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대의 옷을 보고 무엇을 알 수 있을까

by macrostar 2019. 3. 11.
반응형

비비씨에서 과연 정장과 넥타이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뉴스를 다뤘다(링크). 예시로 든 건 골드만 삭스의 출퇴근 복장 유연성. 약간 재미있는 건 "차려입는 행위"가 남을 거라고 말한 세 명의 인터뷰 모두 돈을 맡길 때를 예로 들었다. 즉 청바지 같은 걸 입고 있는 사람은 믿기 어렵지 않느냐는 것. 이 말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금융 사기를 칠 생각이라면 일단 고급 정장을 맞춰라.





물론 저분들도 그저 옷으로만 판단하진 않을 거다. 말 그대로 돈을 맡길 생각이라면 회사와 배경, 말투, 손짓, 눈빛까지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할 거다. 


이 수많은 정보들 중 옷의 중요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애초에 과연 옷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잘 차려입은 착장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그의 성실함이 아니라 이 사람은 옷을 좋아하는 군 뿐이다. 마찬가지로 잘 관리된 반짝이는 손톱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이 사람은 손톱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군 밖에 없다. 거기서 더 나아갈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다.


물론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옷을 잘 차려입거나 할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이고 게다가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 옷을 잘 차려입었는지, 혹은 왜 편한 옷만 입고 있는 지, 색깔을 맞춘 혹은 맞추지 않는 이유가 뭔지 등등 착장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넋 놓고 들을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알 방법은 없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런걸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을 때 착장은 그저 수많은 재료들 중 하나일 뿐이다.


세탁 쪽은 옷처럼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약간 다른 점이 있는 데 이건 주변에 불쾌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회인으로 함께 지내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 중 하나다. "뭘 입든 내 자유야~"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면 뭘 입든 평생 세탁을 하든 말든 타인이 알바 아니다. 


물론 "시각적 폭력"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타인의 착장이 자신을 괴롭히는가. 대체 어떤 피해를 주고 있을까. 시각적 폭력 운운이야 말로 세상 과대 평가되고 그저 기분 나쁨을 어떻게든 사회적 용어화시키려는 음흉한 시도일 뿐이다. 타인의 착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어차피 남의 옷 자기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게 있는 지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저 고개를 돌리면 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