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20. 2. 5. 23:37

칸이 좁아서 원하는 제목을 다 넣지 못했다. '좋아하는 옷 이야기, 노스페이스의 엑셀로프트 이너 라이너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래에 나오는 옷은 원래 트리클라이메이트(이너 분리형 자켓)의 이너 잠바다. 겉감과 어디에선가 헤어진 채 세상을 떠돌다가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노스페이스에서 이너로 쓰는 잠바는 상당히 다양한데 다운, 프리마로프트, 두꺼운 플리스, 얇은 플리스 등등이 있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이 옷을 본 후 이걸 구해야겠다 싶어서 상태가 좀 좋은 거를 한참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선호하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 딱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점은 발란스다. 팔 길이, 몸통 길이, 폭, 목 등등이 딱 좋다. 그리고 그냥 봐도 신경 쓸 부분이 하나도 없다. 별 다른 기능도 없는 나일론 겉감에 약간 더 부드러운 느낌의 나일론 안감이 붙어 있고 그 사이에 엑셀로프트(표기는 폴리에스테르)가 들어 있다. 저 네모 네모 무늬도 딱히 거슬리지 않고, 너무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둔탁하게 생긴 것도 아니다. 손목에는 고무줄에 벨크로, 양쪽 주머니에는 지퍼가 붙어 있다. 게다가 싸다. 더 가볍고 더 따뜻한 옷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 세상에 이런 옷은 누구하나 찾는 이가 없는 법이다.

 

막상 받고 나니까 더 마음에 들었다. 색감이나 핏은 딱 예상한 대로 였지만 충전재가 은근 딱딱한 편이라(다운 류에 비하자면) 뭔가 안정감이 있다. 그리고 무게감도 있다. 마치 MA-1 같은 군용 잠바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런 든든한 느낌을 주는 나일론 잠바를 꽤 좋아한다. 아무튼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 옷이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팔이 살짝 짧다. 1cm만 더 길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는 라이너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긴 하다. 애초에 단독 사용은 어쩔 수 없을 때... 라는 한계를 두고 만든 옷이다. 허리의 드로코드가 늘어나 있는 것도 단점이다. 다른 옷에서도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냥 제대로 된 모습으로 붙어 있다면 더 좋았을 거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이 옷은 쓸 데가 없다는 거다. 추울 때 입으면 춥고, 날이 풀리고 나면 덥다. 엑셀로프트라는 보온재는 가장 큰 용도가 무게감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여차하면 벗어서 휴대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있고 무겁다. 아무리 꾸깃꾸깃 넣어도 한계가 있다. 내피로 쓰자니 위에서 말한대로 더 얇고 가벼운데 따뜻한 옷들이 많다. 예전에 말했던 이런 옷(링크)이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

 

그러므로 이 옷은 나중에 이렇게 생겨서 조금 더 쓸모가 있는 옷이 나오면 좋겠다 하는 부적, 이렇게 생긴 옷이 참 좋지 하는 감상의 대상 정도로 쓰인다. 물론 아예 못 입는 건 아니다. 겨울철 방에서 컴퓨터를 쓸 데 딱 좋다. 12월에서 2월 정도로 무척 한정적이지만 보일러를 틀어야만 하는 상황을 조금 더 미룰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에너제틱하다. 결론은 좋아한다는 이야기.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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