이나 맥퀸 같은 경우에는 theatrical하다. 후세인은 여기에는 안 올리는데 1999 SS가 매우 쇼킹하다.





2009 SS Hussein.이렇게 진중한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흥청대는 건 또 흥청대는 대로 나름 즐거움이 있다.





2007 FW Galliano.뭐가 되었든 구질구질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산뜻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게 기억에도 잘 남고 즐겁게 보기 좋은 패션쇼가 아닌가 싶다. 패션쇼 장은 그것도 나름 피곤하고 프로젝터 같은 걸로 몇 명 함께 모여 맥주나 퍼 마시면서 보는 것도 나름 즐겁다. 그런 모임을 한번 해볼까 싶은데... 결국은 뭐든 재밌게 살자고 하는 짓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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