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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페이딩의 실패 판단

by macrostar 2017.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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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페이딩이라는 말보다는 개인화라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용어를 사용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검색(유입자 수로 먹고 사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입자 수로 여기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의 문제 때문에 페이딩, 데미지드(Ripped라고들 한다) 같은 일반적인 용어를 쓰게 된다. 


개인화는 말 그대로 옷이 자기가 입어서 노화해 가는 걸 즐기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데님, 가죽, 코튼 같은 티가 많이 나는 소재가 인기가 많고 철, 구리 등 역시 티가 많이 나는 부자재들이 인기가 많다. 눈에 잘 보이고 노화를 보며 유추를 해낼 수 있는 게 개인화라는 이름에도 딱 맞기 때문이다. 물론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울 등도 상관은 없다. 데님과 코튼은 페이딩이 생기고 버튼 플라이나 리벳은 녹이나 부식 등 경년 변화가 생긴다. 이중에서 오늘 이야기하는 건 데님의 페이딩이다. 여기 개인화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주제다.


여튼 몇 번 말했지만 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트렌디한 패션도 좋고, 자기가 멋있어 보이는 패션도 좋지만 옷 자체와 조금 더 친하게 지내며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즉 옷을 가지고 즐거움을 얻는 방식은 다양하고 각자가 나름의 방식을 가지면 된다. 이런 이야기는 그러기 위한 재료 들이다.


데님의 페이딩은 취미로 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딱 정해져 있다. 전통적 노선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위스커링(고양이 수염이라고도 한다), 스택(종아리에서 뒤꿈치 부분에 나오는 무늬다), 그리고 허니컴(무릎 뒤에 벌집처럼 생기는 무늬다) 이 셋을 보통 집중적으로 추구한다. 고집이 센 페이딩 순수주의자들은 잘못된 무늬가 만들어지거나 초반 관리 실패로 무늬가 잘 나오지 않으면 패배를 인정하고 재빨리 이베이 같은 중고 시장에 내놓는다.



예컨대 허벅지에 생기는 대각선의 줄은 보통 바지가 오버 사이즈일 때 만들어진다. 레귤러 핏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걸 일부러 만들기도 하지만 슬림 핏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무늬가 생기면 치워버리는 거다.


이런 식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이런 부분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대각선 무늬는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 압력을 많이 받게 되고 그러므로 저 줄 따라 잘 뜯어지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잘 앉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는 게 아니라면 또는 저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앉지 않고 일부러 계속 서 있는 게 아니라면 저런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곱게 노화까지 흘러가는 걸 추구하는 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리고 싫어하는 부분도 있다. 곱게 노화에는 실패로 판단되었다고 어디 팔아버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아프다.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적어본다. 


1) 일단 찢어지는 건 싫다.



데미지드 진이 올해 들어 범 대중화되어 있긴 하는데(SPA 브랜드에서 다들 내놨다는 의미다) 일단 찢어져 버리면 노화가 급격히 진행된다. 당연하지만 특별한 조치가 없다면 상처가 줄어드는 일은 없고 더 커지기만 한다. 그러므로 찢어진 부분이 발견되면 가능한 보로, 사시코 등등의 방법으로 메꾸는 편이다. 기워진 모습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찢어져 있는 상태보다는 훨씬 낫다. 이건 곱게 노화된 옷이 내는 안정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지단을 접고 다니거나 하면 그 부분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찢어짐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생겼기 때문에 좀 곤란하다. 수선을 해도 눈에 잘 띈다. 



2) 변색도 좋아하지 않는다.



한쪽만 햇빛을 받거나 해서 색이 뒤틀려 버리는 건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옷이 낡아가고 인디고 컬러가 빠지는 동안 위 사진처럼 노르스름하게 변색이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땀을 흘리고 제때 세탁을 하지 않으면 저런 컬러가 된다. 사실 나름 열심히 세탁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긴 한데 여튼 기본적으로 인디고 색이 빠진 부분은 흰색인 걸 선호한다. 페이딩도 좋지만 더러운 건 역시 싫다. 뭐 워크웨어로 사용하는 경우 저런 식의 노화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남의 이유 있는 머드 컬러를 구경하는 건 좋아한다.


3) 리벳이나 단추 등 부자재가 떨어져 나간 건 싫다. 이 경우는 극복이 조금 힘들다. 같은 제품을 구할 수 없어서 수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버튼 플라이의 경우 구멍 뚫린 부분이 해지는 경우가 많다. 드님의 초창기 버전을 비롯해 일본 레플리카에서 이 부분에 취약한 제품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건 수선이 가능하긴 하다. 뭐 혼자 대충 기워 놓아 한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을 수는 있지만 경험에 의하면 그다지 신통치 않다. 오버로크의 선이 확실히 보이고 걱정없게 튼튼하게 마무리해 놓으려면 괜찮은 셀비지 데님 전문 수선점을 찾는 게 좋다.


4) 그리고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 중 하나인데 바로 얼룩이다. 얼룩이 싫다. 



얼룩은 상당히 난감한 문제다. 페인트처럼 아예 지우기 어려운 타입도 있다. 이 경우 긁어내거나 뭐 그러는데 그러면 역시 옷감에 마찰이 생겨 곱게 노화하기는 어렵게 된다. 지우기 쉬운 타입도 한쪽에만 어디서 얼룩이 묻는 경우 지우다 보면 반대쪽과 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약간 바보 같지만 반대쪽도 함께 건들게 되는데 그래봐야 얼룩은 자기 눈에는 꽤 잘 보인다. 이런 식으로 신경을 쓰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저 위 사진 중 허벅지 대각선 라인을 예로 든 청바지도 보면 무릎 위에 몇 개의 얼룩이 보인다. 저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옷을 곱게 노화시키기 위해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또 너무 조심하면 옷의 지배를 지나치게 받게 되니 그것도 좀 그렇다. 그러므로 이런 균형점은 찾기가 좀 어렵다.



사실 무균실 같은 곳에서 언제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입는 게 아닌 한 위의 문제들을 모두 피하기는 어렵다. 청바지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옷이 아니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순간들을 요령껏 피해야 하는 데 그건 운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여튼 곱게 노화하기는 이렇듯 힘든 법이다. 



이 바지는 밑단에 문제가 좀 있긴 하고 크로치 부분도 수선의 흔적이 있지만 그래도 꽤 곱게 낡았다. 보면 자주 빨았기 때문에 선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 덕분인지 페이딩 된 컬러와 조화를 이뤄 어딘가 유순해 보인다. 칼 같은 페이딩을 좋아하는 전통주의자들은 이런 걸 마음에 들지 않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매우 훌륭하게 잘 관리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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