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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더 새롭다

by macrostar 2014.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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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선도하는 여성복과는 다르게 남성복은 얼추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아주 천천히 변화한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몇십 년 전 남성복 사진을 들춰보면 상당히 촌티나게 보이기 마련이다. 옷의 소재와 제작 방식은 그렇게 다를 게 없다고 해도 입는 방식과 핏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남성 패션계 쪽에서 최근 눈에 띄는 새로운 움직임 중 하나는 과거로의 회기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란 나일론 등 현대 과학의 산물인 기능성 섬유가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다. 즉 낚시를 하고, 등산을 가고, 배를 타고, 또 전쟁을 치루기 위해 면이나 울을 가져다 머리를 싸매가며 방풍과 방수 기능을 만들어내던 시절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오래된 캐주얼 메이커인 더 바버에서는 면 재킷 위에 왁스를 칠해서 방수 기능을 만들었다. 스테디 셀러인 뷰포트나 비데일 코트가 이런 식이다. 매년 왁스칠을 반복해줘야 하고 요즘 옷에 비하면 분명 무겁다. 하지만 손을 많이 써가며 관리할 수록 수명은 반 영구적이다. 게다가 왁스가 계속 덧칠되며 마치 오래된 자동차를 관리하며 사용하듯이 빈티지 특유의 빛을 내며 낡아간다. 매킨토시에서는 얇게 고무 코팅을 해 방수 기능을 내는 레인 코트가 나오고, 면을 촘촘하게 짜서 물이 들어가면 실이 부풀어 올라 방수가 되는 벤틸이라는 면을 사용한 등산복도 있다. 

알래스카에 금광 붐이 일었던 1890년대에, 황금을 찾으러 가는 이들이 채비를 준비하며 머무르던 곳이 시애틀이다. 거기서 알래스카의 혹한과 싸워야 하는 이들을 위한 방한 옷을 내놓던 미국의 필슨, 군용으로 제작된 오토바이가 처음 민간인들 사이에 등장하던 1920년대에 새로운 기계에 맞는 옷을 찾던 이들을 위해 모터사이클 재킷을 내놨던 영국의 벨스타프 등 오래된 아웃도어나 모터사이클 의류 제작사들은 여전히 그 당시 소재와 방식으로 제작된 옷을 내놓고 있다. 

현대의 옷은 날렵하고 기능적이지만 소모적이다. 이런 소모성이 영 마음에 차지 않은 일부 소비자들은 약간은 불편할 지 몰라도 오래도록 함께 지낼 옷으로 이런 오랜 역사의 제품을 내놓는 매장을 찾고 있다. 면이나 울은 고어텍스 같은 소재에 비해 수선도 훨씬 쉽다. 물론 이런 옷들은 위에서 말했듯 핏 자체가 지금 입기에는 투박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각 제조사들은 오리지널 핏과 슬림 핏으로 구분해 제품을 선보인다. 오리지널 핏은 그럼에도 올드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이들을 위함이고, 슬림핏은 보다 현대적인 감각의 고객을 위함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요즘 캐주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내준다는 이유로 스트리트 패션으로써 또 다른 각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옷들은 투박하긴 하다. 또 실제로 기능적인 면에서도 고어텍스는 커녕 싸구려 나일론과 비교해도 방수나 방풍 기능이 뒤지는 경우가 많고 정말 아웃도어 용으로 입기에는 부족한 점도 많다. 하지만 신경 안 써도 잘만 흘러가는 전자 시계 대신에 태엽을 감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오버홀을 해줘야 하는 오토매틱 무브먼트의 시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듯이, 그리고 CD나 mp3 대신에 LP를 찾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듯이 패션 쪽에서도 이렇게 보다 ‘인간적인’ 옷들이 첨단의 시대 속에서 다시 꽃피고 있다.

(기고.. 더 클래시스)

이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이 있는 지에 대해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신 분은 오른쪽 사이드 바 아래에 보이는 빈티지 맨즈웨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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