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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청바지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

by macrostar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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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청바지의 경년변화, 탈색에 대한 이야기.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얼마 전에 썼던 이것(링크)과도 연관이 있고 또한 굳이 청바지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컨대 더 나은 스탠스, 핏의 기준이 불필요하다는 건 새로운 출발점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게 더 어울리네, 저게 더 어울리네 같은 건 딱히 필요가 없다.

 

몸에만 얼추 맞고 낡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옷이라면(데님이라면 면 100%를 제외하기가 좀 어려운데 약간 망나니 같아서 생활 한복이 떠오르는 싸구려 풍 혼방 데님에 최근 좀 관심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걸 다 소진하는 게 먼저다)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고, 저건 저것대로 재미있다.

 

 

옷을 가지고 다리가 길어보이려 한다거나, 더 마르거나 살쪄 보인다거나, 단점이라 여겨지는 부분을 감춘다거나 뭐 이래 저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는 상황에서 옷을 고른다는 건 이런 건 안 입어봤으니까 재미있겠네 정도가 가장 큰 변수가 된다. 넓어서 펄럭거리면 그래서 재미있고, 좁아서 무릎 부터 후줄근해지기 시작하면 그것 역시 재미있다. 물론 신체의 문제점이 작용을 한다. 나의 경우 다리가 휘어서 바지의 바깥 면이 확실히 먼저 닳아가는 면이 있다. 뭐 그런 거다. 개선할 방법도 없고 개선이 가능한 옷을 장만할 생각도 없다. 그렇게 생겼는데 그렇게 사는 거지.

 

또한 모든 옷을 이렇게 하기엔 위 링크의 글처럼 상황의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청바지 같은 옷이 좀 유리한 구석이 있다. 워크, 헌팅, 럼버잭 등등 계열의 옷이란 애초에 포멀이나 점잖음 따위를 기대하지 않으므로 접근이 더 쉽다. 조금 더 나아가면 수트나 드레스 셔츠의 노화 과정도 잠자코 바라볼 수 있게 되겠지.

 

다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소위 '잘 만들어진' 것들이 낡아가는 것도 더 흥미진진할 거다라는 가정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것도 그냥 그렇다. 유니클로는 유니클로대로, 리얼 맥코이는 리얼 맥코이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을 먹는다. 딱히 뭐가 더 나을 게 있고 더 재미있을 게 있을까. 그냥 모두들 자기 만의 방식을 안고 있을 뿐이고 그걸 천천히 바라보는 즐거움은 여전히 도처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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