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미국의 서남쪽에는 치카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단어의 유래는 꽤 오랜 역사가 있지만 간단히 말해 멕시코 계열의 미국인을 뜻하는 말이다. 20세기 초에는 멕시코 계 노동자를 가리키는 경멸적인 언어로 사용되었지만 1960-70년대에 미국에서 차별받던 멕시코인들이 치카노 무브먼트라고 하는 일련의 문화, 정치적인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건 정체성의 문제를 제외하면 멕시코 인들이 미국 전역에 폭넓게 분포해 살고 있고 각 지역마다 상황이 달라서 일관되게 어떤 모습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국의 입장에서 치카노라는 단어가 나오면 보통 콧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끼는 갱단 멤버나 캘리포니아 남부의 자동차 산업 지역에 주로 활동하는 로라이더라고 하는 자동차 마니아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이야기할 사람들은 바로 로라이더들이다.
로라이더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핫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야한다. 세계 대전 중 전쟁에 사용되는 자동차 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이에 따라 민간에도 취미로 자동차를 즐기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핫로드는 1930년대에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1920-30년대에 나왔던 포드 자동차를 고성능으로 개조해 LA 근처의 마른 호수 바닥을 달렸다.
그리고 로라이더들이 있다. 자동차를 화려하게 칠하고 차량 높이를 낮게 만드는 게 특징인데 유압 장치를 설치해 주행에도 큰 문제가 없게 해놨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자동차 산업 지역에 자리를 잡은 치카노들은 불법 취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자동차를 타고 싶어도 새 차를 구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주로 1930-40년대에 나온 시보레 중고차를 구입해 커스터마이징을 했다. 이를 백인 중심의 핫로드에 대항하는 의미로 치카노의 로라이더라고 한다. 사실 로라이더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LA 콤프턴의 흑인들이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거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었고 로라이더든 치카노의 문화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모두 앵글로 중심 문화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로라이더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이후 시대별로 적당한 자동차 모델들은 계속 바뀐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로라이더 문화는 서부 힙합과 지 펑크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닥터 드레(Dr. Dre)나 스눕 독(Snoop Dogg), 워렌 지(Warren G) 등의 뮤직 비디오에 유압기 달린 대형 자동차 같은 로라이더 문화 요소들이 들어가는 데 물론 패션도 그렇다.
1990년대 젊은 치카노를 촐로(Cholos,여성은 촐라)라고 불렀는데 주변 문화의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들은 특유의 말투와 행동 그리고 착장 방식이 있었다. 우선 카키 컬러의 배기 팬츠를 입었는데 디키즈 874 같은 작업복 바지를 크게 입는 경우도 많았다. 카키 바지는 2차 대전 이후부터 치카노 커뮤니티에서 많이 입었는데 가족 중에 참전 군인이 있다는 표시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화이트 티셔츠를 입었는데 쫙 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려 입기도 했다. 그리고 펜들턴의 울 플래드 셔츠를 입었다.
펜들턴 셔츠를 입는 방식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선 꼭 펜들턴 브랜드에서 나온 게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오히려 아예 무명의 가짜 브랜드나 이 계열에 특화되어 나온 저렴한 브랜드 제품을 많이 입었다. 그러든 말든 이런 셔츠를 펜들턴스라고 불렀다. 또한 플래드 무늬가 있지만 그 무늬의 경계가 흐릿한 걸 더 선호했다. 단추는 목까지 다 채우든지 아니면 아예 최상단의 단추만 채웠다. 후자의 경우 잘 다려진 새하얀 티셔츠가 드러난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치카노 로라이더의 정체성, 옷 입는 방식, 말투와 제스처 등을 따라하기는 했지만 로라이더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또한 치카노 갱 단원이나 마약 중독자들도 거의 비슷하게 입고 다녔지만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감옥에서 막 나온 범죄자의 옷차림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부모들은 싫어했다고 한다. 노스페이스라고 딱히 부모들이 좋아했을 리는 별로 없다.
이 패션은 힙합, 펑크, 고딕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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