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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옷 놓고 떠들기 : 시에라 디자인스의 마운틴 파카

by macrostar 2019.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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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옷 놓고 떠들기. 요즘 들어 옷 놓고 떠들기는 더 중요해진 경향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멋지고 예쁜"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걸 보고 혹은 입고 그게 멋지고 예쁘다고 느낀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기다. 무엇을 기준으로 놓고 있는가, 그건 합당하고 괜찮은가 등등. 그리고 옷과 패션의 즐거움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트렌디와 힙함 외에도 옷의 관리, 효율적 착장, 옷 자체의 디테일 등등도 패션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옷 놓고 떠들기도 그런 일환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시에라 디자인스의 마운틴 파카 이야기. 이 옷 이야기는 상당히 자주 하긴 했는데 여러가지 상념과 애증이 겹쳐있는 옷이다. 일단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말해보자면 마운틴 파카, 마운틴 재킷이라고 부르는 옷의 프로토타입이다. 즉 방수, 방풍 겉감에 안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옷. 급격한 기상 변화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옷.

 

마운틴 파카는 훌로바에서 65년에 처음 나왔고 60/40은 시에라에서 68년에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비스무리한 게 잔뜩 나오던 시절이라 자세한 사항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M-65 필드 재킷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설은 약간 의심의 여지가 있고 아무튼 필드 재킷이나 마운틴 파카나 모두 다 훨씬 더 예전 필슨, 엘엘빈 등 미국식 헌터 재킷이나 초어 재킷의 발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옷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격이다. 현재 미국, 한국 등 모두 철수했고 정식으로 파는 곳은 일본 정도 밖에 없는 거 같은데 그 덕분에 가격이 괴상하게 비싸다. 즉 미국제 60/40은 세전 4만엔으로 노스페이스 같은 데서 나오는 고어텍스 마운틴 자켓과 가격 차이가 별로 없다. 심지어 시에라 디자인스의 60/40 다운 파카도 4만엔이 안되는 게 있다. "헤리티지"와 수요 덕분에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옷의 부분 부분 이야기. 전체적으로 살짝 반짝거리는 빳빳한 재질로 옷 이라기 보다 옛날 텐트 뭐 이런 분위기에 가깝다. 그렇게 두껍지는 않아서 변화가 거의 없는 옛날 옷치고 불편하지는 않다.

 

후드가 붙어 있는 부분과 라글란 어깨. 이 곡선이 매우 올드 스타일이다. 특히 후드 접합부는 지나치게 내려와 있지 않나 싶은데 막상 입고 있으면 그렇게 까지 나쁘지는 않다.

 

지퍼는 플라스틱에 금속 손잡이. 버튼이랑 다 자석 대봤는데 모두 쇠는 아니다. 위에서 보다시피 맨 아래가 상당히 비어있다. 단추로 두 칸 정도가 비어 있는데 M-65가 이 비슷하게 아래가 비어 있다. 보통 이런 옷은 지퍼 손잡이가 위 아래 두 개 달려있는데 그냥 아래를 비워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뭔가 허전한데 방수 측면에서 보자면 아래야 어떻든 별로 상관없고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 걸리적 거리지 않는다. 

 

 

겉감은 전체 60/40, 안감은 상단부는 60/40 하단부는 나일론이다. 약간 라이트 버전으로 안감이 통으로 나일론으로 된 것도 판매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니까 상단부만 방수가 되면 된다 + 나일론의 좀 더 부드러운 촉감의 결합으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등에 지퍼 주머니가 하나 있는데 그 안에 보면 접합부를 볼 수 있다. 의외의 빨간 실. 

 

 

요즘에 나오는 건 세탁 금지, 드라이크리닝 온리 라벨이 붙어 있는데 조금 예전 버전에는 물세탁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염색이 잘 빠지기 때문에 세탁 금지 라벨을 붙이기 시작한 거 같다. 그냥 발수 아웃도어 세제로 세탁기에 돌리고 있다. 이런 옷을 드라이크리닝하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얼룩덜룩 색이 빠지면 그냥 그대로 재밌는 게 아닐까.

 

70, 80년대 버전은 라벨의 소나무 갯수로 연도를 구별했는데 90년대 버전부터 약간 멋대로가 되었다. 90년대 버전은 위 사진처럼 3개. 나무 환경 파괴에 대한 항의의 의미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출처는 찾을 수 없고 누가 지어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뭐 중요한 일이니까 이런 건 지어내도 괜찮다.

 

상당히 고전적인 분위기가 나는 손목에 주름 세 개. 볼 때마다 마운틴 파카에 이게 뭐야 싶은 게 약간 웃긴다. 이 비슷하게 치노의 주름 붙여 놓은 것도 좀 웃기는데 편안하냐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물론 그렇다.

 

 

내부 플랩이 맨 위만 살짝 있다. 이 역시 경량화의 일환인 거 같은 데 지퍼를 끝까지 올릴 때 상당히 걸리적 거린다. 이 옷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아래 커다란 두 개의 주머니는 좀 좋아한다. 플랩이 붙은 주머니와 사이드 주머니 이중 구조인데 사이드 주머니 아래 쪽을 살짝 막아 놨다. 사진이 좀 애매한데...

 

정리된 사진으로 보자면 이런 모습. 이런 류의 옷은 주머니에 휴대폰이나 뭘 넣어 놨을 때 주머니 크기가 워낙 커서 빠질까 싶은 걱정이 드는데 아래에서 걸리게 해놨다. 이런 장치들이 상당한 안정감을 준다.

 

이렇게 구석구석 나름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옷이다. 촘촘하고 디테일한 설계 이런 건 아니고 뭔가 호쾌함이 느껴진다. 애초에 60/40이라는 패브릭 자체가 그런 면이 있다. 천막 만드는 데님이라는 천이 튼튼해 보이는데 그걸로 바지를 만들어 볼까? 했던 것과 비슷한 발상이다.

 

그리고 4만엔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 새걸 좀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면 단연 추천한다. 겉감의 이 묘한 촉감, 딱 적당한 반짝거림은 확실히 매혹적인 데가 있다. 하라는 데로 세탁을 하면서도 항상 이게 맞나 싶은 하이벤트, 고어텍스 같은 테크니컬한 소재들에 비해 정말 신경 쓸 일이 없는 옷이다. 물론 수선 실패(링크)의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극복해서 이젠 아무렇지 않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65/35로 된 염가 버전도 있는데(세전 23000엔) 가격 차이가 꽤 나지만 헤비 듀티(링크)를 읽어보면 나오듯 아무튼 염가 버전이다. 아무리 싸도 굳이 그걸 살 필요는 없다. 벨크로 대신 버튼으로 되어 있는 버전도 있는데 요즘은 없네. 쇼트 버전도 인기가 많은 거 같은데 주머니 위치가 약간 다르다(링크). 가격은 같음.

 

그리고 후드가 달린 마운틴 파카류를 패킹해서 백팩에 넣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올린 적이 있다. 패커블 주머니는 맨날 잊어버리니까... 이것도 참고...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어쨌든 모두들 즐거운 옷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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