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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패션 대 패션, 패션의 지루함

by macrostar 202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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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vs. 패션이라는 책(링크)에서 패션이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패션은 결국 자기 만족의 영역이고 디자이너와 소비자라는 개인이 벌이는 여러가지 실험과 도전의 총합이었던 때가 있었지만 대기업 블록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구획되고 정제되어 가며 특유의 활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안타까움 정도고 현실이 이러이러하니까 다르게 생각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상업과 글로벌화, 저변의 확대 등의 상황에서 이런 미래는 피할 방법이 없다. 그냥 아이가 크면 어른이 되는 것과 똑같다. 

 

힙합의 메인스트림화와 스트리트 패션이 패션의 흐름을 바꿔놓은 지금 시점에서 이 재미없음은 약간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예컨대 패션이란 기본적으로 계층적, 계급적 분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리를 기본 전제로 가진 채 고급 패션은 포멀 웨어, 비즈니스 웨어, 일상복 등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만들어 낸다. 예컨대 그냥 흐르는 일상, 직업 등과는 다른 자리를 위해 만들어진다. 물론 그 자리는 일상, 직업 등과 연계가 되어 있다.

 

그리고 패션은 패션화를 통해 그런 자리를 확고히 한다. 마크 제이콥스가 안티 패션을 패션화하고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부랑자의 옷을 패션화하는 식으로 심지어 자신을 조롱하고 고깝게 여기는 것들 마저 뭐든 가져다가 패션 안에 자리를 만들어 내고 고급 제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이건 다른 영역과의 관계와 그런 옷을 입는 사람의 자리와 태도 등에 의해 보다 정확한 자리매김이 생겨난다.

 

그렇지만 지금은 패션화의 과정이 그다지 필요가 없어졌다. 아웃도어, 작업복, 일상복, 운동복은 그 옷 그대로 고급 패션이 된다. 한순간의 농담이나 놀림 역시 딱히 고급 패션의 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나이키 운동화가 그러하듯 티셔츠는 티셔츠인 상태로 럭셔리의 자리를 점유해 들어온다. 간단한 예로 발렌시아가의 심슨 티셔츠를 들 수 있다. UT에서 내놓을 거 같은 걸 발렌시아가에서 내놓고 높은 가격을 받는다. 초어 재킷, 바람막이, 카고 바지, 오버사이즈, 편안한 룩, 못생긴 룩, 쳐비한 룩 등등이 이런 식으로 유입된다. 포멀 웨어와 관계 설정이 필요가 없는 게 이런 옷을 입는 사람들에게 포멀 웨어가 이미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돈이 생기면 그냥 유니클로나 무신사 스탠다드 혹은 에션셜스나 꼼데에서 몸을 덮을 것들을 대강 마련하고 디올 조던이나 시카고 같은 걸 신는 식으로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단점만 있는 게 아니다. 패션이 모두의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는 계층, 계급 더불어 인종이나 성별, 문화적 차이라는 벽을 없애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복의 럭셔리화가 그나마 실현 가능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포멀 웨어와 비즈니스 웨어 같은 복장이 유럽 백인 중심의 산물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패션이 다중 중심을 가지도록 하는 방법이다. 전형적인 기본 단품에 여러가지 로고가 새겨지며 '다른' 패션이 되고 심지어 가격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건 이런 상황에서 가능하다.

 

 

이런 게 패션의 기본 속성이 되어가는 건 대기업화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시대의 피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찮아도 짧았던 패션의 유효 기간을 더 짧게 만드는 이 지나친 찰라성은 패션을 보다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원인이 된다. 

 

웃기면 된다라는 것 역시 나쁠 건 없다. 패션이라는 건 결국 즐거움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결국은 입고 다닐 옷이고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그냥 하루 우울한 기분을 선사할 뿐 커다란 인류의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다양성을 포섭하며 한칸 더 나아갈 방법이 지금처럼 밖에 없는 걸까. 누군가 어디서 뭔가 하고 있지 않을까, 혹은 지금의 패션이 보여주는 어떤 종류의 결핍이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새 가장 궁금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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