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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비평의 가치

by macrostar 201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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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후세인 살라얀 2000년 쯤의 작업. 딱히 위 작업에 뭔가 들어가 있다는 건 아니고 패션쇼처럼 생기지 않은 걸 찾다보니.

"패션브랜드의 컬랙션은 문학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고 문화적인 비평을 할 가치가 없다" 모 브랜드 디렉터가 이런 말을 했다. 스트리트 브랜드로 가게 된 맥락을 말하려는 컨텍스트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말의 의미가 그렇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이다. 또 어쩌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세상 컬렉션이 다 그래야 한다고 말한 거라면 아마도 틀렸다고 보는 게 맞을 거고, 앞에 "제가 하는"이라는 이라는 한정 부사어구가 생략된 거라면 그거야 맞는 이야기다. 뭘 하든 어차피 자기 깜냥이다. 사실 문학적인 힘과 문화적인 비평의 가치라는 게 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고 어렴풋이 짐작하는 수 밖에 없지만, 비평의 가치가 없는 컬렉션을 만든다고 딱히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비평의 대상이 되는 컬렉션들이라고 무조건 더 뛰어나다고 할 수도 없다.

세상엔 여러가지 수요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여러가지 방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잘 맞는 걸 하는 게 가장 승산이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는 것도 탓할 일이 아니다. 현재의 재산이라든가, 사고관, 환경, 인맥, 취향 등등 쉴드를 구성하는 것들은 많다. 프로훼셔널이 자신의 작업이 세상 어딘가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 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어쨌든 내적 안정을 줄 것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화적 역사적 의미 덕분에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는 옷에 큰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아이콘의 의미를 소유하고자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싸지만 + 품질이 좋은 옷'이라는 모순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유니클로가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AS망을 포기하고 동대문에 가면 되고, AS망을 포기할 수 없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다른 브랜드로 가면 된다. 원래 뭐든 이렇게 간단하게 구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게 패션이든 뭐든 거기서 무엇을 알아채고, 무엇을 얻어내고, 그걸 가지고 무얼 하고 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온연히 자신의 몫이다. 이 모든 걸 다 포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하므로 다양한 혁명 서적을 독파해 대중 포섭에 나서거나, 무기를 수입해 여러가지 준비를 해 보거나.... 그런거야 자기 맘이지.

패션 바깥의 아마도 더 중요한 세상에서도, 뭐가 뭔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널려있다. 남이 뭘 하든 별 다르게 따지고 상관해봐야 짜증이나 나고 괜한 소리나 들으니 심각하게 생각할 거 뭐 있나. 무책임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트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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