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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워싱 진의 재현율, 그럴 듯함 vs 그럴 듯하지 않음

by macrostar 2017.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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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페이드 데님 뭐 이런 말을 계속 썼는데 오늘은 왠지 워싱 진. 페이드는 입다보니 낡아서 저런 무늬가 나왔다는 느낌이 좀 있고 워싱 진은 입으면서 빨다보니 저런 무늬가 나왔다는 느낌이 좀 있어서 약간 다르긴 한데 어차피 멋대로 쓰는 말이다... 데미지드 진, 보로 진 등등 여러가지 말도 있는데 여튼 로 데님 상태에서 어디론가 흘러간 이후의 모습을 형상화, 상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 하에 놓여있다. 


올해 데미지드 진을 굉장히 여러 브랜드에서 선보이고 있는데 로 데님의 그 새파란 무거움이 좀 지겹기도 하고, 날이 더워지면 밝은 게 아무래도 좋고 등등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번 달에 한국일보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괜찮을까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 있는데 겸사겸사 그것도 참조(링크)를...


위 기사에 살짝 낀 참고 대담에서도 말했지만 청바지와 가죽 옷은 낡아도 입을 수 있는 옷이고 그 이유는 이 옷의 탄생, 유행이 낡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낡음 자체가 패션이 되어 있다. 즉 깔끔하고 잘 세탁된 옷을 입어야 하는 현대 사회의 패션 세계에서 이뤄낸 인류의 성과(...) 중 하나로 나름 소중한 유산이므로 잘 보존해야 하는...



여튼 페이드 데님은 대략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1) 실제로 입으면서 페이드가 생긴 낡음 / 2) 실제로 입어서 생길 법한 페이드를 재현 / 3) 익숙한 형상의 페이드를 집어 넣음 이렇게가 있다. 2)와 3)은 완성도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2)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만든 3)이 있기도 해서 섞이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우선 1)이야기를 하자면 이 사이트의 개인화 카테고리(링크)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다. 여튼 청바지의 페이드는 입어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실제로 입으면 그 모양이 나온다. 물론 모양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관리가 좀 필요하기 때문에 이 계열도 관리를 해서 저 모습이 된 것과 관리를 하지 않아서 저 모습이 된 것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두 사진을 비교해 보면 앞에 사진은 저렇게 선명할 수 있냐 싶게 줄이 쫙쫙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새겨진 선에 비해 나머지 부분은 꽤나 파랗다. 즉 애초에 저런 모습을 만들려고 몸에 가능한 달라붙는 청바지를 구입했고 가능한 세탁하지 않고 가랑이와 무릎 뒷부분 등에 선명한 선이 나오도록 입고 다닌 결과물이다. 


다음 사진은 전반적으로 흐리멍텅하게 선이 만들어져 있는데 물론 앞의 사진 같은 모습이 되었다가 그 다음부터는 맘대로 편하게 입고 좀 더러우면 세탁하고 하면서 입어 저런 모습이 나온 걸 수도 있고 애초에 그냥 입고 다니다 보니 저렇게 나온 걸 수도 있다. 


뭐 두 가지 다 나름의 재미가 있는데 전자는 관리의 재미와 그 결과물을 보는 재미가 있을테고 후자는 보다 생활 밀착형으로 입는 이의 삶이 보다 잘 반영되고(데님은 특히 마찰에 약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지, 주로 뭘 하는지에 따라 페이딩의 경향이 달라진다) 색이 바래가는 형태를 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무슨 페이딩이든지 이유가 없는 건 없으므로 반추해 낼 수도 있고 남의 청바지를 보며 그런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경우 다 저런 모습을 보려면 옷을 가능한 곱게 입어야 한다. 찢어지기 시작하면 보로, 사시코의 세계에 접어들어 기워 입어야 하는 데(어쩔 수 없긴 하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무리한 행동을 피하고 바른 자세로 바르게 걸어야 한다.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페이딩이 만들어지고 몸이 삐툴어지게 다니면 한쪽만 낡아간다. 또한 예컨대 5년 차 페이딩 청바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선 5년 간 몸무게와 체형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옷 뿐만 아니라 사람도 유지되어야 한다는 게 페이딩 작업의 핵심이다. 



