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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욕망의 발현

by macrostar 201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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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몸의 보호라는 기초적인 필요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패션은 일종의 욕망이다. 보통은 자신의 매력을 더하거나 완성시키려 하는데 그 출발점은 같지만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충 퉁쳐서 이 결과를 각자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같은 욕망 -> 다른 양상

하지만 복각 혹은 구형 기능 웨어의 재현의 경우 목적이 모호하다. 과연 왁스칠한 바버를 입는 이유는 무엇인가, 2차 대전 때 방한을 위해 사용되던 코튼 파카의 정교한 복각품을 입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이것 역시 일종의 차별화라 할 수 있겠지만 답은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더구나 이게 딱히 타인에게 (성적) 매력을 뽐내기 위해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세상엔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므로 어떤 이의 경우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리고 모즈의 피시테일 파카처럼 몇 가지 서브컬쳐에서 그러했듯 일종의 코드로서 작용할 수는 있다. 이 경우 : 너도 비슷한 바닥에 있군이라는 게 전제에 깔리므로 본론에 가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절약된다. 사실 유행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이와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정교한 복각 월드의 경우엔 더욱 괴상하다. 이는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진짜 자동차의 반짝거림을 재현하기 위해 며칠을 사포로 밀어내는 것, 휴가를 앞두고 군복을 다리거나 낡지 않은 군장류를 찾아 남과 차별화하려는 군인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더 좋은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세계로 다가갈 수록 심연에 가까워진다. 코스프레와는 출발도 방향도 결론도 아예 다르다. 예를 들어 복각된 1951 재킷을 1958년 일본 PX에 납품하던 청바지 복각에 매칭시킨다. 복각은 자기 마음 속에 상정된 어떤 '완벽함' '만'을 추구하는 (이상한)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시대적 고증을 하는 건 아니다. 또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자신을 꾸미지만, 이게 딱히 타인을 유혹하고자 함도 아니다. 이는 본능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여하튼 그럼에도 외형에 있어서는 종종 같은 결론으로 다다를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표면을 재현해 새로운 서브컬쳐를 구성하고 있는 케이-블라블라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세계에는 확고한 위계가 존재하고 그러므로 같은 바닥에 있는 사람들끼리 손쉽게 평가를 할 수 있다. 각종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이거 멋지지 않나요? -> 취존이죠" 같은 모호한 세계가 아니다. 확실해 보이는 세계는 생각하기 귀찮은(혹은 그럴 여유가 없는), 그리고 굳이 적극적인 행위를 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Bathing Ape의 카모 셔츠


 



버즈 릭슨의 1951년 피시테일 파카 복각.


 


지방시의 카모 후디드 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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