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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결국 롤플레잉이자 코스프레다

by macrostar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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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vs. 패션이라는 책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고, 이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현재 스코어 당분간은 세상에 꺼내기 어려워진 듯한 관계로 여기에 적어 놓는다.

 

가끔 취향에 따라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취향은 개인의 영역이고 말하자면 개성을 완성시켜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맹목적인 유행 소비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른다는 건 무엇인가, 그게 가능한가.

 

취향에 따른다는 말은 실제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는 슬림핏의 바지가 취향이었다. 그러다 루즈 핏의 바지가 취향이 된다. 그래픽 티셔츠, 스웨트셔츠, 옷의 길이, 폭, 재질 등등 모두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사실 작게 보면 유행에 대한 호응 혹은 반발로 이뤄져 있고 커다랗게 반복되며 흘러가고 있는 패션의 흐름에 대한 호응과 반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미 취향은 각자의 것이 아니다.

 

물론 혼자 옷을 상상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옷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라면 당장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브랜드를 런칭하는 게 옳다. 상상은 대부분 지식과 경험에 기반해서 나온다. 카라가 붙어 있고 버튼이 달려 있는 셔츠에 대해 아무리 상상을 해 봐도 드레스 셔츠, 브로드 셔츠, 풀오버 셔츠, 캠프 셔츠, 밀리터리 셔츠, 해빗 셔츠, 오픈 칼라 셔츠, 견장 셔츠, 샴브레이 셔츠, 베이커 셔츠, 파일럿 셔츠, 볼링 셔츠, 사파리 셔츠, 카발리 셔츠, 네루 셔츠 등등등등 세상에 무수하게 많은 셔츠 장르의 어딘가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세상 어딘가 이미 있는 것보다 나은 걸 내놓기가 어려운 법이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것들을 익숙하게 알고 소재, 형태, 특징 등등을 조합해 가며 새로운 한 칸을 나아간다.

 

그러므로 취향은 이미 사회적이다. 그렇다면 개성 따위는 없는 걸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모두다 인간이지만 다 생긴 게 다르다. 어딘가 닮은 데가 있기도 하는데 모아 놓으면 다들 다르다. 그러므로 기존의 옷은 몸과 결합해서 개성이 될 수 있다. 또한 하는 일도 다르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생각하는 방식도 보통 다르다. 타인의 생각을 듣고 동질감을 느끼는 일이 가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고의 기반 자체가 다르다. 흘러나온 무언가 중에 비슷한 게 있었을 뿐이다. 그런 행위는 보통 자기 확신의 방법으로 사용될 뿐이다.

 

아무튼 기존의 옷은 행동과 결합해서 개성이 될 수 있다. 즉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쓰고 있느냐가 중요한 일이 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중요한 건 구축이 된다. 세상의 옷과 나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스타일이라고 하는 건 아마도 이 비슷한 일일 거다. 즉 스타일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목표 지점을 세울 수 있다.

 

몸, 생활 방식과 옷이 단순히 결합되는 것만으로도 옷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긴 하다. 예컨대 잘 맞거나, 잘 맞지 않거나 하는 것 모두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 줄 거다. 하지만 매일 입고 사회 생활을 한다면 그걸 조금 더 유용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조금 더 드라마틱한 즐거움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여기서 사회 생활의 측면으로 스타일을 바라볼 수 있다. 패션은 사회적 규약이고 모드의 전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옷이 모드의 전환에 기여하는 건 나 자신의 편의와 만족을 위한 거기도 하지만 공동 사회에서 더 높은 효율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여기서 효율은 결과 뿐만 아니라 교류, 관계 등등 많은 부분을 일컫는다. 다른 몸과 생각, 행동 방식은 사회라는 공동 구조 안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행동을 하는 걸까.

 

예컨대 진정한 자기 자신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건 취향과 비슷하다.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고, 있어도 써먹을 데가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있다면 무의식의 구석 어딘가에 숨겨 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술을 마시면 진솔한 자기 자신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할 때에 자신이 드러날 뿐이다. 혹시 타인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면 계속 취해 있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술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필패의 길이다.

 

아무튼 이런 혼란에 적응하는 방법은 일종의 연기를 하는 거다. 직장인을 연기하고, 일을 하는 걸 연기하고, 휴식을 연기하고, 즐거운 한 때와 슬픈 한 때를 연기한다. 연기라는 말이 기만적으로 들린다면 캐릭터 플레이, 역할 실행 정도로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패션은 근본적으로 코스프레다. 겉을 넘어서 내심한 마음 어딘가를 들여볼 거라는 기대 같은 건 애초에 하지 않고 사는 게 맞다. 보이는 게 모든것이다. 그런 게 숨겨져 있다면 아마도 계속 숨겨져 있기만 할 거다.

 

스타일을 만든다는 건 캐릭터 플레이의 완성도를 높이는 거고 패션의 방향에서 보자면 결국 코스프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다. 타잔이라면 가죽 팬티를 입어야, 스파이더맨이라면 그물무늬 쫄쫄이를 입어야 캐릭터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역할극에 임하는 사람의 몰입도도 높아진다. 정말 열심히 하다보면 타잔이나 스파이더맨에 빙의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꼭 그렇게 요란한 옷이 대상일 필요는 없다. 드레스 셔츠를 입으면 업무 능력 플레이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수면 바지를 입으면 휴식 플레이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며 트렌드 세터 플레이를 할 수도 있고, 한 가지 옷을 줄창 입으면서 나는 자연인이다 플레이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패션에 대한 소비는 코스프레를 위한 비용이 된다. 이런 걸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 각자의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현명한 소비를 위한 규칙이 필요하다. 즉 목표 방향의 설정, 생활 패턴에서 모드 별 구획의 분리,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전술이다. 여기서 목표 지점의 설정은 불가능하다. 삶은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패턴의 분류는 개인의 라이프 패턴에 기반한다. 어떤 사람은 업무와 휴식을 완벽히 분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어떤 사람은 둘 사이를 넘나드는 게 더 효율적이다. 즉 극히 개인적이므로 프레임의 분류 정도가 제시할 수 있는 한계다. 그 안의 내용은 이래라 저래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내용에 기반해 옷의 구매가 시작되는 게 맞겠지만 맨몸으로 그렇게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누구나 이미 뭔가를 가지고 있다. 다 가져다 버리는 건 옷에 대한 좋은 태도가 아니다. 버림 받은 옷들이 저주를 내릴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보통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분류하며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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