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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이상한 옷 시리즈 04

by macrostar 201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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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번째 이상한 옷 이야기다. 이전 시리즈는 바로 위 검색칸에 '이상한' 이라고 써보면 나온다. 이번에는 이상하다기 보다는 예컨대 구린 옷이다. 특히 이 옷은 최근 내 몸에 가장 오랜 시간 붙어 있다는 점에서 나름 애정도 많다.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전형적인 아저씨 옷, 요즘엔 아저씨도 입지 않을 생김새의 옷이다. 상표는 런던 포그고 에스에스 패션에서 만들었다. ODM인가 뭐 그런 거로 아마 미국의 런던 포그(영국 런던 포그는 미국 회사에 팔렸다)에서는 안 나왔을 거 같다. 좌우로는 넓고 위아래는 짧고 팔도 짧은(이게 너무 결정적이다) 투실투실한 박시형으로 최근의 추세와는 전혀 관련없는 쉐이프를 자랑한다. 반짝이는 네이비 컬러로 질리지는않겠지만 따지고 보자면 이미 모두가 질려있는 색이다. 

그리고 리버서블이다. 예전 다운 파카들은(요즘도 일부 있지만) 왜 그렇게 리버서블을 좋아하는지 의문이다. 한 방향으로 더 충실했다면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텐데.

 
뒤집으면 이렇게 생겼다. 나름 예쁜 영국풍 타탄이다. 이 상태로 입으면 나가서 돌아다닐 만도 한데 뒤집으면 당연히 차가운 면이 몸에 닿게 된다. 그게 싫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뒤집지 않는다. 면 90%에 나일론 10% 혼방으로 몸에 닿는 부분으로는 아주 괜찮다. 택에 보면 이 부분이 안감으로 적혀 있는 걸로 봐서 명목상 이 아우터의 겉 부분, 즉 쉘은 맨 위 사진의 반짝이 나일론이라고 볼 수 있다.

내부 충전재는 무려 거위털이다. 거위 솜털 90%로 그외의 수치는 나와있지 않은데 여하간 방안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티브이를 보면서 입기엔 넘치게 따뜻하고, 추운 날 편의점이나 잠깐의 마실을 다녀온다든가 할 때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최근 나오는 패딩의 전형적인 생김새와 다르게 이 옷은 카트리지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 내부에 따로 만들어놨고 양쪽 면을 덮어 감춰둔 말하자면 점잖은 스타일의 옷이다. 가로 줄이 죽죽 가 있는 미쉐린 타입의 패딩이 지금처럼 대중화된 건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옷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훌륭한 스냅 버튼이다. 지퍼를 덮는 플랩과 단 네 개의 버튼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전열을 정비한다.


색이 이상하게 나왔는데 전혀 이런 색이 아니다. 맨 위의 사진이 정직하다. 턱 부분에 두 개의 단추가 있고 지퍼 맨 위와 아래 위 사진같이 생긴 스냅 버튼이 하나씩 달려있다. 이건 사실 약간 웃기는 디자인인게 이 잠바가 리버서블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퍼 안으로 들어가면 안에서 살짝 덜렁거리게 되고, 그러므로 왠지 잠바 안으로 손을 넣어 잠그고 싶어진다. 뭐 어차피 뒤집어입는 일이 없으니 괜찮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양쪽 면 모두의 왼쪽 어깨에 패치가 하나씩 붙어있다. 우선 반짝이 쪽에는 TORAY BREATHABLE FABRIC이라고 적힌 것과 런던 포그 상표가 붙어있고 체크 쪽에는 런던 포그만 붙어있다.

TORAY는 1926년에 설립된 일본 회사로 나일론을 이용한 여러 기능성 섬유를 내놓는 곳이다. 요즘 유명한 건 Entrant인데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간혹 사용하긴 하는데 그다지 고급 소재는 아니라서 그렇게 쉽게 볼 수는 없다. 스코트에서 좀 나오고 노스페이스의 벤처 재킷도 예전에는 토레이 원단으로 만들었었는데 요즘에는 하이벤트로 만든다.

디자인은 문제가 좀 있지만 기능성 측면은 꽤 투철한 옷이다. 거위털도 오리털도 보온력 유지의 수명이 꽤 길기 때문에 일부러 뜯어내지 않는 한 문제될 일은 없다. 던져 놓으면 강아지도 들어가 푹 잠을 잔다. 예전에는 타탄 쪽이 좀 근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역시 구려도 반짝이 네이비가 좋다. 보고 있으면 그 한심한 자태에 웃음이 나는데 - 입으면 더욱 재밌다 - 즐거운 웃음이 나게 하는 건 여하튼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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