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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뭘 자꾸 알려고 하나

by macrostar 2021.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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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은 걸 보고 뭔가 알 수 있다는 건 일종의 신화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일상복 탐구(링크) 등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런 걸로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 사람의 뒤에 대체 어떤 사정이 있는 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옷을 입는 사람보다 그걸 보고 무언가를 판단하고 말하려는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게 훨씬 많을 거다.

 

 

대체적으로 취향의 발현, 무언가 마음에 드는 걸 보고 고른다는 것, 마음에 드는 걸 가지고 온 몸에 스타일을 만든다는 건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작동이 가능하다. 그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오랜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애초에 옷에 취향과 성격을 보편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엔 거의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여건이 바뀌면서 새로운 성격이 드러나거나 형성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다.

 

혹시 의도된 시그널이 있다고 해도 같은 문화권, 같은 경험권에서나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조금만 달라도 전혀 다르게 읽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파란 색 운동용 아우터가 많은 데 그 이유는 딱히 파란 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색이 인기가 없어서 할인가로 잘 풀리기 때문이다. 빨간 색은 아예 잘 들여놓지도 않기 때문에 할인가로도 잘 안 나온다. 이런 인과 관계 속 지뢰들이 수두룩한데 그걸 다 넘어서 뭔가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혹시 그렇게 만들어 진 옷의 취향이 있다 해도 인격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도 의심할 만하다.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하고 차려 입는 연쇄 살인마나 사이코 패스도 있는 법이고, 일관성이라고는 전혀 없게 후줄근하게 다니는 성실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요새는 직업도 짐작할 수가 없다.

 

착장 뿐만 아니라 관리 상태 같은 걸로 알려주는 것도 별로 없다. 세탁을 잘 하고 다니는 거 같으면 깔끔한 사람일까? 무슨 과정이 그 뒤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서포터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부의 레벨 같은 건 알려주는 부분이 있을 거다.

 

옷을 통해 취향의 일치 같은 것도 알아볼 수 있다. 비슷한 부분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다면 즐거운 일이 많을 수도 있다. 아무튼 한 눈에 뭔가 판단하려는,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런 신화를 자꾸만 만들어 낸다. 술 먹어야 본심이 나온다는 말과(술 취한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옷에 얼마 쯤 썼는지는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같은 건 거의 동급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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