그리고 2) 이야기를 하자면 보통 빈티지 방식으로 셀비지 데님을 만드는 곳에서 내놓는 청바지들이 이런 작업을 좀 정교하게 한다. 



예를 들어 슈가케인의 901이라는 청바지는 5년차 타입, 10년차 타입을 내놓고 있는 데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주름 뿐만 아니라 페인팅과 패치의 바램, 단추와 리벳의 녹을 재현하고 있다. 이 정도 되는 브랜드들은 실이나 라벨에서도 바램을 재현한다. 즉 5년이 지나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를 재현하는 데 재현율의 정도에 따라 결과물의 그레이드가 나올 수 있다. 어디까지 생각했는가, 얼마나 생각했는가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현실화 시켰느냐가 핵심이다. 



이건 풀카운트. 가죽 패치와 데님은 당연히 세탁에 의해서 혹은 자연적인 수축률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운명을 걷게 되는데 옷을 고온 건조기에 돌려대면 가죽 패치는 저렇게 찌그러든다. 어지간히 찌그러들면 압력을 상당히 받아서 고정시켜 놓은 실이 떨어지게 되는데 위 옷은 사실 좀 지나치게 잘 붙어 있긴 하다. 


여튼 이런 재현 타입 청바지들은 페이딩 과정의 즐거움이 빠져 있으므로 말하자면 가장 재밌는 부분이 제외되어 있는데 또한 가장 귀찮은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만들어 놓고 재현해야 하므로 대체적으로 더 비싸다. 유니클로 같은 브랜드의 경우도 데미지드는 가격이 1만원 정도 더 높다.



강동원이 선전하고 있는 유니클로의 데미지드 진. 자연스러움과 거기서 나오는 멋,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애초에 가죽 패치 같은 게 없기 때문에 그 부분에는 문제가 없고 애초에 반짝거리지 않는 알루미늄 합금 타입의 단추와 리벳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부분도 무난하다. 뭘 했길래 저런 식으로 찢어졌을까 하는 재현 형태의 문제가 있긴 한데 그런 거야 뭐.



마지막으로 3). 유니클로의 고양이 수염은 흐리지만 그래도 좀 자연스러운 편이긴 한데 이쪽 계열에는 억지로 그려 놓은 게 있고 또 재현을 하려고 했는데 앞 뒤가 안 맞는 것들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양산형 워싱 진의 경우 자연적으로는 생길 수 없는 타입의 주름을 그려 넣는 형식으로 만든다. 뭐 저런 페이딩은 나올 수 없어!라고 한탄하는 근본주의자도 있겠지만 저건 페이딩이 아니라 그림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그림을 그려넣는다고 해서 데님의 페이딩 특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므로 저 상태에서 청바지는 또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며 옷 주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개인화가 시작된다. 그것도 또 일부러 워싱 진을 사는 나름의 재미다.


이에 비해 PRPS의 머드 진은 좀 엉망진창인게  거친 작업 현장에서 입은 청바지를 재현...했는데 이 와중에 가죽 패치는 지나치게 새거다. 700불 대나 하는 청바지 치고 앞 뒤가 너무 안 맞는데 뭐 저런 부조화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이런 분야는 자기 재미고 꼭 민속 박물관 같은 걸 옷으로 입고 다니려는 건 아니므로 자기 재밌는 대로 입고 다니면 된다. "얼토당토하지 않음"이란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뭐 여튼 이런 세 가지 정도의 추세가 있으니 이번 시즌에 데미지드 진, 워싱 진, 페이드 진 같은 걸 구입할 생각이라면 옷 구경을 하면서 "재현율" 같은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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