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마주, 노출

by macrostar 2026. 2. 9.
반응형

시상식 드레스는 너무나 비일상적이고 이벤트 적이라 패션이긴 한데 그냥 지나치면서 보는 정도다. 패션쇼도 비슷하게 입지 못할 옷이 잔뜩 나오긴 하지만 그쪽과는 목적과 방향, 태도가 다르다. 그쪽은 패션의 경계를 넓히고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용도다. 물론 파급력은 시상식 쪽이 훨씬 크다. 이런 식으로 균형이 유지되는 것 같다. 

 

아무튼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채플 론이 입은 니플 드레스가 꽤 화제가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n) 방향인 것 같다. 자세히 보면 피어싱은 아니고 얇은 탑이 있는 듯 싶은데 어떻게 덮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 니플 드레스는 커스텀 티에르 뮈글러 드레스인데 1998년에 처음 선보였었고, 2026년에 다시 한 번 컬렉션에 내놓은 적이 있다. 그걸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징 한 것 같다. 

 

이런 류의 드레스는 여전히 여러가지 논란을 일으키는 데 패션 선택에 있어 여성의 자유의지 vs 신체의 대상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후자가 강해지고 있는데 특히 아버크롬비와 빅토리아 시크릿, 미투 등 패션계 일련의 사건 이후 말하자면 별 이유 없는 여성 노출에 대한 반발 심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약간 더 시간을 돌리면 세계 대전 때만 해도 유럽에서도 여성들의 노출은 금기시되었다. 그리고 비키니와 모노키니를 비롯해 수많은 패션 장르들이 여성의 신체 노출 자유를 서포트했다. 사실 패션이 주도했다기 보다 개척적 여성들의 요구와 패션계의 아이템 공급이 서로 번갈아가며 자극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남자들은 멋대로 입는데 우리는 왜 안되, 내가 입고 싶은 옷 내 마음대로에서 시작된 기나긴 투쟁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세계 대전 때부터 쳐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게 어느 시점에서 권리에서 대상화로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나 생각해 보면 그 사이에 캘빈 클라인 같은 곳이 있지 않았나 싶다. 케이트 모스와 슬립 드레스는 유니섹스에 퇴폐미를 불어넣었고 이후 이런 류의 사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이(노출의 자유 달성의 과정 vs 이건 좀 이상한데) 이 산업 전선은 저만치 멀리 가버렸다. 그러다보니 다시 반발점이 찾아왔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똑같이 반복되는 건 아니다.

 

즉 저 드레스에 대한 반응은 옛날이었으면 "저런 옷을 vs 자유의지"였을 텐데 이제는 "자유의지, 예술 vs 이용당하고 있는거임" 정도 되겠다. 패션의 모든 것들은 맥락 의존적이기 때문에 1998년과 2026년이라는 차이도 있고, 또한 저런 옷을 그래미에서 입는 게 - 본인이 입고자 하는 의지나 즐거움은 차치하고 - 과연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되는가를 물어볼 수도 있다. 

 

내 경우 최근 들어서는 대상화 쪽의 비중이 컸었는데 요새 패션사를 읽으면서 그 지난했던 긴 투쟁을 되돌아볼 기회가 좀 있다보니 저런 옷을 입게 된 일이 그냥 저절로 나오게 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다시 느끼고 있다. 그냥 쉽게 뭐라뭐라 할 일이 아니긴 하다. 어쨌든 미래를 바라보며 언제나 태도를 가다듬어 갈 필요가 있다. 채플 론은 이 드레스에 대해서 I recommend just exercising your free will it’s really fun and silly :D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고(링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