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5 12:00

2016년에 패션 vs. 패션(링크)을 썼던 가장 큰 이유는 패션이 너무 재미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가 없으면 뭐라 할 말이 없는데 재미가 있을 수 있을 듯 한데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상황이 약간 급변했다. 힙합과 스트리트 패션이 대세가 되었고 다양성과 환경 관련 이슈가 패션을 덮었다. 

 

게다가 프래드먼트 도쿄의 후지와라 히로시, 슈프림의 제임스 제비아 같은 선지자들 덕분에 하이 패션은 공장 양산품을 비싸게 파는 방법을 완전히 터득했다. 면과 폴리에스테르는 관리가 편하고 수명이 길기 때문에 환경에 도움이 된다. 또한 편안함과 안락함, 가벼움은 시대 정신이다. 문제는 섬유에 있는 게 아니라 유행지났다고 금세 치워버리는 인간에 있을 뿐이다. 매달 새로운 유행을 내놓고 만들어 내지만 그걸 사라고 한 적은 없다. 지속 가능한 패션은 라벨로 존재한다.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들어맞지 않는 S, M, L 규격화된 사이즈는 오버사이즈로 극복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자신을 눈에 보이는 데로 판단하지 말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패션이다. 유레카...

 

이 모두는 시대의 흐름 덕분이다. 패션이 이 변화를 초래한 건 아니지만 눈치가 빠른 산업답게 금세 따라갔고 또한 이 변화의 속도를 가속시켰다.

 

아무튼 이런 변화가 시작되고 나서 약간 희망섞인 이야기를 한동안 해오고 있었다. 여전히 별로 재미는 없는 듯 하지만 그래도 품은 뜻이 커지고 설득력이 높아졌으니 가능성이 생겨난 게 아닐까. 혹은 그런 가능성이 생겨야 한다, 흥미진진해져야 한다 같은 당위에 가깝다. 사실 그렇게 돌아가진 않고 있고 그러므로 다시 재미없다고 투덜거리게 될 거 같고, 투덜거려 봐야 인생 뭐 좋을거 있냐는 생각에 그저 옷 입는 즐거움을 도 닦듯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긴 한데 사실 그런 건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지금의 변화 방식에는 장단점이 약간 있다. 다양성 같은 측면은 패션에 의해 분명 가속도가 붙었다. 패션과 화보의 이미지의 힘은 그동안 봐왔던 게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려준다. 그렇지만 단점도 있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을 패션 스타일의 하나로 고착시키는 거다. 물론 이렇게 방향을 튼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다양성 운동가와 패션 디자이너로 구분을 해보자.

 

다양성 운동가가 주장의 전개를 위해 패션을 이용한다 :

패션 디자이너가 다양성 운동을 한다 : 

패션 디자이너가 다양성 운동이라는 흐름을 이용한다 :

패션 디자이너가 다양성 운동이라는 흐름의 기호들을 이용한다 :

 

 

여기에 소비자가 개입되어도 비슷한 줄기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패션은 별 생각하지 않고 오, 멋지구나! 하는 사람들이 끌고 가는 게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 "오, 멋지구나"인데 진정성의 무브먼트든 혹은 그저 그런 것들의 기호를 활용한 패션이든 지금 돌아가고 있는 게, 그러니까 파리와 밀라노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위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과연 정말 재미있어졌냐 하는 거다. 뜻은 커졌지만 그걸 제대로 담고 있는걸까. 과연 지금의 방법이 최선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있는데 모르는 건가, 누군가 하고 있는데 발견을 못한 건가, 아니면 그런 건 원래 세상에 없는건가. 그게 최근의 가장 궁금한 사항이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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