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19.11.10 00:01

셔츠 등에 보면 고리가 하나 있다. 그걸 로커 루프(Locker Loop)라고 한다. 말 그대로 로커에 있는 고리에 거는 루프다.

 

 

이것이 로커 루프. 위 쪽에 보이는 단추를 세 번째 칼라 버튼이라고도 하고 아래 두 개의 주름이 있다. 사진은 너무 열심히 다림질을 했군.

 

  

그래서 이렇게 건다, 라고 되어 있다. 육중하게 생긴 고리가 꽤 길다. 그렇다면 저 사진은 아마도 로커 루프를 지나 셔츠 칼라 안 까지 집어 넣은 게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옷감이 상하지 않게 따로 고리를 둔다, 라는 원래의 정신에 위배된다. 사실 낮에 이 사진을 보고 진짜 이렇게 되나 궁금해서 집에서 해봤다.

 

 

 

물론 이 모양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듯 한데 분위기가 어딘가 음침하다.

 

 

이걸 해보다가 깨달은 게 있는데 몇 번 이야기를 했듯이 그래도 나름 셔츠를 좋아해서 2자리 수 정도의 셔츠가 있다. 그런데 그 중 로커 루프가 붙어 있는 셔츠는 딱 저거 하나다. 왜 그럴까. 사실 로커 루프는 아이비 패션, 미국 대학가 패션의 산물이다. 원래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미 해군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자리를 잡은 건 미국 동부의 대학가였다. 그리고 그들은 옥스퍼드 셔츠를 입었다. 즉 옥스퍼드, 버튼 다운, 로커 루프, 플리츠는 한 세트다. 칼라 뒤의 단추는 없어도 괜찮다. 그리고 이 특징은 일본에서 아이비 패션이 정립될 때 셔츠의 기본 규칙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겐 옥스퍼드 셔츠가 하나도 없던 거다. 플란넬, 워크, 샴브레이, 모두 이런 숲과 공장의 산물들이다. 물론 이런 데서도 로커 루프가 달려 있다면 벽에 못이라도 하나 박아 놓고 쓰면 되겠지만 굳이 그렇게 까지... 뭐 이런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위 사진의 플란넬 셔츠도 약간 엉터리다. 사실 저 플란넬 셔츠에는 예전 셔츠 몇 가지의 특징이 공존해 있다. 웃기려고 그런 걸 수도 있고, 모르고 그런 걸 수도 있고, 예전에 저런 레퍼런스가 있던 걸 수도 있다. 그런 걸 가늠해 보려면 저 셔츠가 뭐하는 회사인지, 뭘 내놓고 있는 회사인지 알아야 한다.

 

참고로 유니클로의 셔츠 란을 뒤적거려 보면 드레스부터 플란넬, 옥스퍼드, 브로드, 워크 등 다양한 셔츠를 볼 수 있는 데 로커 루프를 볼 수 있는 제품은 오직 한 가지 옥스퍼드 레귤러 셔츠다.

 

 

심지어 슬림 피트 옥스퍼드에도 없다. 오직 정통파 옥스퍼드 셔츠 계열에만 저게 붙어 있다. 유니클로에는 이런 식으로 아이비 기본 경전의 아우라가 드리워져 있다. 어느 날 유니클로에서 면 100% 셔츠가 사라지거나, 옥스퍼드 셔츠에서 저 고리가 사라지거나, 치노 팬츠가 혼방으로 나오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면 무슨 변화가 생긴 거다. 레귤러 청바지는 이미 혼방으로 전환해 있다.

 

 

참고로 약간 더 재미있는 점은 스파오에도 다양한 셔츠들이 있는데 찾아 보니까 로커 루프가 붙어 있는 스트레치 옥스퍼드라는 셔츠와 플란넬 셔츠다. 스트레치 옥스퍼드는 이름처럼 폴리우레탄이 3%들어 있는 혼방 제품이다. 플란넬 계열은 면 100%다. 이것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스트레치 옥스퍼드는 드라이클리닝을 권하고 플란넬은 물 세탁을 권하고 있다. 보다 더 정통파 옥스퍼드 셔츠라고 할 수 있는 레귤러 타입의 100% 면 솔리드 옥스퍼드와 스트라이프 옥스퍼드는 버튼 다운, 플리츠 다 들어 있지만 로커 루프는 없다. 

 

 

역시 이쪽도 플란넬 중에 루즈핏 플란넬 같은 거엔 없다. 오직 레귤러 플란넬만 해당하는데 솔리드, 스트라이프, 체크에 모두 붙어 있다. 대체 왜 플란넬일까. 왜 옥스퍼드는 표준형에서는 빠지고 현대식 계량형에는 넣었을까. 기준점이 무엇일까. 아직 그 의문은 풀지 못했다. 역시 규칙 신봉자들은 단순해서 의도를 파악하기가 쉬운데 이렇게 나오면 의도를 가늠해 보기가 무척 어려워지고 생각할 수록 혼돈에 빠진다. 사실 지금 시대라면 이렇게 뭐가 뭔지 모르게 슉 내미는 게 재미있는 점이고 약간 케이팝이 가고 있는 길 같은 느낌도 나는데 물론 그렇다고 옥스퍼드 셔츠의 로커 루프 같은 데서 재미를 찾고 있진 않겠지.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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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님 안녕하세요~
    유익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ㅎㅎ

    2019.11.10 17:11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