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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필슨과 르 라부어의 울 자켓

by macrostar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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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이름을 말해보자면 필슨은 매키노 크루저 울 자켓이고 르 라부어는 래 랜 비스퉁 뭐 이 정도인가 싶다. 그냥 울 자켓이라는 소리지. 둘 다 짧은 길이의 울 자켓으로 용도가 거의 같다. 한쪽은 미국 제조, 다른 한쪽은 프랑스 제조. 필슨 이야기는 여기에서도 많이 했었는데 작년에 뭔가 유로의 느낌을 좀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구입을 했었는데 겨울에 추워서 못 입다가 요새 열심히 입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또 겹치는 용도의 옷을 가지고 있게 되었는데...

 

 

왼쪽이 필슨, 오른쪽이 르 라부어. 둘 다 멜톤 계열의 울이고 안감이 없는 100% 울이다. 하지만 둘은 상당히 다르다. 그냥 정가만 찾아봐도 필슨은 공홈에서 495불이고 르라부어는 공홈 쇼핑몰이 없는데 찾아보니까 150유로 정도 하는 거 같다. 필슨의 네임 프라이스가 조금 더 있을 거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격 차이가 상당한 편이다. 

 

역사를 생각해 봐도 좀 다르다. 필슨은 울 매키노 자켓이 먼저 나왔고 이걸 코튼으로 만든 게 나중에 나왔다. 프렌치 워크 재킷은 몰스킨 코튼이 기본이고 아마도 이걸 겨울에도 입자 해서 울 버전이 나왔을 거다. 그러므로 순서가 반대다.  

 

필슨 쪽은 상당히 딴딴하다. 밀도가 상당히 높은 울이라 설명에 나오는 방수 뿐만 아니라 방풍에도 나름 재주가 있다. 사실 미국 옷을 많이 입어봐서 이쪽은 상당히 익숙한 재질이다. 르 라부어는 설명을 보면 우썽(Ouessant)이라는 섬에서 나온 울을 사용한다.

 

우썽은 프랑스 서쪽에 있는 섬이다. 건지, 저지 섬 왼쪽에 있다. 이 동네 특산 양이 있는데 영국에서 온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 땅이다. 르 라부어가 원래 이태리 출신 상인 아저씨가 브르타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작업복을 팔다가 독립해서 만든 브랜드다. 1956년 설립했으니까 전통 워크웨어 계열의 오래된 브랜드들과 비교해 보자면 그렇게 오래된 브랜드는 아니다. 가까이서 구할 수 있는 품질 좋은 울을 쓴 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매키노라는 이름이 나온 매키너 섬은 위 지도의 빨간 지점이다. 매키노 울은 그저 마케팅 용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고 사실인 점도 있기는 하다. 멜톤 울인데 버팔로 플래드 무늬가 들어 있는 게 매키노 울 이렇게 말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위 사진의 그린 색은 매키노 울이 아니겠지. 아무튼 필슨 울의 이런 딴딴함은 딴 데 잘 없기는 하다. 하지만 필슨의 크루저 자켓은 원래 휩코드 울이었다. 뭐 더 좋은 게 눈에 들어와서 가져다 썼겠지.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필슨의 매키노 울은 코튼으로 치자면 딴딴하고 치밀한 게 트윌 같은 느낌이 있다. 르 라부어의 우썽 울은 몰스킨하고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다. 푹신푹신하고 공기를 잔뜩 품고 있다. 하지만 몰스킨은 푹신한데 밀도가 높은 느낌이 있다면 울 버전은 푹신하되 느슨하다. 약간 이상한 옷임. 일본 쪽에서는 쇼핑몰에서 버터 같은 울 이런 용어를 쓰던데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하지만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일단 따갑다. 필슨도 그렇긴 하지만 이쪽이 훨씬 억세다. 어지간한 티셔츠는 뚫고 들어와 살을 찔러댄다. 그리고 털이 엄청 날린다. 이거 언제 다 떨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또 하나는 지푸라기?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피셔맨 계열의 무슨 울 스웨터를 샀었는데 사이사이에 지푸라기 같은 게 껴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했었는데 이것도 그렇다. 분명 뭐가 안에 있음. 바다 근처 풀밭을 굴러다니던 양의 털을 깎아 그냥 옷을 만들어 버린 거 같은 분위기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필슨과 르 라부어의 100% 퓨어 울 자켓은 울 계열 옷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있다면 둘 다 가지고 있을 만 하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격하게 사용하고 습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하지만 않는다면 둘 다 아마 평생 멀쩡할 타입의 옷이다. 

 

검색을 해보면 두 재킷의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필슨. 미국 냄새...

 

르 라부어. 프랑스 냄새...

 

이런 옷이다. 젊은 세대의 착용률이 늘어나면서 좀 멋부린 사진들도 있긴 한데 그래봤자 위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사실 이런 옷은 델리킷하고 각잡힌 스타일링보다는 어디 산에서 막 내려온 거 같은 막 입는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게 더 좋지 않나 싶다. 그런 재미로 입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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