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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패션은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by macrostar 2020.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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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문제는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보자면 유럽 쪽은 이태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문제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 모여서 하는 거의 모든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가능한 밥도 혼자 먹으라고 권장하는 상황에 당연한 일이다. 2020 FW 서울 패션위크나 패션코드 같은 행사들도 결국 취소되었다.

 

2월에 진행 중이던 유럽의 패션 위크는 완전히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위기 상황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여러 모습들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아르마니는 비공개 패션쇼를 진행하며 인터넷을 이용해 중계만 했고, 드리스 반 노텐의 패션쇼장에서는 안내 요원들이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물론 2020년 가을, 겨울 시즌을 위한 새로운 컬렉션은 나오겠지만 세계인의 시선을 끄는 중요한 홍보의 기회를 놓치고 한 시즌의 일관된 콘셉트를 선보이지 못하게 되는 건 아쉬운 일이다.

 

세상 뉴스가 다 코로나 19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유죄 판결이다.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으로 시작된 미투 무브먼트는 이후 다른 많은 분야를 변화시켰지만 특히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모델에 대한 보호 장치들이 규제나 합의로 마련되거나 한 일들이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면은 패션이 기존의 성역할을 재생산하고 있고 그게 현재의 권력 불균형을 강화하고 있었다는 인식이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주는 모습이 현실의 문제점을 고착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패션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두고 패션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사고가 최근 몇 년 간의 컬렉션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시선을 가지고 최근에 열린 디올의 두 개의 쇼, 2020 SS 오트쿠튀르와 2020 FW 컬렉션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볼 만 하다.

 

특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2016년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이후 디올을 맡은 최초의 여성 디렉터 답게 페미니즘 적인 면모를 전면에 내세우며 디올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1월에 열린 오트쿠튀르의 경우 미국의 페미니스트 예술가 주디 포스터의 질문인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면”을 영감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아테네와 같은 여신에 대한 고전적인 표현을 통해 패션과 신체의 기본적인 연결고리를 인식하고 이를 재해석하고 있다.

 

Dior 2020 FW

 

2월에 열린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은 자신이 페미니즘 적 시각에 눈을 떴다는 70년대를 되돌아 본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쿠튀르 아틀리에를 찾아왔던 고객들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자신 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이 풍경에 대한 기억과 함께 당시 디올 컬레션의 흔적들도 섞인다. 캣워크 무대에는 ‘합의(Consent)’라든가 ‘여성의 사랑은 무급 노동' 같은 문구가 적혀 있고 바닥에는 최근의 신문이 깔려 있다.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의 경우 마침 하비 웨인스타인의 판결이 나온 바로 다음 날에 열렸다. 물론 이걸 의도할 수는 없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런 사건과의 연결성 아래에서 패션쇼를 바라보게 된다. 이는 하이 패션 컬렉션이 뉴스가 되는 건 곤란하겠지만 그럼에도 바로 지금의 시대와 떨어져 있으면 결코 안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짐짓 모른 채 하고 패션의 아름다움이나 세련됨 혹은 인류애 같은 보편적 이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이 패션은 곤란한 입장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오랫동안 그런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진일보한 태도다. 다양성을 팔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도 나쁠 건 없다. 상업화 되었을 때 더 오랜 생명을 지닐 수 있다. 진정성 같은 것도 중요한 문제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도태된다고 해서 누가 위로해 주진 않는다.

 

하이 패션의 페미니즘 적 태도에 대해 예컨대 디올을 구입할 만한 사회의 주력층은 그 부와 권력이 지금의 사회 형태에서 나왔고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굳이 불만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사람들의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디자이너 도나 카란은 하비 웨인스타인을 옹호하면서 문제는 그를 마주한 피해 여성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었다. 이런 일반적인 인식이 미투 무브먼트 이후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한 거였다.

 

하지만 2020 FW에서 셀린느가 보여주고 있는 70년대 파리 부르주아 패션이나 생 로랑의 페티시즘, 오트 부르주아 등등 레트로 분위기의 패션은 익숙한 모습이 만들어 내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즉 ‘고급스러움'을 자기 브랜드의 예전 옷, 과거의 패션에서 주로 찾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전향적인 사고를 하겠다면서 좋았던 과거의 기반을 끌어들인다. 미래를 향하는 건 반발이 있을 수도 있고 패션 브랜드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페미니즘, 다양성 같은 문제를 전면에 세우려 한다면 넘어서야 할 지점이다. 이런 걸 보면서 포니(Phony, 겉치례의) 페미니즘이라고 누군가 빈정거려도 할 말은 없을 거 같다.

 

Saint Laurent 2020 FW

 

물론 세상 사람들이 다들 기존의 옷을 파괴하며 입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런 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게 옳은 선택이다. 그렇지만 하이 패션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앞서 나가야 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까지는 대체 뭘 하고 사는 사람인가 짐작도 가지 않았던 모델의 모습이 이제는 커리어 우먼처럼 보이게 되었다고 해서 지금의 세상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오버사이즈 페이크 퍼 코트나 카무플라주 다운 패딩이 중간중간 섞여 들어있다고 해서 새로운 질서가 되는 건 아니다.

 

사실 이런 면은 이전의 패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이 패션의 ‘고급'스러움이 뭔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못할 때 생길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럴 수록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이 모든 것을 쓸어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새로운 디자이너, 새로운 브랜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실제의 삶과 동떨어져 멋지고 예쁘게 빛나는 패션의 시대는 끝이 나고 있다. 패션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고 또한 라이프스타일의 과정과 결과가 패션으로 드러난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보여주는 것도 하이 패션의 큰 역할이 된다. 영감이 사람들의 생각을 한정시키는 건 곤란한 일이다. 과연 이번 변화의 시기에도 패션은 뭔가가 변하고 나서야 거기에 손을 얹는데서 멈추게 될까 아니면 더 올바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분명한 영감과 동력을 주는 힘을 제시할 수 있게 될까.

 

 

* 이건 2월에 쓴 이야기인데 지금 시점에서는 과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패션의 무엇을 바꿀 것인지, 생 로랑이 빠져나가면서(일시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제 가속이 붙을 지도 모르는 패션위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건지, 아니 오히려 포스트 코비드 시대에 패션위크라는 게 예전만큼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 등등으로 주목할 만한 지점이 넘어가 버렸다. 어쨌든 2020 FW에서 보여지던 둠칫거리던 태도들이 자연스럽게 치워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그대로 코로나 이후 패션에 다시 나타날 거니 어떻게 될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다. 이슈는 생각보다 크게 변할 거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이야기를 할 거 같기도 하다. 일반적 관념과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가 될 지가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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