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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알파 인더스트리의 M-65 이야기

by macrostar 2019.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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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맘 때가 되면 M-65 이야기를 하게 된다. 검색할 때 보면 일본은 M-65라고 적힌 게 많고 미국은 M65라고 적힌 게 많다. 아무튼 분명 입을 때가 되었는데 vs 아직 더운가라는 생각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뭐 덥든 말든 며칠 딱 되면 입기 시작해서 며칠 딱 되면 그만, 이러면 편하긴 할텐데 그러기에는 일교차가 너무 크다. 이러다가 어어 하면 시즌이 지나가 버린다. 한겨울에 입기엔 또 춥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라면 몰라도 굳이 그런 고행을 할 필요는 없다.

 

 

 

약간 어처구니없게도(이 말이 가장 적당하다) 알파 인더스트리의 M65가 세 벌이나 있다. 아마도 90년대 쯤 재고, 레귤러 판 S-R, 밀스펙에 준함, 미국산. 색만 다르고 거의 같다. 라이너는 하나있다. 아주 자세히 살펴보면 라벨의 위치라든가 약간씩 다르긴 하다. 그렇지만 결국 똑같은 게 세 개다. 기본적으로 M65는 낡은 실제 군용이나 슬림핏, 현대적 모디파이드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이왕 M65라면 오리지널이 느낌이 그래도 좀 살아있는 이 정도가 최선의 절충안이다.

 

슬림핏을 입거나 정장 위에 입거나 하는 식으로 멋을 부리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일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말하자면 굳이 M65로... 라는 생각이다. 또 사실 S는 나한테 상당히 크다. 게다가 암홀이 워낙 넓어서 팔이 세 개쯤 달려 있어도 거뜬히 들어갈 거 같다. 그렇지만 XS는 묘하게 비좁다. 그러니까 S로 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제대로 맞지도 않고 무겁고 뻣뻣하기 그지없는 옷인데, 세 벌이다. 

 

 

 

모두들 이런 라벨이 붙어 있다. 아래 까만 태그는 위치 같은 게 조금씩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가지고 있는 옷의 갯수 안에서의 사용 용도의 비중을 생각하면 분명 말이 안된다. 사실 입을 수 있는 날이 며칠인가 생각해 보면 하나도 많지 않나 싶은 옷이다. 그렇지만 이 분명한 헤비 듀티, 말도 안되는 무게의 옷감, 이상하리 만큼 있을 게 다 있는 기능적인 부자재들과 배치 등등은 매력이 있다. 확실히 좋은 옷이다. 평생 입을 수 있을 거다. 쓸데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이게 이 옷의 가장 이상한 부분인데 분명 당장은 쓸데가 별로 없지만 만약에 외투 하나만을 가지고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M65를 들고 나서는 게 맞을 거 같다는 점이다. 오리털은 따뜻하지만 세탁이 어렵고 물에 약하다. 고성능 기능성 웨어들은 기능을 잃으면 세상 흔한 폴리-나일론 혼방보다 쓸모가 없다. 울 외투도 훌륭하지만 역시 관리가 어렵다. 프리마로프트 젠 3 레벨 7이면 괜찮은 경쟁자가 될 텐데 구하려면 더 비싸다. 그러므로 M65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더러우나 어떻게든 갈 수 있다.

 

 

문제가 뭐냐면 요새 파란 색(위 사진의 명칭 NAVY)이 참 예뻐 보인다는 거다.

 

 

M65는 나일론 50 / 코튼 50으로 된 섬유의 문제 때문인지 어설프게 들어가 있는 발수 기능 때문인지 블랙도 그렇고 올리브도 그렇고 이렇게 먹 느낌이랄까 이런 게 있다. 그런 느낌으로는 블루가 가장 근사하다. 옷 색에 맞춰 놓은 둔탁한 플라스틱 느낌의 단추도 좋다. 사실 알파가 색은 좀 별로여서 특히 올리브 컬러는 콕핏이나 리얼 맥코이에서 나온 게 더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블루는 알파다. 얘네가 제일 낫다.

 

작년에 상태가 꽤 좋은 같은 사양의 블루 M65가 나온 걸 본 적이 있는데 더 이상은 관두자, 일단 옷이 너무 무거워 4벌이나 걸어 놓으면 옷걸이가 무너질 지도 모른다 등등의 생각에 관둔 적이 있다.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이러다가 싼 데드스톡 S-R을 어디선가 만나면 안고 자자 하면서 구입할 지도 모르지. 조심해야 한다. M65 네 벌을 가지고 있으면 부대를 운용해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투덜거리며 떠든다고 해도 이건 옷 잘못이 아니다. 불필요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게 문제일 뿐이다. 결론은 상당히 좋은 옷이다. 외계인이 침공한다든가 지구 온난화로 피난을 가게 된다든가 등등 혹시 모르니 어디서 보게 된다면 하나 정도는 부디 장만해 두시길... 나는 그럴 때가 오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무슨 색을 입고 나갈까 고민하게 되겠지... 그러니까 하나 정도만 가지고 있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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