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피오나지의 M-64 코튼 파카다. 중고로 구입했다. 사실 중고 제품은 대체재를 구할 수 없거나, 보존 가치가 있거나 한 것, 내가 쓰는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 정도만 구입하자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본 이 옷이 좀 재미있는 거 같고, 저렴하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옷과 조합으로 용도가 있을 거 같아서 구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긴 옷. 프랑스 군의 M-64 파카를 모티브로 해서 나온 옷이다.
플래킷 가운데를 스티치로 살렸고 주머니를 일자로 만든 정도 변형이다. 크게 수정된 건 아닌데 프랑스 군의 파카와는 느낌이 꽤 달라서 유로 보다는 미군 느낌이 강하다. 프랑스 군 M-64와 미군 M-51 사이의 어딘가 쯤. 거기에 엔지니어드 가먼츠의 하이랜드 파카나 매디슨 파카 같은 걸 곁들인. 스펙이 꽤 재미있다.
일단 기본 소재는 미국 코튼으로 만든 14.4온스 아미 - 코드 클로스라는 면을 사용했다. 10수 콤팩트 얀과 16수 콤브드 얀을 섞은 원사로 2차 대전 미군이 사용한 옷감을 분석해 에스피오나지에서 직접 만든 거라고 한다. 워싱을 한 번 해서 수축률을 줄였다. 사용상 편의를 위해 벨크로는 모두 제거하고 홑겹이다. 겉에 스냅 버튼 붙은 주머니가 두 개 있고 안에 커다란 주머니가 두 개 있다. 스냅 버튼은 YKK의 퍼멕스 스냅을 사용했다. 메인 단추는 미국제 멜라민 버튼이다. 후드와 허리, 맨 아래에 스트링이 들어가 있다. 보다시피 구석구석 신경을 많이 썼다.
일단 밀도가 높은 코튼인데 아주 고밀도는 아니다. 아주 약간만 더 유연제를 쓰던가 해서 부드럽게 만들어 놨으면 더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모양의 유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스냅 버튼과 메인 단추는 적절한 광택과 적절한 사이즈로 매우 훌륭한 선택이다. 스트링은 좀 지나치게 굵지 않나 싶다. M-65에 들어있는 평범 무난한 것 정도 써도 좋았을 거 같다. 필드 재킷이나 파카의 끈은 급할 때 빼서 다른 데 쓸 수도 있다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게 쓰진 않겠지만 그렇게 쓰라고 만들었다는 사실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 그리고 끈이 좀 굵으니까 애들 옷처럼 보인다라고 할까... 진지함이 떨어져 보인다고 할까... 아무튼 그런 인상을 준다.
문제점이라면 애매한 두께다. 한국 날씨에서 두꺼운 코튼이라는 건 용도가 한정적이다. 약간 더 얇게 해서 가을에 편하게 입다가 라이너를 붙이게 하는 게 더 쓸모가 많다. 지금의 두께는 필드 자켓용이다. 그런데 목 뒤 부분에 피시테일 파카에 붙어 있는 라이너 결속 단추가 있다. 하지만 그게 다다. 프론트 안쪽이나 손목에는 없다. 약간 이상한 선택이다. 어딘가 생략한다면 손목에만 남겨 놓는 게 더 유용하다. 벗을 때 따라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목 부분에는 왜 남겨 놓은 건지 의문이다.
그리고 주머니 위치도 약간 불만이다. 바깥 주머니와 안 주머니의 위치가 같다. 그러므로 한 쪽을 꽉 채우면 한 쪽을 못 쓰게 될 확률이 크다. 이래서는 굳이 커다란 주머니를 붙인 이유가 감소된다. 두터운 몰스킨으로 만든 프렌치 워크웨어를 보면 겉면에 커다란 세 개의 주머니가 있고 안 주머니가 하나 있다. 가슴 주머니는 하나는 바깥에, 하나는 안쪽에 있는데 위치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겉 4 주머니가 아니라 겉 3 + 안 1 주머니가 되었다. 이런 부분 같은 걸 유심히 생각했다면 이런 설계는 나오지 않았을 거 같다. 사실 밀리터리 옷은 안 주머니가 없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도심 생활에 맞게 안 주머니를 넣을 거라면 양쪽을 다 꽉꽉 채워 쓸 수 있게 위치를 좀 조절하는 게 좋았을 거 같다.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꽤 재미있는 옷이다. 3, 4년 전 쯤 나왔던데 요새 옷도 좀 자세히 보러 가볼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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