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19.03.13 14:35

얼마 전에 수선의 효용(링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늘은 거기에 하나가 추가된 이야기. 우선 밝혀둘 것은


1) 일단 벌어진 일이니 결과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걸 입어야 한다.

2) 수선점 전문가의 말을 기본적으로 신뢰한다. 거기서 안된다고 하는 건 아마도 안될 거다. 옷 수선에 대해서는 당연히 나보다 훨씬 잘 알고 그런 걸 속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3) 그렇지만 다시 가지는 않을 거 같다.


옷을 수선하는 건 사실 다들 다른 여러가지 목표를 가진다. 왜냐하면 원래 모습 그대로 복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본사에 가도 마찬가지다. 단추 같은 건 원래와 똑같은 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레플리카 청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듯(제발 책을 읽어주세요! 링크)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부자재, 기계 등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그런 건 보통 불가능하고 가능하다면 역시 운이 좋은 거다. 



개인적으로 수선 자국은 상관없지만 뜬금없는 그래픽 패치는 싫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가 있을까. 예컨대 가능한 원래 모습의 복구 vs 기능의 복구 같은 게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수선 자국이 남는 건 상관 없지만 원형이 눈에 띄게 바뀌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선 자국을 싫어하고 원형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품을 조절하거나 바지 폭을 조절하는 등 대규모 수선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절대 하지 않겠지만 그런 건 취향의 문제다. 


아무튼 좋은 수선점이라면 둘 중 어느 쪽을 원하는 가를 파악하고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진단한 다음 가격을 책정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수요의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옷을 많이 고쳐야 이런 수선점도 있고 저런 수선점도 생길텐데 지금 한국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시에라 디자인스의 마운틴 파카 벨크로 교체 이야기다. 예전에 뜯어진 플리스 자켓 수선을 알아보다가 종로 5가 등산복 골목에 이코레즈라는 곳이 유명하다는 걸 알았고 거기서 수선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보통은 아는 데를 가게 된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었는데 :



일단 색이 다르다. 하지만 이건 위에서 말한 어쩔 수 없는 문제에 해당한다. 수선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딱히 큰 불만은 없다. 다만 네모가 반듯하지 않다는 것과 크기가 원래 보다 좌우로 5mm 이상 커졌다는 건 약간 불만이다. 이건 위에서 말한 원형은 무시하고 기능을 최대한 복원한다에 가깝다. 시에라 디자인스의 마운틴 파카를 입는다는 건 애초에 기능과는 상관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거지만 수선점 아저씨가 그걸 모르는 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점이 따로 있는데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에라 디자인스의 마운틴 파카 벨크로는 까끌(마이너스), 보풀(플러스) 두 개로 나눠서 보면 몸통 주머니는 마이너스가 옷에 붙어 있고 플랩은 플러스, 손목은 옷 쪽은 플러스, 플랩은 마이너스가 붙어 있다. 즉 반대다. 그런데 이걸 잘못 붙여놨다. 원래는 플러스가 옷 쪽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긴 한데 이 회사는 원래 이렇게 만들고 있으니 내가 뭐라할 건 아니다.


예컨대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고 붙이고 있으면 아무 상관도 없겠지만 예컨데 이건 내가 뭘 하고 있느냐라는 수선사의 감각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옷을 수선하고 망가진 벨크로 붙이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까지 신경 쓰기는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더 이상의 신뢰, 예컨대 믿을 만한 수선집이니 다시 맏겨도 되겠다, 는 사실 어렵다. 





손목 부분 벨크로. 



블랙 컬러 모델은 원래 까만 실이다. 왜 바느질 직선을 못 맞춘 거지 싶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솜씨가 좋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뿐이다.





이건 약간 더 큰 문제인데. 시에라 마운틴 파카는 아래 주머니가 사이드 주머니와 플랩 주머니 이중으로 되어 있다. 위 브라운 컬러 자켓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벨크로는 어떻게 붙어 있을까. 당연히 겉감 표면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이드 주머니를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이걸 통으로 꿰매 버렸다.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는 있는데 장갑을 낀다면 역시 어려울 거 같다.


어쩌다 이렇게 한 거지? 싶어서 물어봤더니 겉감에만 벨크로를 박으려면 옷을 뜯어야 한다고. 그렇다. 방법은 있긴 한데 일이 너무 커지니까 저렇게 한 거다. 하지만 제품을 맡기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준 건 찾을 때 편의도 있지만 혹시 저런 일이 있을 때 물어보라고 준 게 아닐까. 과연 저렇게 해야만 한다고 물어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하지 않았을 거다. 사실 전화가 왔다면 고민이 많았겠지만 혹시나 한다고 했다면 지금 시점에서 몸통과 팔목 벨크로 수선 결과를 보건대 더 대책 없어질 뻔 했는데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다. 


일본의 시에라 디자인스 전문 수선점을 가게 되는 날까지 기다리든지 본사에 물어봤을 거다. 아마 비용이 많이 들테고 다시 고민에 빠지겠지. 하지만 그건 나중의 고민이다. 그런 이유로 보관이야 얼마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런 결과로 약간 삐툴어진 마운틴 파카의 소유자가 되었다. 오늘은 좀 춥지만 초봄에 아주 적당한 옷이고 천막천 수준으로 매우 튼튼하기 때문에 아마도 오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이 생길 때 좋지 않은 점은 앞으로도 계속 괜찮은 수선점이 있는지, 완전한 원상 복귀가 가능한지 또 검색하고 실험해 봐야 한다는 것. 


이런 시행착오처럼 시간과 비용 투자 대비 만족도가 낮은 일도 없다... 시보리 교체라는 꽤 큰 공사를 하고 싶은 옷이 있는데 그것도 일단 보류. 아무튼 옷 수선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에게 참고 사항으로.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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