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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사요코, 웨어리스트

by macrostar 2026.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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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다카다 겐조, 이세이 미야케 등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의 유럽 진출이 있었고, 1972년에는 야마구치 사요코가 파리 패션쇼에서 모델 데뷔를 하게 된다. 파리 런웨이 최초 아시아계 모델이라고 하는데 1949년 생으로 도쿄 스기노 가쿠엔에서 패션 공부를 마쳤는데 모델 일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본 디자이너들의 일본색과 어울러지는 오카파 단발머리에 소위 아몬드 눈 등으로 일본의 패션 미감이 유럽에 영향을 미치는 데 크게 일조를 하게 되었다. 이후 이브 생 로랑이나 샤넬 등 패션쇼에 서게 된다. 

 

 

 

이게 일본으로 역수입이 되는데 당시 일본의 화장품 업체들은 광고 모델로 50% 정도를 서구 사람들로 채용하고 있었고 시세이도의 경우 혼혈 모델만 기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3년 야마구치 사요코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런 광고는 서구 시각 중심이었던 전형적 패션 미감에 큰 영향을 미쳤고 뭔가 동양적인 젠한 분위기를 활용하는 분위기가 늘어나게 된다. 앤트워프 식스나 마틴 마르지엘라 같은 아방가르드 형 패션이 나오는 데 미쳤던 영향도 부정할 수 없다. 아무튼 그럼에도 이 전형적 시각은 상당히 편협하게 사용되었기 일쑤였고 야마구치 사요코도 유럽의 런웨이에서 그들의 전형성에 맞춰 조각된 모습을 띄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영향도 있지만 본인을 모델이라는 말 대신 자신을 웨어리스트(Wearist)라고 불리기를 바랬던 것처럼 옷을 입는 행위 자체를 수동적 수용에서 능동적 태도로 전환한 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분은 모델링의 핵심 요소로 '기모치(느낌)', '카타치(스타일)', '우고키(움직임)'를 꼽았고 옷을 입고 표현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후에는 일본 아방가르드 예술계에 깊게 관여하며 작품에 출연하고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2007년 세상을 떠났고 겐조는 2018년 SS에서 "사요코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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