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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의 단추

by macrostar 202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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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첩보물로 겉을 씌운 관료제 드라마다. 나오는 스파이들은 내내 서류 작업, 상부의 결제 이런 것들에 시달린다. 아무튼 예전에 이걸 볼 때 인상적이었던 건 나오는 아저씨들이 반드시 자켓 단추를 채우고 있고 앉을 때 반드시 푸는 모습. 글로 읽어서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일률적으로 딱딱 하는 걸 보면서 저렇게 하는 거구나 했었다. 그런 걸 보면 한참 따라해 보고 싶은 나이였기 때문에 연습을 했었는데 막상 해보면 아무래도 그게 더 편하기 때문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서 금세 습관이 든다.

 

 

수트 단추에는 나름 복잡한 에티켓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일단 맨 아래 단추를 풀어 놓는 건 유래가 있다. 1900년대 초 영국의 에드워드 7세 시절 배가 너무 나와서 웨이스트 코트의 마지막 단추를 잠그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왕의 권위를 유지시키기 위해 신하들도 그걸 따라 마지막 버튼을 풀어 놓았고 그게 세계로 퍼졌다. 또한 예전에 상대적으로 캐주얼 한 라운지 수트였던 게 포멀 웨어의 자리로 들어왔는데 20세기 초 말을 탈 때 편하기 위해 단추를 풀었고 그게 앉을 때 자켓 버튼을 푸는 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것은 007. 습관이 잘 들어 자기가 푸는 지도 모를 정도면 좋은 거 같다.

 

 

수트 자켓은 1버튼, 2버튼, 3버튼, 더블 등이 있기 때문에 약간씩 다르다.

 

1버튼 수트 : 기본으로는 단추를 채우고 앉을 땐 푼다.

 

2버튼 수트 : 위 버튼 만 채우고 앉을 땐 푼다. 아래 버튼은 항상 풀어 놓는다.

 

3버튼 수트 : 맨 위 버튼을 채울 건가 하는 건 자기 마음이다. 가운데 버튼은 채우고 맨 아래는 푼다. 앉을 땐 다 푼다. 

 

더블 브레스트 : 아래 버튼 외에는 다 채우고 있는다. 앉을 때도 마찬가지다. 더블 브레스트는 4버튼, 6버튼, 8버튼 등이 있기 때문에 약간 복잡하다. 여기에는 마치 공기처럼 몸에 익은 미묘한 감각이 있겠지만 사실 잘 모름...

 

 

아무튼 결론은 에드워드 7세는 배가 나왔다.

 

 

 

 

수트 자켓 하니까 생각났는데 예전에 아르마니 수트가 한창인 시절 2버튼은 뭔가 올드해 보이고 3버튼이 세련되어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때가 지나고 클래식 유행, 아이비 등등이 지나가면서 3버튼은 뭔가 올드해 보이고 다시 2버튼이 폼나 보이는 시대가 찾아왔다. 워낙 다양한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라 여전히 브랜드마다 3버튼을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형이나 취향 때문에 일부러 선택하지 않는 한 3버튼은 약간 밀려 있다. 또 수트의 V라인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약간 재미있는 게 올해 유니클로 콜라보로 나온 질 샌더의 +J와 크리스토퍼 르마레와의 U 양쪽에 모두 3버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으로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좀 다름. 그리고 경험치를 늘려보는 차원에서 Theory와의 콜라보로 나온 트레이닝 복 같은 수트 자켓(양쪽 주머니에 지퍼가 붙어 있다)과 +J의 수트 자켓은 한번 입어 보는 게 재미있을 거 같다. 씨어리 콜라보는 겉으로 보면 특이하고 과감한데 입어 보면 생각보다 무난하고 +J는 어깨 라인이 재미있다. 사람을 _O_ 이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_가 어깨, O이 얼굴) 꽤 자연스럽게 /O\(... 어깨를 아래로 내릴 수가 없어서) 이런 식으로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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