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패션

유행의 물결

by macrostar 2022. 3. 24.
반응형

1. 아무래도 하는 일이 패션 관련된 뉴스를 꾸준히 챙겨보는 일이다 보니 유행의 흐름 같은 건 대충 알고는 있게 된다. 하지만 언론에서 전해주는 것들, SNS에서 보이는 것들 말고 은근히 유행을 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아주 피크인 상태의 소규모 집단 같은 것들도 있고(관련 커뮤니티나 스타일리시한 연예인 집단 등등) 범대중적인 것들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 같은 건 파악도 어렵고 사실 알게 뭐냐 싶은 생각이 있지만 범대중적인 패션은 꾸준한 출퇴근만 가지고도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뭔가가 스르륵 나타났다 사라지는 분위기가 종종 감지되는 데 그런 걸 느끼는 걸 재미있어 한다.

 

2. 하지만 코로나로 재택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런 흐름을 놓치게 되었다. 사실 변하지 않을 거 같은 일상이라는 것도 정말 허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 미국이 푸틴의 핵 사용에 대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주 작은 실수, 광기 같은 것들이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당장이라도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절은 끝나버리고 지하 벙커 같은 데서 핵겨울을 나며 당장 다음 끼니를 구하러 다녀야 할 수도 있다. 살아있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되는 그런 시절이다. 뭐 사실 그런 일에 대해 평범한 지구인이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냥 하던 일이나 계속 하며 사는 거지.

 

3. 아무튼 그런 이유로 유행의 흐름이라는 걸 느낄 수 없게 되면서 실로 오래간 만에 소위 영한 분들이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 게시판 등등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 이런 게 있군, 저런 게 있군 하면서 재미있어 하긴 했는데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고 났더니 꽤나 피로해졌다. 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MA-1, 피시테일, 와이드 팬츠, 눕시, 그레이 패딩, 바시티, 발마칸, 덩크로 등등등이 파도가 치듯 지나갔다. 게다가 영한 분들이 많은 곳에 가보면 패션 패턴도 상당히 유사하다. 유행은 물론 어디에나 있는데 그 몰입도가 지나치게 크게,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닌가 싶긴 하다. 

 

4. 이런 게 단점이 많긴 하지만 장점도 있다. 언젠가 유행의 서핑을 멈추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야 할텐데 그러고 나서 자신만의 패션 생활을 시작할 때 유행을 따라 입어본 옷들은 분명 좋은 소재가 되어줄 수 있다. 경험도 없고 본 적도 없는 것들은 상상하긴 어렵다. 주어진 재료가 많을 수록 선택지가 넓어지는 건 분명하고 그런 많은 선택지에서 좋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작은 경험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소중히 여기며 돌이켜 보고, 유행 전선을 빠져나갈 때 패션 이제 싫어! 이러면서 안티 패션으로 돌아서지 않고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5.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SNS나 유튜브 덕분에 유행의 몰입도가 더 커지는 건 분명한 일이다. 마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날 때 다양성을 운운했지만 결국 블록버스터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또한 영화나 음악 쪽에서 시리즈와 리메이크가 계속 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링크) 패션도 마찬가지다. 사실 패션은 그 정도가 심하고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데 현재 옷의 형식에서 나올 건 거의 나온 거 같고 신소재 개발로 옷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는 지속될 거다. 

 

이에 반발하는 걸로 칸예의 이지를 들 수 있다. 이상하게 생긴 걸 만들고 과도기 시점에서 꽤 재미있게 보고 있다. 하지만 칸예가 너무 문제라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 수 없다. 또 지속 가능성의 문제도 있다. 재활용과 오래 입기 등의 측면에서 불필요한 걸 줄일 필요가 있고 그게 패션의 형식을 고착화한다. 지루해 하면 소소한 소비가 늘어나고 그런 것들은 계속 쌓인다. 

 

아무튼 유행의 몰입도가 커지면서 마원은 이미 끝났다느니, 이제는 바시티라느니 뭐 이런 식의 의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유행을 쫓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다음 스텝을 향해 돌진하게 된다. 사실 마원이나 바시티나 아주 오랫동안 검증된 옷이고 딱히 끝날 일도 새로 시작할 일도 없는 옷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유행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6.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문득 깨달았는데 가지고 있는 옷이 대부분 나온지 몇 십 년이 지났고, 계속 나오고 있는 옷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브랜드의 측면에서. 백투더퓨처처럼 몇 십 년 전으로 가도 그때도 똑같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이걸 한동안 계속 입을 생각을 하고, 그 사이에 이 브랜드가 계속 나와서 안정적인 보급이 가능한 이런 안정감을 내가 좀 좋아하는 거 같다. 

 

7. 어쨌든 유행의 굴레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또 그걸 무시하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알게 뭐냐는 사람들, 쫓는 사람들, 반발하는 사람들도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런 챗바퀴 시대를 끝내고 빙빙 돌아가는 패션 세상을 적당한 거리에서 구경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그런 와중에 남이사 뭐라하든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내 오랫동안 잘 입는 패션 생활을 즐겨야 겠다 하는 분들은 언제든 거기에 딱 맞는 이곳, 패션붑이 있으니 꼭 기억해 두십사 당부를 한 번.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