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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멋대로 입는다는 일에 대해서

by macrostar 2020. 1. 6.

이전의 책 일상복 탐구에서는 '멋대로 입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그게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상적인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멋대로 입자라고 부추키기만 하는 건 일견 무책임한 면이 있다. 사전에 이뤄져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고 그에 대한 사회적 반발 역시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주 예전에는 패션, 옷이 계급의 표시였다. 계급을 넘나들 수는 없었다. 계급 사회가 사라지고 조금씩 완화되면서 보다 유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자아와 개성을 표현한다는 표제가 붙었지만 결국은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시그널 역할이 가장 크다. 이 시그널에는 개인도 포함되지만 사회적 구조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가장 크게는 남성, 여성에서 시작된 여러가지 장벽들이 있고 그걸 흐리게 만들려는 노력이 현대 사회가 발전할 수록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장벽은 높다. 

 

 

그러므로 멋대로 입자는 말에는 이 모든 것들을 무력하게 만든 이후에 가능하다는 전제가 어느정도는 깔려 있다. 멋대로 입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구조를 초월해 있든지 가장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일 거다. 또한 자아의 표현이라는 패션의 가장 이상적인 역할은 거기서부터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의 구조에 상관없이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 더 크게는 세상의 구조가 그걸 상관없게 만든다가 멋대로 입자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게 본다면 진짜 패션이란 시작된 적도 없다. 본격적으로 다양성을 앞에 내건 스트리트웨어 시대가 그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예를 들어 패션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젠더 뉴트럴 패션이 성별 경계를 흐려놓을 수 있을까, 친환경 패션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완전히 긍정적이진 않다. 패션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방탕함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가능한 극대화 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모순된 모습은 러기드하고 이지한 옷이 유행하면서도 로고의 힘이 더 강력해지는 최근의 럭셔리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이 저런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전에 이미 고급화되며 다른 식의 장벽을 쌓고 이익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건 기업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아이고 길이 없네 망할 놈이 세상 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방법과 역할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볼 것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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