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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이상한 옷 시리즈 03

by macrostar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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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 만에 다시. 최근 골치가 아픈 관계로 리프레시도 할 겸. 저번 포스팅이 안 예쁘고 안 좋은 옷(링크)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약간 골치아픈 옷 이야기다.

 
이 옷은 일종의 헌팅 재킷, 혹은 워크 재킷이다. 뭐 얼추 비슷하게 생긴 게 많아서 만든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겉은 캔버스고 안에는 울이 덮여있다. 그렇다고 따뜻한 건 아니고 그냥 그 정도.

꽤 정형화된 장르라 요새도 흔하게 나오는데 예를 들어 칼하트의 웨더드 덕 쵸어 코트가 그렇다.

 
weathered는 낡아보이게 했다는 걸테고, duck은 두꺼운 코튼을 말할테고, chore는 일한다는 거고. 코듀로이 칼라에 버튼 프론트, 손목에 버튼 조임, 블랭킷 안감 등등 사양은 거의 똑같다. 다만 칼하트 옷은 안감이 울이 아니라는 점이 더 안 좋고, 팔 부분 안에 퀼팅이 들어있다는게 더 좋다.

이 옷의 기본적인 문제점은 나처럼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은 입을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다는 거. 더구나 요즘처럼 가을이 사라지고 어느날 눈을 떠보니 한 겨울이 와 있는 식이면 더더욱 짧다는 거다. 물론 추위를 잘 안타거나, 위 옷의 원래 목적 - 작업용 장갑을 착용하고 무슨 일인가를 한다, 샌드 컬러라 흙모래가 튀어도 안 보인다 - 에 맞게 사용한다면 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 옷은 구입한 지 좀 됐는데 당시 내가 큰 옷을 입으면 덜 말라보인다라는 이상한 관념에 사로잡혀있던 시기에 구입한 옷이라 크다. 커도 많이 크다. 덕분에 입으면 뒤가 붕 뜬다. 언젠간 이 옷에 맞게 몸이 부풀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건 안된다는 걸 알았고, 개조는 일이 너무 복잡할 거 같고, 가방이나 만들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조금 아깝다.

이런 게 거슬려서 입을 기회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옷은 크고, 이런 타입의 옷은 나한테 사이즈가 맞는다고 해도 그다지 어울리진 않겠지만 사실 이 옷을 좀 좋아한다. 어딘가 견고하기도 하고, 막 입어야 되는 듯 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안에도 좋고.

그래서 어떻할까 고민하다가 작년 추울 때 오리털 이너(점퍼 내피)와 같이 입었더니 괜찮네 싶어서 그런 식으로 두 번인가 입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한 번은 입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그 한 두 번을 위해 일 년 간 옷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불쌍한 놈이다. 어떻게 좋은 데 가서 새 생명을 얻었으면 좋겠지 싶지만...

이 옷이 준 트라우마로 인해 이후 정사이즈의 중요성을 항상 명심한다. 또한 내 어깨 사이즈에 맞는 외투라는 게 잘 없기 때문에(몸이 맞으면 팔이 짧고, 팔이 맞으면 몸이 크고 등등) 어쩌다 만나면 참으로 반갑기까지 하다. 여자들은 빅사이즈를 걸쳐 입어도 꽤 괜찮게 보이고, 남자들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어쨌든 난 그런 게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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