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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끝이 난 반동의 구간

by macrostar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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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 미우가 2022년 최고의 브랜드가 된 건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이전에 Y2K 트렌드가 탐탁치 않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링크)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 코로나 판데믹, 스트리트 패션의 주류 진입 등이 만들어 낸 예외적인 구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예외적이라 말했던 구간은 사실은 그게 주류다.

 

 

왜 이런 일이 생겼냐 하면 과수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버질 아블로 등이 딱 그때 등장했다는 것도 있다. 스트리트 패션의 한정판 스니커즈와 바람막이, 티셔츠의 가격이 뛰어 오르고 주요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런 수요에 맞춰 밀레니얼과 Z세대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을 때 그 원인을 가상 화폐의 가격 폭등에서 찾기도 했다. 젊은 세대들이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고 어마어마한 이익을 만들면서 거기서 나온 돈이 스트리트 패션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다.

 

분명 이런 가상 화폐의 가격 상승이 스트리트 패션 부흥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큰 영향을 미친 건 틀림없다. 다들 큰 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된 게 아니라 해도 어차피 럭셔리 패션은 소수의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분야다. 그리고 고급 패션 이하 패스트 패션까지 이런 분위기에 맞춰갔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판데믹은 포멀 웨어 브랜드를 붕괴시키면서 드레스 업의 방식을 바꿔놨다. 패션 산업은 이런 자금을 노리고 패션도 아주 빠르게 방향 전환을 했고 여기에 비슷한 세대가 공유하는 다양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따라오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이제 가상 화폐 가격이 떨어지고 회복의 가능성도 높지 않아보이고, 금리는 꽤나 올랐고, 코로나 판데믹 기간 동안 치솟았던 몇몇 IT 기업의 주식도 안정화 추세다. 또한 오프라인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밀레니얼과 Z세대 중 고가의 패션 제품을 구입할 사람들은 아마도 더 작은 규모로 줄어들었다. 리세일 마켓의 스니커즈 가격은 과수요가 사라지며 안정을 찾고 있다. 하이프 패션은 대충 이렇게 끝이 났다. 그 정도 수요는 고급 아웃도어 룩을 내놓는 아크로님이나 알릭스, 아크테릭스, 일본이나 한국의 하이테크 패션 브랜드 등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서 패션 브랜드들은 다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누가 패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장 많은 비용을 쓸 수 있고 그들이 찾는 건 무엇인지를 검토하며 럭셔리 팬의 구매자를 찾아가기 시작한 거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가 좀 더 섬세한 패션 중심의 인물을 찾는 식으로 이뤄지고,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를 나가는 등의 일은 그런 시각에서 주목할 만 하다.

 

루이 비통 남성복 디렉터의 선임이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반동의 구간이 지나가고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고급 패션의 배타성을 쥐고 시대를 이끌 만한 적임자를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보테가와 비슷하게 아마도 훨씬 패션 친화적인 델리킷한 디자이너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발렌시아가는 모르겠다(링크). 하이프의 시대에 생 로랑이 했던 거 같은 포지션을 가져갈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흘러간다고 샤넬이 재미있어 진 건 아니다. 그쪽의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이렇게 반동으로부터 복귀를 한다고 해도 분명 2015년 이전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은 그동안의 경험에 의해 다른 패션 미감을 가지고 있고 또 다양성에 대한 여러 요구들로 인해 사회적으로도 다른 판 위에 놓여있다. 거대 트렌드가 어떻게 흐르던 조금 더 작은 집단으로 파편화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디올이나 제냐 같은 브랜드가 패션 미감을 끌고 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뭔가 흥미진진한 걸 선보이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2022년 말 미우 미우가 최고의 브랜드에 오르고 YSL이 1992년에 출간되었던 마돈나의 섹스 북을 재발행하는 등 90년 말 패션에서 흥했던 성적 어필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높아지고 있다. 요란한 하이프의 시절을 탐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은 다시 주류의 자리에 돌아가기 위해 많은 걸 보여줄 거 같다. 어쨌든 새로운 챕터의 시작은 아마도 미우미우 였던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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