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단골인 시에라 디자인의 60/40 파카다. 이게 정작 입을 계절에는 안 입으면서 도무지 입을 수 없는 여름, 겨울에는 꺼내서 방에서 입어보고 이렇게 사진도 찍고 떠들게 된다. 딜레마의 옷이다... 아무튼 시에라 디자인의 60/40 마운틴 파카다. 라벨로 추정해 봤을 때는 나무가 세 개 그려져 있는 90년대 산이다. 70년대, 80년대에는 7개, 8개의 나무가 그려져 있었는데 삼림 파괴에 항의한다는 의미로 3개로 줄여버렸다는 소문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잠깐 블랙 라벨이었다가 다시 레트로 라벨로 컴백했다.
60/40 파카는 물로 세탁하면 안된다는 경고가 붙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탁기에 빙빙 돌리면 이렇게 된다.
형광등 때문에 약간 과장되게 나오긴 했는데 햇빛 받으면 그게 그거다. 빛에 바랜 낡은 차양막 같은 분위기가 난다. 원래의 색을 보존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건 아웃도어 자켓이다. 게다가 아웃도어 자켓의 원조, 조상 같은 옷이다. 비 맞고, 바람 맞고, 흙 튀고, 계곡에 잠시 구르기도 하면서 입는 옷이다. 원래의 색 따위 어떻든 알게 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라 디자인 일본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물로 세탁하면 안된다는 경고가 적혀 있다. 요새도 달려 있는지 모르겠는데 물 세탁하지 말라는 라벨도 붙어 있다.
왼쪽이 현행 모델, 오른쪽이 과거 모델. 자세히 보면 세탁 라벨 왼쪽 위 그림에 왼쪽은 X가 그려져 있지만 오른쪽의 예전 세탁 라벨을 보면 물세탁에 X 표시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세탁 불가 표시가 없다.
나는 이게 아마도 60/40을 팔고 사는 이들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던 시에라 디자인 재팬이 자기가 파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웃도어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입는 옷이 물세탁이 불가라니, 게다가 홈페이지에는 비는 막고 습기를 배출한다는 등 설명이 있다. 애초에 거친 대자연에서 입는 걸 가정하고 만든 옷이다.
즉 90년대 헤비 듀티 세대들에게 나름 높은 가격에 추억을 파는 브랜드로서(현행가 6만 6천엔이고 국내 가격은 77만 9천원이다) 뭔가 특이한 캐릭터를 잡고는 싶은데 물세탁하면 색이 마구 빠지고 변형되는 직물이니까 이런 방향을 잡지 않았을까 싶다. 곱게 보존해라. 차라리 유리 상자에 전시해 놓고 구경만 해라.
하지만 아무리 추억을 판다고 해도 차라리 세탁하면 물이 마구 빠집니다, 그게 멋진거에요 라고 방향을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아웃도어의 옷이다. 물론 시에라 디자인의 복잡한 고뇌도 이해는 간다. 60/40 미국제는 중고 매장에 끝없이 널려있다. 그것과 대응하는 방법 중 굳이 이런 옷을 새걸로 사려는 이들을 위해 원래 색 그대로 보존해 남들은 가지지 못한 새 버전을 가지고 있는 티를 낼 수 있는 팁을 주는 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판매할 다른 제품이 많이 있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다. 노스페이스나 마무트, 마모트, 컬럼비아, 랩 등등 기라성 같은 아웃도어 브랜드가 널려 있는 시장에 미국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시시하게 보이는 현행 제품을 살 이유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한국 시에라 디자인스는 더 애매하다. 그냥 디스커버리, 코닥 같은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는 거 같다. 오리지널 미국 제조판을 판매중이긴 한데 수요층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헤비 듀티의 시절이 없었고 그러므로 추억을 사는 사람도 없는데 저 가격이면 다른 대안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이 옷이야 말로 진정한 고프코어, 건포도와 땅콩에는 시에라 60/40이라고 하기도 약간 민망하다. 나처럼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떠드는 사람도 어지간해서는 새 옷 구매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렇듯 훌륭한 유산을 가지고 있어도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럼에도 시에라 디자인의 60/40 파카는 재미있는 옷이다. 이게 대체 뭐지 싶은 원시성, 터프함, 투박함은 대체재가 없다. M-65가 비슷한 레벨의 터프함을 가지고 있지만 가는 길이 명백하게 다르다. 그러므로 이게 마음 속 어딘가에 들어 왔다면 이것 뿐이다. 비슷한 것도 없다. 조상님 같은 옷이란 원래 그거 믿고 가는 거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