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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패션 雜論

by macrostar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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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이상한 가 싶은데 원래 아이스버그 論을 쓰려다가 두 가지 이야기를 먼저 꺼내본다. 아이스버그라는 이상한(?) 패션 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1) 장인이 개입된 제품 제작은 말하자면 매니아질 중에 하나다. 좀 더 고급 재료 얻겠다고 산으로 들로 인도로 돌아다니고(로로 피아나의 베이비 캐시미어 링크), 흔들림을 체크하겠다고 부품을 입에 물고 시계를 조립하고(독립 시계사들의 소우주 링크), 바느질을 2만번 씩 해서 가방을 만든다(에르메스 링크).

 

그냥 캐시미어와 베이비 캐시미어의 차이는 알 수도 없는 정도일 지도 모르고(루이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굳이 부품을 천 개 씩 쓴다고 시간이 더 정확해 지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부품이 많으면 잔 충격에 훨씬 민감해져 고장이 잘 난다), 바느질이야 손으로 하든 재봉틀로 하든 사실 많은 부분 기분상의 문제일 뿐이다.

 

패션은 어느 정도는 그와 닿아있고, 어느 정도는 그와 떨어져있다.

 

안감에 심을 박고, 촘촘히 손 바느질을 하고, 굳이 쓰지도 않는 수트 손목의 단추를 하나하나 사용 가능한 리얼 버전으로 달기도 한다. 이와 대비되어 디자인 자체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는 경우도 있다. 만듬새는 약간 떨어질 지 몰라도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선도한다. 이 역시 가만히 앉아서 밤하늘의 별 숫자나 새고 있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방향이 다를 뿐 어쨋든 몰두의 정도는 같다.

 

2)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는 진짜도 널려 있지만, 사기꾼도 널려있다. 부티크에 산처럼 쌓여있는 옷들의 가격 대비 효용을 모두 체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네임 밸류를 따라가지만, 또한 이 세계의 경쟁 역시 만만치 않아 한 방에 백 년 명성이 날라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옥션에서 그림을 구입하려는 사람처럼, 중고차 마켓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사람처럼, 암시장에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려는 사람처럼 감식안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3) 잘 만들어지고 고급이고 비싼 물건이 튼튼하다는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 이 둘은 거의 전혀 관계가 없다. 코렐보다 고려 청자가 더 좋고 비싼 이유는, 고려 청자가 더 튼튼하기 때문은 아니다.

 

진짜 고급 양가죽은 애초에 험이 거의 없는 소재를 힘들게 비싼 가격에 사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제품화가 되어 갈 수록 비싸진다. 원형 보관은 훨씬 어렵다. 에르메스의 켈리 백은 토고 가죽만 구하면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고, 아마도 구하면 한 두개 쯤은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 명이 넘게 세상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에르메스 가죽 바이어들의 인적 라인을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4) 물론 이것들은 기껏해야 옷들이고, 장신구들이고, 가방들이다. 대체 왜 말도 안되는 가격의 가방이 존재하는가, 혹은 그걸 봐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존재한다. 이럴 때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 있다. 다시 고려 청자 이야기를 하자면 고려 청자 역시 어차피 술병, 물병이지만 11세기 무신 정권 당시 최고위층 아니면 사용하기는 커녕 구경할 수도 없는 레벨의 고급품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없었으면 더 나은 세상인가 하면 그건 모를 일이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피카소나 고흐의 그림이 좋다고 모두들 그걸 안방에 걸어놓을 수는 없다. 샤넬 가방이 고흐 그림만큼 가치있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흐의 닥터 가세의 초상은 1000억원이고 샤넬 2.55 가방은 500만원이다. 마구 찍어내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좋은 소재를 사용한 양산품임을 고려하면 2만배 차이라면 이해는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샤넬 2.55 제작 모습. 손으로 자르고, 조립하지만 바느질은 재봉틀로 한다.

 

 

물론 굳이 무리해서 소셜 스테이터스를 위해 구입하는 건 약간 다르고 무척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방향에 대해서는 혹시 기회가 닿으면 다음에 이야기해 보겠지만, 굳이 그러겠다는데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지 싶다.

 

5)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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