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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더 퍼펙트 수트

by macrostar 2012. 8. 21.


Jake Gilchrist라는 사람이 그렸다는 퍼펙트 수트 인포그래픽. 아래를 보니 2010년 GQ의 스타일 매뉴얼에 실린 삽화인가보다. 뭐 스탠다드라는 게 보통 그러하듯 딱히 멋지지는 않지만 군더더기도 없다. 구두가 하나는 회색(아마 검정을 표현한 거겠지?), 하나는 갈색인게 좀 재미있다.

이런 매뉴얼은 남성 잡지 등에 꽤 자주 등장하는데 매번 말하는 거 같지만 일단 알아두면 나쁠 건 없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백화점에 기성복 수트사러가면 판매원들은 맨 이상한 소리만 하고 덕분에 몇 번 입지도 못할 수트를 사들고 오게 되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러므로 몇 가지 필요 지식들을 파악하고 매장을 가는 건, 마치 구입하려는 노트북의 기본 스펙 정도는 알고 용산 전자 상가에 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이다.

뭐 이상적인 케이스라면 아버지가(할아버지면 더 폼나겠다) 수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함께 매장에 가 매우 적합한 첫 정장을 구입하는 것 정도가 되겠으나 일단 우리 앞 세대가 그리 수트에 능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러므로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극소수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억났는데 예전에 갤러리아였나 에르메스 매장에서 선물을 하나 사볼까 하고 기웃거리고 있었는데(비싸서 못샀다) 지팡이를 든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와 수트를 사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뭐 좀 좋은 거 가지고 와 봐요"하는 포스가 뭐랄까 정말...

어쨌든 상황이 이러하므로 만약 면접 등을 위해 정장을 구입하는 상황에서 딱히 패션에 민감한 업종이 아니라면 튀지만 않으면 저런 거 다 틀려도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님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포멀한 수트 차림이라고 나는 젠틀맨이니까 하면서 포켓 스퀘어나 또는 롤업 같은 거 해 봐야 아무 필요없는 선입견만 줄 뿐이다.

그리고 수트는 울이어야 해, 나일론 집어 쳐 이런 이야기도 패션에 별 다른 관심도 없고 그냥 회사 다니려고 정장 사 입는 사람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그 와중에 비접착이니 핸드 Sewing이니 해 봤자 그게 무슨 소용인가. 롯데 닷컴에서 검색해 보면 최저가 수트는 5만원 가량에 구입이 가능하다. 주 6일 야근 포함 거기에 박봉을 받으며 근무를 하고 있다면(이게 절대 다수일테고) 수트는 수트가 아니라 그냥 교복 같은 거다. 그거 입고 축구도 하고, 말타기도 하고 했듯이 등등등. 거기다 대고 이런 건 수트가 아니야 여기 제냐를 봐라! 그런데 가격은 말야... 는 가혹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사실 한국에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면 어느날 갑자기 프랑스 대사가 파티에 초대한 다든가 하면 모를까(이 경우도 스탠다드 수트는 아니겠구나) 적확한 수트를 입고 나가야 하는 자리도 별로 없다. 물론 조금만 큰 회사에서 근무해도 외국인 바이어들을 만나는 자리가 늘어나고 있지만 저렇게 칼 같이 갖춰 입는 경우는 드물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진다느니 그런 것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쓸모없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영국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프랑스 아저씨. 넥타이는 짧은 듯 하고, 버튼은 다 풀고 있다. 그래도 좋은 옷 같다. 좋은 원단 / 나쁜 원단은 자연광에서, 특히 햇빛이 밝을 때 티가 많이 난다. 뉴스에서 낮에 국회 의사당에 들어가는 국회 의원과 보좌관의 옷을 잘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옷에 관심없는 의원과 디씨 백화점 갤을 열심히 눈팅하는 보좌관 조합도 있을 수 있다)


여하튼 송해 아저씨는 이런 매뉴얼 없이도 지상파 메인 엠씨를 몇 십년 째 하고 있다. 송해 룩에 대해서는 저번에 쓴 게 있으니 참고하시고(링크). 사실 그 쪽이 나름 역사가 쌓여가고 있는 한국 표준룩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요즘은 많은 이들이 잡지도 보고 하는데 너무 노티나게 입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오버 사이즈는 많이 줄었다. 수트는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해서 그냥 마네킹이 입고 있는 거 그대로 구입해도 바지가 너무 스키니하지 않고 전체 사이즈만 잘 맞아도 70%는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가이드의 득이라면 장난을 좀 더 본격적으로, 치밀하게 칠 수도 있다는 거 정도는 있다. 즉 100명 쯤 앞에 있는데 97명 정도는 뭔지 모르는 사이에 3명 정도는 살짝 웃을 지도 모르는 농담도 할 수 있게 된다. 뭐 그런 농담이 딱히 기분 좋다는 건 아니니 취향에 따라서 알아서 하시는 거고.

물론 신독이라고, 혼자 있어도 그것을 잘 알아 부끄럽지 않게 입고 있을 수 있다면 자기 만족의 세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자세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아무도 못 알아봐 준다고 해도 서러워하지 말고 혼자라도 갖춰 입고 다니는 게 좋을 것이다. 명품 수트를 못 알아봐 주는 것, 정확한 드레스 코드를 못 알아봐 주는 것, 몰래 좋아하는 여자가 막간에 장난친 센스를 못 알아봐 주는 것 그런 것 따위 뭐 어떠냐 혼자라도 즐거우면 되지.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다.

댓글7

  • 2012.08.21 20:52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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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ose 2012.08.26 14:42

    정말 재밌게 읽은 포스트입니다!
    오리지널/클래식을 따르고 집착하는 것은 사실은 굉장히 개인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답글

  • 구산동denim 2016.10.14 10:44

    약간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클래식이라는 경계가 참 어물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적인 클래식도 과연 클래식이라고 볼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말이죠...;;
    클래식은 변치않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이 좀 틀린건지...
    답글

    • macrostar 2016.10.14 14:40 신고

      옷에 있어서 소위 클래식이라고 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이 변해가고 있고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몸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변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사도 그렇게 길지가 않아요.

      그럼에도 지켜야 할 자리가 종종 있기는 한데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면 일단 숙지를 하되 크게 구애받지는 말자..는 이야기였습니다~

  • 구산동denim 2016.10.18 09:07

    사람마다 확실히 보는 관점과 기준이 다르네요 ^^
    댓글보고서 지식쌓아갑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