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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장 프로보카퇴르가 팔렸다

by macrostar 2017.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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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란제리 브랜드 아장 프로보카퇴르가 팔렸다. 아장 프로보카퇴르는 조셉 코레(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들이다)와 세레나 리스(모델이다, 둘은 1992년에 만났다) 부부가 1994년에 런칭한 브랜드다. 이 부부는 2007년에 이혼했지만 사업 파트너로 계속 함께 일했다. 다만 회사는 2007년 3i라는 벤처 캐피탈에 주식의 80%를 팔아서 실질적으로 이 회사가 소유하고 있었다.


소호에 있는 첫 번째 매장. 사진은 위키피디아(링크).


사실 작년 말부터 아장 프로보카퇴르가 다시 매물로 나와 있다는 소문은 계속 돌았고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어떤 회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결론은 마이크 애슐리다. 마이크 애슐리는 스포츠 다이렉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갑부 중 하나로(2012년 포브스에 의하면 15억 파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프라이빗한 사람으로 언론 노출도 잘 없고 인터뷰도 참가하지 않는 타입이다. 여튼 프리 팩이라는 방식으로 마이크 애슐리의 회사 포 홀딩스가 구입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비지니스 전문지를 참조.


뭐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게 되고 아장 프로보카퇴르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패션 vs. 패션이라는 책(링크)을 쓸 때 2000년 이후 하이엔드 패션이 대기업 집단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예전처럼 발랄하고 신선한 모험을 시도하기가 까다로워지면서 정체의 분위기가 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이런 상황은 스트리트 패션이 하이엔드 신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고 젠더리스나 페미니즘 등 정치적인 이슈를 흡수하면서 약간 다른 방식으로 활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시점에서 그렇다면 저런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들, 회사들은 뭘 하고 있을까 아니면 패션과 관련해 여전히 발랄하고 신선한 구석을 가지고 있을 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찾아봤을 때 보이는 곳이 럭셔리 란제리 브랜드들이었다. 페티시즘, 섹스샵의 어두운 구석에 있던 물건들은 이 루트를 통해 고급화되며 양지로 기어 올라왔다. 물론 저 분야 전문 브랜드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죽 채찍과 눈가리개 같은 아이템이 고급 부티크의 쇼룸에서 팔리게 된 건 이런 흐름 덕분이다. 


이들 브랜드는 보다 근원적인 지점에서 몸에 집중했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엔젤 쇼는 매년 규모가 커졌다. 이 흥겨운 동네가 본격적으로 조망을 받기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물을 계속 내놨다. 그런 만큼 예전에 적어 놨던(링크) 수많은 브랜드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모험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었다. 


신나고 즐거운 패션 생활의 측면에서 봐도 이쪽 분야는 기존 패션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란제리가 인간의 자유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는 오랜 논쟁 거리지만 여튼 이건 태도의 문제와 얽혀 있고 쉽게 판단을 내릴 종류는 아니다. 이 계열의 주 소비자인 여성들은 어떤 생각 아래에서는 해방을 외치며 란제리를 벗어 던졌고, 또 어떤 생각 아래에서는 주체적으로 코르셋을 소비했다. 페티시즘을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인가는 복잡한 문제지만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는 구조적 굴레가 어느 정도인가를 넘어선 다면(이게 매우 어렵지만) 그 다음부터는 본인의 취향으로 다시 소급되기 마련이다.


아무튼 이런 시장의 발생과 발전, 새로운 뷰를 만들어 내는 지점에 있어, 호사가의 가십 거리에나 머물러 있던 걸 "내가 이거 사서 쓴다는 데 그래서 뭐 어쩔건데?"의 단계로 높여 놓는 데 있어서 아장 프로보카퇴르는 분명 큰 역할을 해냈다. 


뭐 이제 다른 운명을 가지게 되었고, 위에서 말했듯 주류 패션신도 자체의 이노베이션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끌어 모은 덕분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고, 90년대 중반 란제리 브랜드의 발전과 함께 2010년 이후 코르셋과 페티시즘의 요소들을 하이엔드 패션 디자이너들이 본격적으로 끌어다 썼고 이제 그 단계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근 10여년 정도 유지되며 나름 긴장의 요소를 만들어 내던 균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시크릿이나 라펠라, 코코 드 메 처럼 자신의 길을 굳건히 나아가고 있는 브랜드들은 여전히 많이 있다. 아장 프로보카퇴르도 보다 굳건하게 이 바닥을 계속 넓혀하며 아직도 '란제리 ㅋㅋㅋ' 같은 짓을 하는 놈들을 다 땅속에 묻어 버릴 만한 강력한 패션 세계를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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