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2007.12.15 01:06

일부러 찾아가 비싼 돈 주고 구입할 만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하우스에서 중점을 두고 볼만한 건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애티튜드다. 이 회사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물론 아마도 가장 큰 목표는 회사의 유지다. 망하지 않고 버텨내는 것. 이 치열한 경쟁터에서 살아남는 것.

이런 본질적인 욕구에서 한칸 더 올라간 애티튜드는 이 혼란의 와중에서 버텨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무기다. 왜 루이비통 대신에 내가 만든 걸 사야 하는가, 왜 에르메스 대신에 내가 만든 걸 사야 하는가. 뚜렷한 애티튜드 없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는 무척 힘들다.
 

두번째는 테크닉이다. 좋은 원단을 고르고, 재대로 옷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도 최고의 수준으로. 이건 디자이너 하우스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고, 이게 갖춰져 있지 않다면 당연히 이 안으로 들어올 자격이 없다.

이 부문은 패션쇼와 수많은 구매자들 덕분에 끊임없이 재평가 된다. 허울좋은 이름만 가지고 대충 만들어 상표만 붙여서 내놓는다고 치자. 이 바닥은 그닥 쉬운 동네가 아니다. 수많은 쟁쟁한 라이벌들이 버티고 있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한 때의 패션 명가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소문은 금방 퍼진다.

 





어쨋든.
 

오스틴 출신의 톰 포드가 구찌를 구원하기 위해 들어간게 1990년. 그는 한 때의 가죽 명가 구찌를 일류 옷장사 브랜드로 만들어 놓았다. 톰 포드 이후 잘 팔리기 위한 마케팅과 이미지 메이킹은 비슷한 처지의 디자이너 하우스의 가장 큰 덕목이 되어 버렸다.
 

결국 각각의 디자이너 하우스를 규정짓던 애티튜드는 사라졌다. 패션을 자신의 애티튜드를 표현하기 위해 이용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해졌다.
 

물론 시장은 훨씬 넓어졌다. 잘 팔리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뭐든 팔려야 살아 남을 수 있고, 살아 남아야 다음 시즌을 선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다 똑같아지고 있다. 모두들 일류, 최고, 럭셔리를 외치지만 지향점은 모두 한군데다. 더 잘 팔리는 옷, 더 잘 팔릴 옷.

이건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와 같다. 요란하지만 새로운 건 없다. 톰 포드 덕분에 애티튜드들은 사라졌고 그러므로 모든 브랜드들은 한 점으로 수렴해가게 되었다.


1980년 이전의 샤넬이 없는 세상은 분명 지금과 다른 세상이다. 샤넬은 여성들의 세상 진출을 원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옷의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1980년 이전의 에르메스가 없는 세상도 분명 지금과 다른 세상이다. 그들은 가죽의 관리와 세공에 모든 걸 바쳤고 그들 덕분에 만들어진 수많은 관리법들은 아직도 모범이 되고 있다.

발렌티노, 이브생로랑, 랑방 모두들 한때 남 신경 안쓰고 자신들의 길을 가던 시절이 있었다. 좋았던 시절도 있었고, 힘든 시절도 있었겠지만 어쨋든 그들은 우리가 패션에 대해,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가져야할 애티튜드를 완성시키는대 도움을 주었고, 지평을 넓혀주는데 일조했다.
 

물론 이들도 톰 포드와 함께 이젠 모두 한 길을 가고 있다. 목표는 명료하다. "잘 팔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초일류 디자이너 하우스."
 





다시 물어본다. 왜 나는 에르메스 대신에 톰 포드를 선택해야 하는가. 왜 나는 샤넬 대신에 톰 포드를 선택해야 하는가. 톰 포드의 대답은 대체 뭔가. 톰 포드의 옷이 존재하는 세상과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과연 뭐가 다른가.
 

지금 샤넬과 에르메스는 뭐가 다른가. 라거펠트 대신에 갈리아노를 선택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대체 뭔가. 그렇다면 이들은 왜 존재하는가.

결국 이건, 자신들을 다시 붙잡을 덫이 될 것이다. 그들은 더 큰 회사를 가지게 되었지만, 아마도 결국은 이름을 잃게 될 것이다.






- 꽤 예전에 쓴거지만 물론 내 예상은 많이 틀렸다. 3~4년전부터 구찌가 망할걸 예상했지만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요즘의 구찌는 사실, 톰 포드가 있을때의 구찌보다 더 난망한 상황이다. 지금의 구찌가 망하지 않고 버티는 (더구나 작년인가 세간의 네임 밸류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상이라면 그게 더 문제가 아닐까 조용히 생각하고 있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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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구찌 잘 나가는 이유는 제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라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하하하. 지난 일요일에 갔던 명동 롯데 구찌 심지어 '남성' 매장에도 5미터 가까운 줄이 있더군요. 눈으로만 판단하자면 디자이너 하우스 브랜드와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사람들이 다수였지요. 하하하.

    2010.08.26 01: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패션쪽 입장에서는 톰 포드 시절에 완전 끝날 줄 알았는데 프리다 지아니니가 생각보다 잘 해주고 있는거 같습니다.

      PPR(구찌 모회사)이 확실히 눈치가 빠르고, 그런 기민함이 구찌가 여전히 패션신에서 버티는 힘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판매쪽 관점에서는 여전히 굳건해 보이긴 하지만, 요즘엔 이것보다 비싼 애들이 더 잘나가는거 같아요.

      2010.08.26 12:37 신고 [ ADDR : EDIT/ DEL ]
  2. 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10.12.28 13: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김영재

    재미있게 읽었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하네요

    2017.08.20 01: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DE.YJ

    정말 좋은글 같습니다. 패션하는사람으로서 이 홈페이지는 정말 유용하고 볼거리가 많은것 같습니다. 고프코어 라는 트렌드를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해주셔서 참고가 정말 많이 되었어요 . 앞으로 자주 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4.12 17: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1234

    다시보게되는글이네요 참 ㅎㅎ

    2018.08.28 10: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