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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패션에서 다양성의 확보

by macrostar 2017.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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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쓴 패션 칼럼(링크)에서는 패션이 광고나 화보를 통해 보내는 이미지의 강력함, 그리고 이에 대한 규제의 경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는 프라다의 포스터 걸 캡슐 컬렉션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떠들었던 이야기와 조금 연결이 된다(링크). 


이건 물론 야하고 외설적인 걸 막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게 넘쳐 날 수 있다면, 그런 걸 제어할 수 있고, 멍청한 범죄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큰 목적과 방향은 정신적 건강함의 회복에 가 있다. 그리고 정신적 건강함이란 건전한 것들만 본다고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여튼 몇 번에 걸친 칼럼에서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해결 방안으로 다양성의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주체(생산자), 객체(소비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물론 다양성의 완전한 확보란 아직은 이상적인 일이고, 그게 실현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 확보가 불가능하다면 다른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현대 패션의 관성, 트렌드 집중 같은 문제는 다양성의 확보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여기서 다양성의 반대는 사고가 고정되어 있다는 거고 그 고정은 지난 구시대의 유물들과 현대 패션이 만들어 낸 일종의 환상을 말한다. 계급 사회, 남성 중심의 사회도 해당되고 패션이 현대인에게 강요하는 이미지 - 건강함 대신 마른, 병약한, 파티의 꽃, 다리는 이래야 해, 화장은 저래야 해 등등 - 을 말한다. 이건 예의를 없애고 멋대로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 많이 실패한다. 공동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남이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는 걸 방해하지 않음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의 이미지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마른 모델, 너무 어려보이는 모델("어린"이 아니라 "어려 보이는"이다. 이 둘은 명백히 다르다), 창백해서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모델을 더 멋지고 패셔너블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영국의 경우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기존 성 역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자체를 2018년부터 금지할 예정이다. 


기존 성 역할이란 예컨대 집안 일에 서툰 아버지, 학업에 미숙한 소녀, 집안 일 하는 여성 등등을 말한다. 여자 몸은 이렇게 생겨야 해, 이런 사이즈 옷 정도는 입을 수 있어야지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게 시행되면 일부러 역할을 돌리고 그런 편협한 사고에 기반한 메시지가 금지된다. 예전의 모습이 계속 나와서 불평등이 굳어지고 있고, 그게 인간의 선택을 방해하고, 바뀌어 있는 모습이 일상화되고 익숙해지면 사람들의 생각도 바뀐다가 ASA의 생각이다.


패션에서 이런 건 너무나 중요하다. 패션은 언제나 기존의 고정된 틀을 뒤집으며 갈 길을 찾아낸다. 뒤집힌 틀이 일상이 되면 중저가 업체들은 그런 걸 내놓고 그러면 비싼 옷을 팔 수 있는 고급 디자이너들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이게 우리가 그들에게 옷에 비싼 옷을 매길 수 있도록 하고 그래서 실험의 실패를 보존할 비용을 지불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티셔츠나 청바지를 괜히 일부러 공들여 만든다든가, 지샥이 훨씬 정확하지만 수백개 부품을 깎고 있는 시계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발전된 테크놀로지에 대한 일종의 전복이다.


물론 규제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별 근거도 없이 구시대부터 이미 굳어져 있던 관습적인 표현을 막으면 더 많은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표면으로 나올 수 있기 마련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표현의 자유다. ASA의 이번 광고 규제안에 대해서도 영국 마케팅 그룹 싱크박스의 최고경영자(CEO) 린제이 클레이는 ‘성편견 광고 금지’ 조치가 광고산업에 경종을 울림으로써 “표현의 제약보다는 더 풍부한 창의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본문에 살짝 썼듯이 이런 건 말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운동장에 줄서서 “혁신”을 외친다든가, 자유의 상징 청바지와 가죽옷을 외치면서 형님 아우님을 열심히 찾는 건 모순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TV 예능만 봐도 그 위계의 질서를 빤히 볼 수 있고, 그게 상식으로 굳으면 다른 생각을 품는 것도 어렵고, 그걸 품었을 때 질서를 깬다는 이유로 방해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이런 태도가 자신을 본격적으로 들여다 보기 귀찮은 게으름,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며 손쉽게 관습에 의존하는 데에서 나온다. 즉 적극적으로 뭔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자신을 개혁해 가는 건 사실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종종 민주주의보다 독재가 인기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생각해서 결정하기 싫기 때문이고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게 싫기 때문일 거다. 특히 이런 보수성은 기본적, 관행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매우 쉽게 나오고 심지어 자신이 우위에 있지 않다고 항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여튼 이런 건 이런 건 인간 만이 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해야 한다.


다양성의 적극적 보장에 대해 위에서 보다시피 어디선가는 아직 미흡하지만 분명 준비를 하고 있고, 어디선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있고, 어디선가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말도 못 꺼내는 곳들 중에 돈이 상당히 많이 있는 곳이 있다는 현재 인류가 지닌 큰 문제 중 하나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일단 좋고 비싼 걸 원하는 이들이 있을테니 팔면 좋은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현재의 체제를 굳히고 강화시킨다. 그 와중에 수많은 오지라퍼들은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자진해서 군집한 고릴라 집단 같은 게 되려고 하는 이들을 막을 방법은 사실 없다. 


음...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어쨌든 세상과 패션이 조금 더 재밌어지는 데 서로 매개체이자 결과물의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서 패션과 세상이 또한 조금 더 재밌어 지는 게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고로 칼럼을 많이 읽어주세요(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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